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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吉日

중앙선데이 2011.03.13 01:17 209호 30면 지면보기
태어나 처음 내가 번 돈으로 2년 전 집을 사서 ‘이사’라는 걸 하게 됐다. 작품 운반과 잦은 이사로 인해 평소 잘 알던 이삿짐센터에 전화했더니 내가 이사하려는 날엔 일이 꽉 차 있단다. 이유인즉 길일이란 것. 꼭 그날 이사할 필요는 없었지만 우연히도 내가 작정한 날이 길일이라는 말에 갑자기 그날 꼭 이사를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삿짐센터 여러 곳을 두드린 끝에 드디어 한 업체를 잡았다.

이사는 보통 아침 일찍 시작해 오전에 끝나는데, 이 회사 사람들은 9시에야 나타났다. 새 집에 도착해 짐을 풀 무렵 세상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며칠 후 겨우 짐을 정리하다 커다란 소 형상의 조각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건 덩치가 책상만 한 크기에 잘생긴 충직한 소의 모습이었다. 내겐 너무 소중해 혹시 작품을 보관하는 비닐하우스에 이사 전 미리 갖다 놓았는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창고를 뒤져봐도 안 보였다. 소 조각은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른 채 내 나이만큼 동고동락하던 벗 같은 작품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줘 든든한 존재감이 있었다. 부랴부랴 이삿짐센터에 문의해 봐도 본 적이 없단다.

마음이 저렸다. 내 인생의 오랜 친구를 잃어버리다니…. 온갖 상념과 후회가 차오르는 그 순간, 나는 길일에서 놓여났다. 길일은 길일이 아니었다. 그렇다. 사주팔자에서 말하는 삼재(三災)도 운이 바뀌는 시기일 뿐, 변화를 준비하고 파도를 넘어가면 화창한 미래가 기다리는 게 삼재다. 길일의 본질은 무사히 일을 마치는 날인 것이다. 지나간 인생 전체가 어쩜 그리도 계란판과 닮았는지 한 가지 사건엔 잃은 것과 동시에 얻은 것이 있다. 다른 사람에겐 ‘나무로 만든 소’이겠지만, 내겐 희로애락의 순간에 커다란 등을 내주던 버팀목이었다. 위안을 잃어버린 대신 집착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작품 활동도 마찬가지다. 비교우위를 선점하고 싶어서 채워도 채워도 늘 부족하다 느꼈던 과거의 모자람, 그리고 현재의 허전함에서 어느 순간 풀려났다. 소유하려는 욕망이 사라지고 나니 보이는 게 더 많아졌다. 줄을 오르는 거미도 보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리고 봄을 머금은 나무에 물이 오르는 탱탱함을 즐기는 그런 평안이 찾아왔다.

요즘엔 단순한 일상을 흔드는 사건 때문에 몸도 마음도 분주하다. 작가 데뷔 당시 그토록 부럽고 경외의 대상이었던 미술관에서 개인 전시를 제의해온 것이다. 그날이야말로 진짜 길일이었다. 장소도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밀집한 청담동이었다. 바람 부는 날에 가끔씩 들러 가치에 대한 냄새를 맡기만 하고 빈손으로 돌아오던 청담동에서의 초대. 건물 외관은 노란 대리석으로 분리된 얇은 다이아몬드 형상이었다. 건물 사이를 이어주는 계단, 그 계단은 너무 높아 차라리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여 마치 수도원으로 진입하는 기분이었다. 미술관 입구에 서자 5m 높이의 자동문이 스르륵 열리며 9m 높이의 공간이 나타났다. 그 9m 깊이의 공간은 나를 압도하고 홀려버렸다. 그 이후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이 공간을 주물러 보고 싶다는 열정적 본능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전시는 매혹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기술이 아니므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감성을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한판 벌이는 거다, 수많은 전시를 했건만 매번 가슴이 설레는 이유는 출발에 있다. 출발에는 언제나 강한 생명력이 흐른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출발의 연속이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길을 나서고, 끝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또 다른 출발을 하게 된다. 그 끊임없는 새 출발을 준비하는 오늘이 축복받은 길일이다.



안필연 환경조각가. 서울대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조소를 공부했다. 설치미술에 행위미술을 접목해 새롭고 강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들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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