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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물 흐르듯 둔다는 것

중앙일보 2011.03.10 00:08 경제 19면 지면보기
<본선 8강전>

○·왕레이 6단 ●·허영호 8단












제4보(37∼44)=‘물 흐르는 듯한 행마’는 흔히 고수의 행마를 지칭하는 것이지만 ‘고수 흉내를 내는 행마’를 말할 때도 쓴다. 승부란 양쪽 다 좋을 수는 없는 것. 형세 여부와 상관없이 계속 물 흐르듯 둔다면 그는 고수 흉내를 내는 것일 뿐 고수는 아니라는 얘기다.



 백△의 침투에 37의 철주는 책에 있는 강력한 공격법. 그 다음 38로 틀을 잡고 40으로 달아나기, 그리고 39·41의 공격에서 그야말로 물 흐르는 듯한 행마가 펼쳐지고 있다. 백이 여기서 한 번 더 물 흐르듯 둔다면 ‘참고도1’ 백1일 것이다. 하지만 왕레이 6단은 동물적 감각으로 이 수를 거부한다. 백1은 흑2가 안성맞춤이고 백은 여전히 미생이니 이 그림은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42의 파격이 그래서 등장했다. 상대가 ‘참고도2’ 흑1로 받아준다면 백은 아낌없이 백2를 선수하고 4로 살아버린다. 훨씬 실전적이다.



 맞는 얘기다. 하나 42에 곱게 받아줄 프로는 대한민국엔 한 명도 없다. 허영호 8단은 노타임으로 43으로 갈랐고(이 수가 더 강력해 보이지만 실은 A가 더 나았다) 왕레이도 흑의 반격을 예상했다는 듯 거침없이 44로 파고들었다. 곱게 흐르던 강물이 돌연 생사를 위협하는 폭포로 변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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