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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더라도 변하는 게 낫다 … ‘변화 문맹’들의 생존 교과서

중앙선데이 2011.03.13 01:40 209호 19면 지면보기
스펜서 존슨은 의사 출신이다. 아일랜드에 있는 왕립외과대학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포토]
우리는 변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변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기원전 5세기 초에 활동한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는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주역에 따르면 모든 사행(事行)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한편 사람들은 “바뀔수록 똑같다(Plus <00E7>a change, plus c’est la m<00EA>me chose)”는 프랑스 격언에 공감하기도 한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 <17> 스펜서 존슨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이하 치즈)는 깊이 들어가면 복잡하기 그지없는 변화의 문제를 다룬다. 우화 형식을 빌려 간단한 처방을 내놓는다. 저자는 ‘우화의 제왕’으로 불리는 스펜서 존슨이다. 존슨은 남가주대에서 심리학을 공부했으며 아일랜드 왕립외과대학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의사 출신이다. 그는 1975년부터 79년까지 친절·인내·유머·상상력·용기·헌신·공정성·정직 등의 가치를 위인들의 삶을 통해 예시한 ‘가치 시리즈’를 냈다. 그의 출세작은 82년에 나온 1분 매니저라는 공저다. 존슨이 저술한 대중 대상의 경영서가 잇따라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자 그는 하버드비즈니스스쿨(HBS)의 펠로, 하버드대 공공리더십센터의 고문으로 영입되기도 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영문판 표지.
치즈의 부제는 ‘일과 삶 속에서 변화에 대응하는 놀라운 법’이다. 변화 문제로 고민하는 모든 사람이 잠재적 독자인 셈이다. 2100만 부가 팔린 치즈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5년간이나 올라 있었다.

‘치즈’는 저마다 추구하는 ‘가치’상징
치즈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장소는 미국 시카고, 때는 어느 맑은 일요일이다. 고등학교 동창회 다음 날, 학우들이 점심에 모여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졸업 후 벌어진 인생 행로가 학교 다닐 때 생각과 많이 달랐다는 것, 그렇게 된 이유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 아닌가 하는 등 이런저런 말이 오간다. 동창 중 한 명인 마이클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대처하는 법을 우화로 들려준다. 우화 속 주인공은 미로 속에 사는 두 마리의 쥐(Sniff, Scurry)와 두 명의 작은 사람(Hem, Haw)이다. 이야기에 나오는 ‘치즈’는 일자리·사랑·돈·집·자유·건강과 같이 사람들이 인생에서 얻고자 하는 모든 정신적·물질적 가치를 상징한다.

치즈의 내용을 패러프레이즈(para phrase)해 요약하면 이렇다.
‘치즈’가 있을 때 사람은 행복하다. 하지만 풍부한 ‘치즈’가 보장하는 행복 속에 자신감이 자만으로 변하고 무사안일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살다 보면 ‘치즈’가 사라지는 때가 있다. 변화는 누구에게나 들이닥친다. 변화는 조금씩 ‘예고편’을 선보인다. 작은 변화의 조짐에서 앞으로 닥칠 큰 변화를 미리 읽을 수 있으면 좋다. 그게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또한 사람마다 변화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 남들보다 변화에 빨리 반응해 대안이나 대책을 강구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본능적으로 변화에 반응한다.

반면 변화를 애써 외면하거나 변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 변화가 가시화되면 그들은 분노하거나 좌절하고 걱정한다. 변화에 적응하려면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활로를 찾는 대신 같은 방식으로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오래 일한다. 결과가 좋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복잡한 그들의 머리가 이미 많은 신념으로 굳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변화하는 데는 ‘단순 무식’한 게 낫다. 변화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복잡하게 생각하고 분석도 지나치게 깊이 하는 경향이 있다.

변화를 시도해 보지도 않는 사람들은 공포심의 포로가 된다. 그들이 다시 웃을 길은 없을까.
다행해 치즈는 해피엔딩의 길을 제시한다. 미적거리던 사람들도 몇 가지 깨달음만 있으면 새로운 ‘치즈’를 발견하고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바뀌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 앞에 변화의 두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드디어 변화를 위한 행동에 나서면 “걱정하기를 멈추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일찌감치 ‘새 치즈’를 찾아나선 사람들에 비하면 뒤처졌지만 ‘변화 낙오자’들에게도 희망이 있다. 그들은 “빨리 ‘옛 치즈’를 포기할수록 더 빨리 ‘새 치즈’를 발견한다” “늦는 게 영원히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새 치즈’를 찾는 요령도 알게 된다. “‘새 치즈’를 발견했다고 상상하면 실제로 ‘새 치즈’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변화 낙오자’들은 ‘새 치즈’를 발견함으로써 탈바꿈한다. 그들은 “기존의 믿음으로는 ‘새 치즈’를 발견할 수 없다. 믿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는 진리를 몸으로 체득한 것이다. 그들은 이제 “변화를 가로막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됐다. 그래서 이제 그들은 변화를 즐기고 또 다른 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변화 우등생’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치즈 안 먹는 중국서도 수백만 부 팔려
치즈에 대해선 열렬한 호응과 냉혹한 비판으로 반응이 첨예하게 엇갈렸다. 수적으로는 열광적인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세계 출판계가 경악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치즈를 먹지 않는 중국에서도 수백만 부가 팔린 것이다. 스펜서 존슨은 세계적 경영인도 석학도 아니었지만 치즈는 빌 게이츠의 생각의 속도나 피터 드러커, 마이클 포터 같은 경영의 구루(guru)들이 내놓은 저서를 압도했다.

