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脫李·脫朴 두 의원의 ‘내가 겪은 친이·친박’

중앙선데이 2011.03.13 13:50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정부와 다른 정책 말하면 즉각 청와대가 전화해”

MB 대선 후보 때 수행실장 정태근 의원











한나라당 정태근(서울 성북갑·사진) 의원은 이명박(MB)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일할 때 정무부시장이었다. MB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 시절엔 수행실장으로 지근거리에 있었다. 2002년엔 서울시장 선거 캠프에 참여했다. 한마디로 ‘MB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



하지만 정 의원은 MB 정권 출범 후 청와대를 겨냥해 사사건건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정권 출범 후 치러진 18대 총선에선 MB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정계은퇴를 주장했다. 친이 직계인 그는 왜 현재 권력을 비판하고 친이계로부터 멀어졌을까.



-왜 친이 계보를 이탈했나.

“지금도 심정적으론 친이 직계라고 생각한다. 현 정권의 문제점을 대통령에게 직언한다는 생각으로 말했다. 하지만 우리 정치 현실에서 그런 직언은 통하지 않는 것 같다. 계보에 신경 쓰는 의원이라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함께 내일로’ 등 친이 모임에 나가 보면 계보정치의 폐해를 말하는 의원들이 많다. 개헌론이 대표사례다. 주류는 가능하지 않은 일을 주류란 이름으로 밀어붙인다. 그래서 ‘계파 해체’를 주장하게 됐다.”



-많은 의원이 계파정치의 폐해를 느낀다는데 왜 청산되지 않나.

“공천 때문이다. 청와대가 공천을 담보로 계파정치에 나서고 당은 청와대에 휘둘린다. 친이계 의원 중 청와대나 당의 문제점을 얘기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 청와대는 새로운 정치를 보여주지 못하고 당은 제 구실을 못한다. 공천 문제를 해결하면 계파 정치는 확 달라진다”



-의원들이 할 말을 못하고 있나.

“정부와 다른 정책을 얘기하면 즉각 청와대의 전화를 받지 않나.”



-청와대의 과거식 정치란 게 뭔가.

“MB 정부가 출범할 때 집권 명분으로 내세운 게 국민 통합과 경제 살리기였다. 경제 살리기도 논란이 있지만 국민 통합은 청와대가 완전히 잊어버린 과제다. 당내 화합을 못하는데 무슨 국민 통합인가. 대표적 사례가 18대 공천이다. 대선 후보 경선이 끝나면 이긴 쪽은 상대방을 대거 등용해야 하는데 친이 일색으로 캠프를 꾸렸다. 그런 흐름이 총선으로 이어졌다. 겸손하지 못한 정권이다.”



-18대 공천은 당에서 결정하지 않았나.

“18대 공천 때 공천실무 작업에 관여하면서 그 과정을 지켜봤다. 초기엔 청와대와 이상득·이재오·이방호 당시 의원이 만든 네 가지 종류의 기초안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비례대표 의원의 경우 청와대 안이 대통령 형인 이상득 의원 안과 결합돼 100% 관철됐다. 지역구도 몇 사람을 제외하면 대체로 관철된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원칙과 일관성이 없었다. 친이라고 모두 공천을 받지도 못했다. 박희태 의장은 날려 버렸는데 이상득 의원은 살았다.”



-왜 그렇게 됐나.

“청와대가 당 지도부를 통해 의중을 관철시킨 것 아닌가. 또 지금도 그렇지 않나. 그래서 내가 문제를 제기했다. 처음엔 이상득 의원 중심의 인사 농단을 거론했다. 이어 당·청의 인적 개편을 주장했다. 또 이상득 의원을 중심으로 한 권력 핵심에 대한 견제만이 현 정권을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런 주장과 움직임을 매번 권력투쟁으로 몰아갔다.”



-계보를 이탈한 뒤 힘들지 않나.

“명시적 불이익은 없었다. 다만 내 처가 다니는 회사와 내 주변에 대해 국정원 사찰이 있었다. 이 문제로 가정 생활은 아주 힘들어졌다. 내 처가 다니는 회사는 작은 규모의 종합기획사다. 현 정권이 출범한 2008년이 아니고 2007년부터 매출이 늘었다. 그런데 국정원 사람들이 2009년 봄부터 ‘그 회사가 정태근 회사냐, 회사 수주는 정태근이 압력 넣은 것 아니냐’고 들쑤시고 다녔다. 회사가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내가 항의했더니 국정원에선 부인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선 ‘우리가 한 게 아니고 국정원이 해서 못하게 했다’고 답변했다.”



-결국 MB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얘긴가.

“참모들이 잘 보좌해야 한다. 집권에 성공했으면 당 문제는 당이 알아서 풀도록 두면 된다. 그런데 지금의 청와대는 기본적으로 집권당, 다수당을 존중하지 않는다. 당에서 정동기 감사원장 내정자 문제를 거론하는데 대통령이 화내는 구조는 뭐냐. 그런 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런 것은 정상적인 정치가 아니다.”



-한나라당보다 대통령 인기가 더 높지 않나.

“청와대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는데 한심한 말이다. 현장을 다녀 봐라.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한나라당은 서울에서 16석을 얻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이 어렵다. 이대로 가면 서울에서 10명 당선되면 다행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겸손하지 않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현 정부는 친서민 중도, 공정사회를 약속했다. 약속을 지키면 된다. 당은 새 얼굴로 세대 교체해야 한다. 지도부를 바꾸고 공천을 개혁해야 한다. 친이, 친박의 화합 정도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그런데 개헌 얘기나 하고 있으니 문제가 풀리겠나.”





