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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동서 의학 통합, 한국이 딱 좋은 이유

중앙일보 2011.03.12 00:24 종합 27면 지면보기






조우석
문화평론가




지난주 ‘약골 정조·루이 14세의 아편 처방’ 칼럼을 내보낸 뒤 한 지인으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의대교수로 있는 둘째 사위에게 읽히려고 스크랩해뒀음.” 역사학회 10월 워크샵에서 정조·루이 14세 비교를 경기대 김기봉 교수가 발표한다고 귀띔해준 분도 있었다.



최근 알게 된 또 다른 사실이 1930년대 수준 높은 동서의학 논쟁이다. 당시 한의학 쪽의 핵심 논객이 『청록집』의 시인 조지훈의 부친 조헌영(1900~88)이란 점도 흥미로웠다.



 30년대 동서의학 논쟁은 괜히 시끄럽기만 했던 93, 96년 의학 분쟁보다 한 수 위였다지만, 2000년대 의학담론의 관심은 또 다르다. 동서의학 통합 쪽이다. 지난주 잠시 언급했던 『새로운 의학 새로운 삶』(전세일 등 지음, 창비)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가 전통의학을 수용한 게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현실이 급해서다. 미국의 의료비용은 GNP의 15% 내외, 즉 교육비·국방비의 몇 배라서 대체의학 쪽에 SOS를 청할 수 밖에 없다.



 하버드의대·UCLA 등이 대체의학강좌를 차리고 연구에 매달리는 것도 그런 배경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서구 근대의학이 인류를 괴롭혀온 장티푸스·콜레라·폐렴 등을 없애는 데 성공했다. 그건 병으로부터의 해방을 알라는 진정 위대한 진보다. 하지만 그런 요즘 질병은 각종 병의 3% 내외에 불과하다. 현대인을 괴롭히는 건 환경 관련이거나, 만성병·퇴행성 질환이다. 암·뇌졸중·고혈압 등이 문제인데, 이 분야 서양의학의 성적표가 영 신통치 않다.



  그 결과 황상익 교수(서울대 의사학)의 말대로 ‘전지전능한 현대의학’이라는 편견이 ‘현대의학은 무용지물’이라는 또 다른 편견과 나란히 공존한다. 서양의학 신화가 흔들리면서 근대의학의 패러다임, 즉 철학 자체에도 의문이 생긴다. 인체를 시계장치로 보고, 부위별로 뜯어보면 고장을 고칠 수 있다고 보는 생각이 위협 받는 중이다. 그건 데카르트 철학의 위기다. 몸과 마음을 칸막이했던 데카르트 이원론 철학의 충격적인 몰락의 현장이다.



 이제 인간의 몸을 생체기계가 아니고 유기적 에너지체로 보자는 전일의학(holistic medicine)이 대세다. 사실 인류의 전통의학은 모두 그쪽이 아닐까? 한의학·티벳의학·중의학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석학 러우위리에가 철학 신간 『중국의 품격』뒷장에 중의학을 언급한 것도 그런 배경이다. 그렇다면 한국이야말로 제3의학 탄생에 적격인 곳이다. 서양의학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지, 전통의학도 굳건하다. 서로 협력한다면 통합의학이 등장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렇게 탄생할 통합의학은 미래의 성장엔진으로 각광받고, 무병장수를 향한 인류의 꿈을 앞당길 수도 있다. 걱정은 지식사회의 경직된 태도다. 서구가 근대의학 패러다임에 매달리지 않는데 반해 우리가 지금 의대 커리큘럼이 유일하고 보편적이라고 맹신한다면 그게 문제다. 그래서 독서시장의 변화부터 기대한다. 지금은 건강매뉴얼 서적만 지천이지만 의학서·의학역사 등 읽을거리도 많아지길 기대한다. 지난번 밝힌 대로 의학은 이학(理學)이자 철학이 아니던가.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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