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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의 부작용

중앙선데이 2011.03.13 01:28 209호 10면 지면보기
나는 예전에 자동차 부품 만드는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 공장은 자동차 회사에 큰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에 작은 부품을 납품하는 작업장이었다. 자동차 부품의 전기 용접을 주로 하고 특수 체인 같은 것도 조립하는 곳인데 각종 기계가 쿵쾅거리며 돌아가는 소리가 엄청나게 시끄러웠다. 관리자가 배려해서 큰소리로 하는 말도 나는 소음 때문에 못 알아듣겠는데, 거기 일하는 사람들은 조용조용 이야기하면서도 서로 다 알아듣고 심지어 한쪽 구석에 라디오를 올려놓고 음악까지 듣는 것이었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귀가 먹먹할 정도로 시끄러운 소음 속에 작은 음악소리가 들릴 리가 있을까 싶었지만 선배들은 적응이 되면 잘만 들린다고 했다.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다. 비록 내가 ‘귀 얇은 사람들의 모임’ 회원일 정도로 사람들 말을 잘 믿는 편이지만. 그런데 보름쯤 지났을까. 요란하던 기계 소리는 점점 희미해지더니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하는 소리나 음악소리가 아주 잘 들렸다. 적응이란 그런 것이었다.

공장 일이 처음이라 모든 게 서툴고 힘들었다. 평소 사용하지 않던 특정 근육만 하루 종일 반복해서 쓰는 것도 불편했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화장실을 몸의 생리적 요구에 따르지 못하고 정해진 시간에만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줌이 마렵거나 배가 아플 때 나는 쩔쩔맸지만 선배들은 5분 쉬는 시간을 알리는 벨이 울리면 그때 자동적으로 오줌이 마렵고 배가 아프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적응이 된다면서. 설마 그럴까 싶었지만 정말 그랬다. 보름쯤 지나자 신기하게도 쉬는 시간 벨 소리를 듣지 않으면 오줌도 똥도 마렵지 않았다. 칸트처럼 정확하게 시간을 지키는 생리적 다급함을 몸 바깥으로 내보낸 후 본능이니 생리니 하는 것도 적응하기 나름이라는 선배들의 말을 몸을 부르르 떨며 절감했다. 적응이란 그런 것이었다.

나중에 기계를 한 대 맡아 전기용접을 했지만 처음에 나는 체인 조립하는 일을 했다. 체인의 쇳독 때문인지 기름 때문인지 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그날 저녁부터 몸이 가려웠다. 손등이, 귓속이, 등이, 사타구니가 발광할 것처럼 가려웠다. 발광하는 가려움 때문에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몸 속으로, 살 속으로, 핏속으로 금속의 나방이 날아들고 체인 벌레가 기어들었다. 가려워 몸을 긁으면 온몸의 숨구멍마다 폐유가 뿜어져 나왔다. 온통 도려내고 싶은 붉은 발광의 몸을 가려움의 손이 어루만지고 약 올렸다. 다음날 아침엔 얼굴과 온몸에 붉은 반점이 작업장 가는 길에 한창이던 벚꽃처럼 피었다.

선배들은 체인을 예사로 맨손으로 만졌다. 나는 작업할 때 매뉴얼대로 앞치마도 하고 토시도 끼고 장갑도 끼고 맨살이 기름에 닿지 않게 조심했는데 말이다. 선배들은 적응하면 체인이고 기름이고 맨손으로 만져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설마 그럴까 싶었지만 정말 그랬다. 얼굴이 푸석푸석할 때면 체인 기름으로 얼굴 팩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적응이란 그런 것이었다.

다만 적응에도 부작용은 있었다. 언젠가부터 금속 같은 얼굴에 불쾌한 기름기가 흐르기 시작한다든지, 밤이면 헤비메탈이라도 들어야 겨우 쪽잠을 이룰 수 있다든지, 한밤중에 갑자기 오줌이나 똥이 마려울 때도 작업장의 벨 소리가 울리지 않으면 도무지 볼 일을 보지 못한다든지.




김상득씨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아내를 탐하다』와『대한민국 유부남헌장』『남편생태보고서』를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일하고 있다. 웃음과 눈물이 꼬물꼬물 묻어 있는 글을 쓰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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