변화의 진리를 설파하는 치즈가 쓰나미급 베스트셀러로 부상한 이유는 출간 당시 미국과 세계가 대격변을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영서 분야는 기업의 ‘구조·전략의 문제’에서 ‘사람의 문제’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일본 경영서를 영어로 번역하는 붐이 끝나는 시점이기도 했다. 사회에서는 정보통신혁명이 몰고 온 변화로 수많은 부자가 탄생하는가 하면 멀쩡한 전문직 종사자들이 하루아침에 노숙자로 전락하는 상황이었다.

지금 시점에선 치즈의 내용이 별게 아니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출간 당시 세계의 독자들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에 대해 ‘문맹’ 상태였다. 치즈는 ‘변화 문맹’을 타파하는 교과서요, ‘콜럼버스의 달걀’이었다.

변화에 직면한 곳마다 치즈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가 있었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을 비롯한 경영대학원, GM·IBM·P&G 같은 대기업이 치즈를 변화의 바이블로 받아들였다. 치즈가 근거 없는 ‘사이비 심리학(cod psychology)’의 산물이라는 비판을 상당수 대학교수가 잠재웠다. ‘유사품’, 패러디물도 대거 등장했다. 당신의 치즈를 내가 옮겨도 되겠습니까 누가 감히 내 치즈를 옮겼는가 누가 치즈를 잘랐는가 누가 내 비누를 옮겼는가와 같은 것들이다.

수많은 최고경영자(CEO)가 치즈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은 나머지 전 사원에게 읽히기 위해 몇만 부씩 대량 구매하는 해프닝도 비일비재했다. CEO들은 치즈를 읽고 ‘조직원이 바뀌어야 조직이 바뀐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가 나눠 주는 치즈를 받고 심한 모욕감을 느낀 사원들도 많았다. 회사에서 해고되거나 승진이 누락되거나 연봉이 낮은 것은 모두 사원들의 잘못이라고 치즈가 단죄하는 것 같았다. 치즈를 대량 정리해고 직전에 나눠 주는 사례도 있었다. 회사 조직에서 잘되고 못되고는 ‘변화 능력’이 아니라 아첨이나 ‘백’에 달린 게 아니냐는 반발도 나왔다.

14년간 치밀한 출간 준비 거쳐
치즈는 해리포터 시리즈보다 읽기 쉽다. 게다가 분량이 읽는 데 45분도 안 걸린다. 잡지에 나오는 긴 기사 정도 사이즈다. ‘그 시간도 아깝다’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 세계 독자가 열광한 이유는 치즈에 담긴 간결하고 강력한 메시지에 있다.
존슨은 “간결한(simple) 것과 단순한(simplistic)한 것은 다르다”고 말한다. 단순한 것은 나이브(na<00EF>ve)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간결한 것은 ‘더도 덜도 필요 없이 딱 맞는’ 것이다.

출간은 98년에 됐지만 치즈의 구상은 84년 시작됐다. 존슨의 머릿속에만 있는 치즈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그들은 ‘빨리 쓰라’고 성화였다. 그러나 치즈는 존슨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치밀한 출간 준비 과정을 거쳤다. 존슨은 신간이 출간되기 전 100명 이상의 모르는 사람에게 원고를 읽게 하고 그들의 의견을 책에 반영한다. 치즈는 9회 수정을 거쳤고 출판 이후에도 일부 수정이 있었다. 존슨은 또한 출시할 책을 64개 항목에 걸쳐 점검한다.

특히 치즈의 경우에는 독자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책 내용에서 발견할 수 있도록 구상됐다. 그래서 어느 각도에서 보건 ‘모나리자’가 자신을 바라본다고 ‘착각’하는 미술 애호가처럼 치즈의 독자들은 치즈가 바로 자신의 이야기라고 느낀다. 그래서 치즈 돌풍에는 학계·재계의 톱다운(top-down) 지지도 중요했지만 입소문을 무기로 하는 풀뿌리 현상도 한몫했다.

치즈를 다 읽고 나면 내 치즈를 옮긴 ‘그놈’의 정체와 관련, 불편한 진실이 남는다. 누군가 옮겼기 때문에 치즈가 사라진 게 아니다. 치즈가 사라진 것은 내가 치즈를 먹어 치웠기 때문이다. 치즈를 읽고 삶이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증언하는 독자들은 이 불편한 진실에 대해 반성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심한 과장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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