“미래권력 주변 두터운 벽 내 힘으론 못 고쳐 떠나”

박근혜 전 대표 초대 비서실장 진영 의원









한나라당 진영(서울 용산·사진) 의원은 서울시당 위원장이다. 경기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법관으로 일하며 ‘합리적 신사’란 평을 들었다. 학교 선배인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가 2002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뛸 때 특보를 맡아 정책과 메시지 개발에 힘썼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2004년 대표 취임 뒤 그를 초대 비서실장에 발탁했다. 이른바 친박(친박근혜) 의원이다. 그런 그가 탈박을 선언하고 나선 뒤 박 전 대표 쪽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굳이 친박 이탈을 밝힌 이유는.

“박 전 대표를 둘러싼 폐쇄적 벽이 너무 두터워 개인적으로 불편함을 느꼈다. 게다가 친이, 친박이란 울타리가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을 하는 데 제약이라고 봤다.”



-폐쇄적 벽이란 게 무슨 뜻인가.

“지난해 4월 지방선거 때 권영세 당시 서울시당 위원장은 이종구(서울 강남갑) 의원을 시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지명했다. 당시 이 의원은 강남을 지역의 공성진 의원과 구청장 공천 문제로 다투는 상황이었던 만큼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친이 쪽에선 단일 지역구(용산구)인 나를 제안했는데 친박 의원들이 나를 반대했다. 이유가 기막혔는데 ‘진 의원은 무늬만 친박’이란 주장이었다. 마음의 상처가 컸다.”



-당 요직 인선엔 늘 논란이 따르지 않나.

“공심위원장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내가 무엇을 해도 그런 견제는 계속 나왔을 거다. 움직일 때마다 ‘무늬만 친박’이란 얘기가 나와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했나’란 생각이 떠나지 않을 정도였다.”



-왜 그렇게 됐나.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물론 이명박 캠프에 간 것은 아니다. 박 전 대표를 지지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대선 캠프에서 뛰는 방식엔 반대했다. 미국처럼 캠프는 그저 캠프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몸 사린다’고 하더니 시간이 지나자 ‘친박이 아니다’로 발전하더라.”



-정확한 뜻을 밝히면 되지 않나.

“박 전 대표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언론에 여러 차례 밝혔다. 하지만 현재 권력이건 미래 권력이건 권력 주변의 폐쇄적 울타리가 우리 정치 여건이고 풍토다. 그게 현실이란 점을 인정해야 한다. 친박 의원 몇 사람이 모인 곳에서 ‘내가 경선 때는 잘못한 것 같다. 한국적 현실에 맞지 않게 행동했다’는 말까지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2008년 7월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하자 친박 진영의 비난은 거세졌다. 별일이 많았지만 친박의 비난 여론이 강해 중도에 출마도 포기했다.”



-의정활동에 어떤 제한이 있었나.

“나는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했다. 소신이었다. 하지만 의원총회든 위원회든 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우리 정치 수준이란 게 박 전 대표가 반대하면 모두 반대해야 하는 분위기 아닌가.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한 뒤 ‘(박 전 대표가) 섭섭해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원내 발언이나 표결 때 구체적 지시가 내려오나.

“박 전 대표가 지시한 적은 없다. 하지만 어디선 이런 얘기를 해야 하고 저기선 그런 얘기를 말아야 한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박 전 대표의 의중에 따라 움직이는 게 친박 아닌가. 내 생각에 친박은 다음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머물러야 한다. 하지만 계보의 의미가 좁고 강하다. 서클을 너무 좁게 가져가면 정치 발전의 장애요인이다. 박 전 대표에게도 역기능이 많다. 국민이 뭘 기대할 수 있겠나. 또 외연 확대엔 얼마나 도움이 될

지…. 갑갑한 얘기다.”



-친박의 벽이 두텁고, 그것이 문제라면 없애려는 노력은 해보았나.

“박 전 대표는 주변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계보 정치를 안 하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내가 대표 비서실장을 하던 2004년에만 해도 당 기구 외엔 별도의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2007년 경선을 거치며 친박 그룹이 생겼고 대문이 생겼다. 당연히 타파돼야 하지만 내 힘으론 안 되고…. (친박 그룹에선) 그런 부분에 대해 노력하는 모습이 없고 오히려 강화시키려는 노력이 더 강하다. 그래서 같이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 벽이 생긴다고 보나.

“모든 게 잘되면 한 자리 차지하려는 것 아닌가.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이고 그것 때문에 모이는 것 아닌가. 그러다 보니 그 안에서 갈등이 있고….”



-그런 벽을 둔 박 전 대표의 리더십에 문제는 없나.

“박 전 대표는 계파 정치를 반대해 왔으니 지금 같은 친박 계파를 생각하진 않았을 거다. 다만 현실에서 뭘 추구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어쨌든 시대에 맞는 것은 아니다. 정치란 시대상을 반영하고 투영시켜 가는 것이다. 시대가 계보에 맞추길 바랄 수는 없지 않나. 친박, 친이라는 개념 자체가 진작 타파됐어야 한다. 누구라도 그런 방향으로 노력했어야 하는데 반대의 작용이 컸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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