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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박실방정(朴實方正)

중앙일보 2011.03.10 13:40
이제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다. 허베이성(河北省)과 산시성(山西省)을 가르는 타이항산(太行山)에도 봄이 찾아 올 것이다. 이른 봄 양지바른 산 비탈에 파릇파릇 솟아나는 타이항산 돌미나리의 향긋한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1940년대 타이항산은 중국의 항일전선을 담당한 국민혁명군 제8로군 129사단이 주둔하고 있었다. 사단장 류보청(劉伯承)과 정치위원 덩샤오핑(鄧小平)이 지휘하는 129사단은 일본군이 가장 무서워하는 “류등대군(劉鄧大軍)”으로 유명하였다.



등정위(鄧政委)는 옌안(延安)의 공안부에 근무하는 24세의 줘린(卓琳)을 사모하고 있었다. 줘린은 윈난성(雲南省)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베이징대 물리학과에 입학한 재원이었다. 몇 차례에 걸친 덩샤오핑의 구혼 끝에 두 사람은 1939년9월 결혼하게 된다. 덩샤오핑과 줘린은 12살 차이의 용 띠 동갑으로 줘린은 초혼이지만 덩샤오핑은 세 번째였다. 덩샤오핑 부부는 결혼 후 사단본부가 있는 타이항산에서 신접살림을 꾸려 첫 딸 린(林)에 이어 두 번째는 아들을 낳았다.



전란의 혼란 속에 아들의 이름을 제대로 짓지 못하고 건강하고 귀여운 사내아이 모습대로 집에서는 “통통이(胖胖)"라고 부르고 있었다. 아기 첫돌도 되어가는 어느 봄 날 류사단장과 덩정위의 가족이 모여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류 사단장은 덩 정위와 같은 쓰촨성 출신으로 鄧보다 12년 연상이다. 두사람 역시 띠동갑으로 서로 존경하는 명콤비의 지휘관이었다.



줘린이 덩에게 아이의 첫돌이 얼마 안 남았는데 아직 이름이 없다면서 불평 섞인 이야기를 꺼낸다. 덩은 기다렸다는듯이 “통통이”가 타이항산에서 태어났으니 이름을 “덩타이항(鄧太行)”으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아내에게 넌지시 물어 본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류사단장이 빙그레 웃는다. 덩은 문득 사단장의 아들 이름이 타이항인 것을 생각해 낸다.



“류타이항(劉太行)!”

한 집안처럼 친히 지내는 류덩(劉鄧)양가에 같은 이름이 두 개씩이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덩政委는 사단장에게 은근히 불만 섞인 속내를 비친다.



“사단장께서 타이항(太行)을 독점해 버려 우리 아이에게는 지어 줄 이름이 없습니다.”

류사단장은 다시 빙그레 웃으면서 “통통이”를 끌어 안고 붓을 들어 4글자를 써 내려간다.

“朴實方正”.

이렇게 해서 덩샤오핑의 장남 덩푸팡(鄧朴方)의 이름이 나오게 되었다. 덩푸팡은 어머니의 모교인 베이징대 물리학과에 다닌 수재였는데 문혁(文革)당시 홍위병에 쫓겨 학교 연구실 창문에서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그 후 덩푸팡은 중국 장애인연합회의 주석을 거쳐 현재 전국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의 부주석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인품 역시 류보청의 기대대로 꾸밈과 거짓이 없는 단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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