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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 이야기에 담은 가족사랑

중앙선데이 2011.03.13 01:04 209호 5면 지면보기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1억 달러가 넘는 흥행을 했음에도, ‘파이터’는 국내에서 ‘장사’가 힘들어 보이는 영화다. 대체로 관객의 구미가 당기지 않는 스포츠 소재(그것도 ‘헝그리 스포츠’인 권투)인 데다, 실화의 무게감(‘아이리시 선더’라는 별명을 가진 전설의 복서 미키 워드)도 은근히 부담스럽다. 빅 스타가 나오지도 않는다(‘다크 나이트’의 크리스천 베일 정도?). ‘감동 실화’라는 홍보문구까지 접하면 살짝 진부해 보이기까지 하다.

크리스천 베일 주연의 영화 ‘파이터’

이런 오해 탓에 그냥 묻혀버린다면 ‘파이터’는 아까운 영화다. 이 영화는 권투영화지만 동시에 가족영화다. 가족구성원 간에 ‘지지고 볶는’ 애증의 드라마를 깨알같이도 그려낸다. 할리우드 영화답게 결국은 형제애를 강조하고 가족의 화해가 이뤄지지만, 그렇다고 뻔뻔스럽게 전형적이지도 않다.

연기에 관해서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마약중독자가 된 퇴물 복서를 연기한다고 14㎏을 뺀 크리스천 베일(‘고무줄 몸무게’ 설경구가 떠오른다). 그는 지난달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그의 철저한 ‘메소드 연기(배역에 몰입하기 위해 자신을 그 인물처럼 만드는 것)’를 보고 나면 상은 이래서 주는 거구나 싶을 것이다. 여우조연상을 받은 어머니 역 멜리사 리오는 어떤가. 1960년생이니 한국 여배우로 치면 환갑 격이겠지만, 그를 보면 배우에겐 연륜만한 훈장도 없지 싶다.

주인공은 디키(크리스천 베일)와 미키(마크 월버그) 형제다. 형은 과거 권투선수였고 동생은 지금 권투선수다. 형은 “슈거 레이 레너드를 다운시킨 선수”라며 거들먹대지만 지금은 초라한 마약중독자다. 동생은 ‘백업 전문’ 선수다. 남의 승률을 올려준 대신 ‘맷값’을 받는다. 구질구질한 일상에서 둘 다 벗어나고는 싶지만 쉽지 않다. 형은 사고를 쳐 교도소로 가고, 홀로서기를 시도한 동생은 가족과 등지게 된다.

둘이 펼치는 애증의 방정식은 부모와 누나들, 여자친구가 얽히면서 점점 차수(次數)가 높아진다. 주먹이 날아다니고 코피가 터지는 링 위가 차라리 편안하게 느껴지리만큼. 아들이 매 맞아 번 돈으로 살아가는 이 가정에 풍파를 일으키는 건 미키의 새 애인 샬린(에이미 애덤스)이다. 똑똑한 여자는 어수룩한 남자에게 “당신 가족이 정말 당신을 위하는 것 같으냐”며 한 방 날린다. 물론 엄마 앨리스(멜리사 리오)는 오랫동안 해온 매니저 역할을 포기할 리 없다. 샬린을 찾아간 앨리스와 미키 누나들의 드잡이는 웃음을 참기 힘든 ‘가족소동’의 결정판이다.

권투경기와 일상을 무시로 넘나드는 이 영화는 장면이 바뀔 때마다 가벼운 유머로 기름칠을 하는 걸 잊지 않는다. 정확한 숫자를 알기 힘들 만큼 많은 이 집안 딸들이 소형차에 꾸역꾸역 타고 내리는 장면, 샬린이 처음 소개받은 미키의 누나들 이름을 엉터리로 말하는 장면 등은 감독의 이름을 자꾸 확인하게 만든다. 데이비드 O 러셀. ‘스팽킹 더 멍키’ ‘디제스터’ 등 전작들은 생소하지만 이제 그는 ‘파이터’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던 괜찮은 감독으로 기억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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