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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칸 “금융위기 또 올라 남의 돈 못 굴리겠다”

중앙일보 2011.03.10 00:18 경제 9면 지면보기



투자금 2조원 돌려준 까닭은





“더 이상 남의 돈은 굴리지 않겠다.”



 미국 헤지펀드계의 거물 칼 아이칸(Carl Icahn)이 투자자에게 돈을 찾아가라고 선언했다. 그는 7일(현지시간) 아이칸 캐피털 투자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을 비롯한 미국 언론이 8일 전했다. 아이칸은 “금융위기가 불거진 2008년 아이칸 펀드 투자자에게 입힌 손실이 나 자신의 손해보다 힘들게 했다”며 “다시 올지 모르는 위기 때 똑 같은 마음의 짐을 지길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아이칸에 앞서 조지 소로스(George Soros)의 후계자로 꼽히는 스탠리 드러켄밀러와 신진 헤지펀드 매니저 크리스 슘웨이도 최근 투자자 자금을 돌려준 바 있다.



 아이칸이 2004년 출범시킨 아이칸 캐피털의 자산은 70억 달러다. 이 중 25%인 17억5000만 달러가 외부 투자자 자금이다. 2004년 이후 수익률은 106.9%로 나타났다. 올 들어 두 달 동안에만 8.7% 수익률을 올려 업계 평균 2.08%를 크게 앞섰다. 이처럼 성과를 낸 아이칸이 투자자 돈을 돌려주겠다고 나서자 아이칸이 앞으로 시장을 어둡게 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그는 편지에서 “시장에 다시 혼란이 올 거라고 예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은 늘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월가에선 그가 새 규제를 피하기 위해 투자자 돈을 상환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도입된 새 금융개혁법은 헤지펀드가 외부로부터 1억5000만 달러 이상의 투자를 받으면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비밀주의와 신속한 의사결정을 바탕으로 발 빠른 투자를 생명으로 하는 헤지펀드로선 손발이 묶이는 셈이다. 헤지펀드 솔루션 파트너인 대미언 박은 “아이칸에겐 헤지펀드 DNA가 뼛속까지 스며 있다”며 “투자자 돈을 돌려줘도 50억 달러에 이르는 자신의 돈만으로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투자자와 결별함으로써 노장 펀드매니저의 시대도 저물게 됐다. 아이칸에 앞서 퀀텀 펀드의 소로스와 타이거 펀드의 줄리언 로버트슨(Julian Robertson)도 일선에서 물러난 바 있다. 아이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상어’ ‘기업사냥꾼’에서 ‘로빈후드’까지 별명도 다양하다. 그는 애초 부실기업 채권인 ‘정크본드’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 이를 밑천으로 기업 사냥에 나섰다. 그는 겉으로 주주 행동주의를 내세워 왔다. 주로 경영이 부실한 기업을 사냥감으로 삼았다. 먼저 지분을 사 모은 뒤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으로 경영진을 압박해 주주에게 유리한 양보를 이끌어냈다. 1985년 트랜스월드항공(TWA)을 시작으로 석유회사 텍사코, 철강회사 USX, 식품·담배회사 RJR나비스코를 잇따라 주무르며 거물로 성장했다.



 반면 그는 인수한 기업을 공중 분해해 팔아버리거나 주가만 끌어올린 뒤 팔고 빠지는 수법으로 이익을 챙겨 ‘기업 파괴자’란 평가도 받고 있다. 2006년엔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국내 KT&G 지분 6.8%를 사들이며 적대적 M&A를 위협하기도 했다. 그러다 주가가 뛰자 1년2개월 만에 1500억원의 차익을 남기고 주식을 처분한 뒤 철수해 ‘먹튀’ 논란을 빚기도 했다. 당시 그가 올린 수익률은 40%에 달했다. 2000년대 이후엔 타임워너와 제너럴모터스(GM)·야후까지 그의 사냥감이 되기도 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칼 아이칸(70)=‘상어’ 라는 별명을 가진 세계적인 기업 사냥꾼. 미국 프린스턴대 출신으로 1968년 빌린 돈 40만 달러로 뉴욕증권거래소 중개인 생활을 시작한 뒤 80년대 정크본드를 통해 세계적인 억만장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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