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금융시장 불안 커지겠지만 일본 경제 회생 계기 될 수도

중앙선데이 2011.03.13 05:17



도호쿠 대지진 시장의 역설











세계 3위인 일본 경제가 쓰나미에 당했다. 피해 규모가 아직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수백억 달러에 이를 것이란 추정만 제기될 뿐이다. 극도의 불확실성이다. 지진 당일 글로벌 시장의 반응이 제각각인 까닭이다.



도호쿠 대지진 소식 이후 개장한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하루 전보다 0.49% 올라 1만2000 선을 회복했다. 애초 예상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일본이 피해를 복구하기 시작하면 이득을 볼 것이라는 기대감에 미국 중장비와 에너지업체들의 주가가 크게 올랐다. 반면 유럽 주가는 1% 정도 떨어졌다. 스페인 신용등급 강등으로 재정적자 우려가 도진 게 악재로 작용했다.



또 다른 예상 밖의 반응은 엔화가치였다. 미 달러와 견준 엔화가치가 떨어질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전날보다 1.4% 정도 올랐다. 해외에 투자된 일본 자금이 복구 자금으로 쓰이기 위해 되돌아갈 것이란 예상이 제기됐다. 국제 원유값은 예상대로였다. 세계 4위 원유 수입국인 일본의 경제활동이 지진으로 둔화될 것이란 전망에 따라 11일 두바이산 원유값이 하루 전보다 1.5% 떨어졌다. 마감가격은 배럴당 108.78달러였다.





글로벌 불안요인 하나 늘어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제가 좋지 않은 시기에 일본 지진이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선진국 재정위기 등 대형 불안요인이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는 와중에 대형 지진이 일본을 덮쳤기 때문이다. ‘닥터 둠’으로 알려진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11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일본이 재정적자를 반드시 줄여야 하는 상황인데 지진이 일어났다”고 걱정했다.



실제 일본 공공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에 가까운 10조 달러에 이른다. 연간 재정적자만도 GDP의 10% 수준이다.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스페인 다음으로 나쁘다. 이처럼 빚더미 위에 앉아 있는 일본 정부에 이번 대지진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일본 재정적자 악화는 유럽 재정위기와 맞물려 국가 부채난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킬 수 있다.



루비니 등 전문가들은 “일본 경제의 올해 성장률이 예상치보다 1%포인트 정도는 낮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애초 일본의 올해 성장률은 1.2~1.5% 수준으로 예상됐다. 대지진 여파로 올해 성장률이 0.2~0.5% 수준에 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 누출 조짐이 나타났다. 산업 중심지인 도쿄에서 고속버스로 3시간 거리다. 방사능이 많이 누출된다면 도쿄 지역 경제활동은 사실상 올스톱될 수 있다. 실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일본 경제는 빠른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방사능 누출 사태가 심각하지만 않다면 이번 지진이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창조적 파괴’ 구실을 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에두아르도 카발로 미주개발은행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5월 내놓은 ‘자연재해 경제학’이란 보고서에서 “대규모 지진·홍수 등이 발생한 이후 복구 과정에서 파괴된 낡은 도로와 항만, 생산시설 대신 새로운 인프라와 생산설비가 갖춰지면서 경제체질과 활력이 되살아난다”고 말했다. 일본은 이미 몇 차례 창조적 파괴를 경험했다. 1920년대 관동과 90년대 고베 대지진 이후 일본 경제는 일시적으로 후퇴했지만 2~3년 뒤부터 놀라운 활력을 보였다. 특히 95년 고베 대지진 때 일본 경제는 거품 붕괴 여파로 침체였다. 성장률이 -1~-3%에서 맴돌았다. 그런데 고베 대지진 이후 일본 경제는 일시적이긴 했지만 연 3~4% 성장했다. “피해 복구를 위해 재정 지출을 확대하고 통화 공급을 늘리는 바람에 일자리가 늘어났기 때문”이라며 “자연재해는 중기적으로(2~5년) 경제에 호재인 경우가 많았다”고 카발로 수석연구원은 설명했다.



일본인, 돈 쓰는 본능 되찾을까

일본의 재정 상태가 최악이고 글로벌 시장이 선진국 국채를 꺼리는 상황에서 복구자금은 대부분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 금고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BOJ가 돈을 새로 찍어 국채를 사 주는 방법이 동원될 가능성이 크다. 전형적인 양적완화다.



BOJ가 파상적인 양적완화로 공급한 자금을 일본 정부가 복구작업에 퍼붓기 시작하면 지금껏 이뤄지지 않았던 엔화 약세가 실현될 수 있다. “그동안 BOJ와 일본 정부는 엔화 약세를 유도하기 위해 양적완화를 실시하기는 했지만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파격적이지 못했다.” 도쿄 HSBC증권 시라이시 세이지 수석이코노미스트가 11일 파이낸셜 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또 그는 “고베 대지진 직후에도 BOJ가 거품 재발을 이유로 통화량을 파격적으로 늘리지 않아 디플레이션과 엔화 강세가 이어지는 바람에 경제 회복이 계속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BOJ가 자국 역사상 최악의 쓰나미 사태를 맞아 공세적으로 양적완화를 단행한다면 디플레-엔화 강세의 악순환을 깰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악순환은 일본인들이 돈을 쓰지 않는 가장 큰 이유였다. 시간이 갈수록 돈 가치가 오르는 마당에 소비는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지진이 악순환을 깨고 내수를 부활시켜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에서 헤어나는 계기가 될지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