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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봄 식탁

중앙선데이 2011.03.13 00:28 209호 2면 지면보기
봄은 나물입니다. 채소입니다. 그리고 사랑입니다. 그 봄을 듬뿍 먹었습니다. 10일 한 패션 디자이너 선생님이 초대한 저녁 자리였습니다.
질감 좋은 널찍한 나무 식탁 위에 채소를 넉넉하게 품은 자기 그릇이 하나 둘 놓였습니다. 원추리, 씀바귀, 방풍나물, 주꾸미와 미나리, 미역 무침에 김장 김치와 동치미까지…(정말 맛있게 보여 젓가락이 먼저 올라가느라 그만 사진 찍을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일행이 다 그랬죠. 옆 사진은 중앙일보 자료사진입니다). 된장찌개는 짭조름하면서도 깊은 맛이 우러났고, 쑥국은 향긋했습니다. 여기에 얼음물에 담가놓은 화이트 와인도 제 몫을 톡톡히 했습니다.

“오늘 정신이 없어서 그냥 두서없이 차렸어요.”
“선생님, 말 그대로 진수성찬입니다. 이건 어떻게 하신 거예요.”
“미나리에 그냥 초고추장 쓱쓱 무친 거예요, 별거 아니야. 주꾸미는 생물을 샀더니 연하네.”
“씀바귀도 새콤쌉쌀하네요. 이제 정말 봄인가 봐요.”
“난 엄나무 순을 제일 좋아하는데 아직 철이 아니에요. 나중에 따뜻해지고 제철 나물 많이 나오면 마당에서 먹읍시다.”

저는 어릴 적부터 육식 체질이었습니다. 상추 같은 채소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꼭 고기만 골라 먹었죠. 고기에 채소가 섞이면 고기 본연의 맛이 떨어진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저를 보고 아버지는 “남의 살이 그리도 좋으냐”고 하셨죠.

그런데 식성이란 게 변하는 걸까요. 어느 순간부터 채소에 젓가락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들어 식당에 가서 그냥 샐러드만 한 접시 먹고 나올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봄나물로 한 상 가득 차려진 식탁을 보니, 새삼 온몸에 기쁨이 몰려왔던 거죠.
이제 채소 본연의 맛을 느끼는 나이가 됐나 봅니다. 그래요,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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