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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금요일 새벽 4시] “이걸 확 따고 적금을 깨?”

중앙일보 2011.03.12 01:56 주말섹션 14면 지면보기








◆‘이건 다른 인종이잖아!’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배우 조인성이 문 열고 들어오는 순간 말입니다. 1m86㎝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주먹만 한 얼굴, 그야말로 이기적인 외모였습니다. 군복 차림으로도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한없이 겸손했습니다. ‘병장 말년’이면 자세가 조금 흐트러질 법도 한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무릎에 두 손을 공손히 올려놓고 조근조근 답변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그런 그가 ‘사서삼경’을 읽었다고 했습니다. 『맹자』의 ‘반구저기(反求諸己)’가 특히 가슴에 와닿는다고도 했습니다. 이실직고해야겠습니다. 취재·편집·사진기자 3명에게 모두,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삼삼한 한자말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선 모른다고 말할 수 없었죠. “아, 그거요. 참 좋은 구절이죠.” 민망했습니다.



 연예인을 ‘딴따라’로 폄하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다를 때가 많죠. 경지에 오른 사람은 더욱 그렇습니다. j가 만난 명사들에게선 늘 배울 게 있습니다. 취재팀은 그 감흥을 온전히 독자들에게 전해 드리려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고 보니 사무실 책상엔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영어 원서가 놓여 있습니다. 인성씨에게 자극받아 책을 펼치는데 누군가 말합니다. “선배, 일주일째 똑같은 페이지구먼. 그냥 한글로 읽어요, 한글로.” <김준술>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초특급 와인을 반세기 동안 만든 장인을 만나러 가면서 눈곱만 한 기대도 없었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그 유명한 페트뤼스를 혹시 한 방울이라도 맛볼 수 있을까 말이지요. 하지만 값이 어지간해야죠. 한 병에 수백만원 또는 수천만원짜린데 설령 가진 사람이라도 쉽게 딸 수 있겠어요. “사진을 찍어야 하니 페트뤼스 와인 병을 준비해 주세요. 빈 병 말고요.” 인터뷰를 주선한 분에게 부탁하면서도 큰 기대는 아니라도 희망의 끈을 아예 놓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분, 와인 병을 꺼내 놓으며 다짐을 받습니다. “이거, 따면 안 되는 겁니다.” “알아요. 누가 딴대요?” 쏘아붙이면서 생각했습니다. ‘이걸 확 따고 적금을 깨?’ 결국 제 이성이 감정을 이겼고, 그 병을 따는 일은 없었습니다. 촬영을 마친 페트뤼스는 비닐 옷을 입고, 두 겹의 스티로폼을 감고서, 단단한 박스 안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회사로 돌아와서 얘기했더니 에디터가 말합니다. “그거 많이 마시면 머리 아파. 맛있는 소폭이나 먹으러 가자.” <박현영>



◆세계에서 유일한 시청각장애인 극단 대표를 인터뷰한 뒤 그가 말한 레스토랑 ‘소등(消燈·BlackOut)’이 한동안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두컴컴해서 종업원의 손을 잡고 따라가야만 가까스로 테이블을 찾아 앉을 수 있는 식당, 테이블에 놓인 음식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볼 수 없다는 식당이라니? 시각장애인의 생활이 어떤 건지 체험해 보라는 뜻이라는 거죠. 취지는 공감이 가지만 좀 심하지 않나? 거부감이 살짝 들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홈페이지(www.nalagaat.org.il)에 들어가 봤습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시각을 사용하지 않으면 미각과 후각이 섬세해집니다. 눈을 감을 때에야 ‘보이는’ 것도 많습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았죠. 장애인에 대한 온정주의적 시각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거기엔 ‘장애인이 하는 것이니까, 품질이 좀 떨어지는 것은 봐줄 수 있잖아. 도와주자고 팔아주는 건데 뭘!’ 이런 냉소도 들어있지 않았나요? j는 앞으로 눈을 더욱 자주 감겠습니다. 더욱 많은 것을 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성시윤>





j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람섹션 ‘제이’ 40호

에디터 : 이훈범 취재 : 김준술 · 성시윤 · 김선하 · 박현영 기자

사진 : 박종근 차장 편집·디자인 : 이세영 · 김호준 기자 ,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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