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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그림책 여왕 … 백희나

중앙일보 2011.03.10 00:06 경제 21면 지면보기








비가 오자 물기를 잔뜩 머금은 구름이 산 아래로 내려온다. 나뭇가지에 걸린 구름을 따다 반죽을 해 오븐에 구웠더니 구름빵이 됐다. 구름빵을 먹은 이들은 구름처럼 둥실 떠오른다.



2004년 출간 이후 50만 부가 팔린 그림책의 베스트셀러 『구름빵』의 개요다. 평면 이미지를 배경이 있는 세트에 입체적으로 배치해 사진을 찍는 등 상상력을 구현하는 방식도 독창적이었다. 『구름빵』은 TV 애니메이션으로, 캐릭터 인형으로, 뮤지컬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제작됐고 해외로도 팔려나갔다. 『구름빵』을 빚은 백희나(40) 작가는 2005년 볼로냐 아동도서전 픽션 부문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됐다. 『구름빵』은 겨우 그녀의 첫 번째 창작 그림책이었을 뿐이었다.



두 번째 창작 그림책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지난해 8월 출간된 『달샤베트』는 달이 뚝뚝 녹아 떨어질 정도로 무더운 여름 밤, 전기를 너무 많이 써 정전이 된 늑대 아파트에서 반장 할머니가 달물을 얼려 만든 달샤베트를 나눠줘 더위를 식힌다는 이야기다. 지난 1월엔 세 번째 창작 그림책 『어제 저녁』을 발표했다. 『어제 저녁』은 손수 만든 동물 인형들을 등장시킨 책이다. 인형놀이에서 장인정신을 발견하고자 한다면, 바로 그녀가 정답이겠다.



글= 이경희 기자,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구름빵』이 엄청나게 성공했는데 제게 지적재산권이 없어요. 많이들 말렸지만 1인 출판사를 차렸어요. 의외로 적성에 맞는 부분이 있던 걸요. 주인공은 죄다 동물이예요, 그러면 독자들이 자신의 처지에 쉽게 대입해 보죠. 우리 애들도 제책 좋아해요. 목욕탕 가서도 ‘우리 엄마 작가’라고 자랑해요.













그림책 작가 백희나의 작업실은 자동차도 못 들어가는 서울 동빙고동 주택가 허름한 건물 2층이다. 그녀가 ‘토끼굴’이라 일컫는 작업실 방방마다 지금껏 나온 책에 쓰인 인형과 소품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러나 작업용 책상에는 창작의 흔적과는 거리가 먼 ‘주문서’ ‘반품 신청서’ ‘광고 계약서’ 등이 널려 있었다. 벽면에는 ‘○○문고 500부 이상 매절 60%’ 따위의 글이 적혀 있었다. 작가는 지난해 출판사 스토리보울(storybowl.com)을 차렸다. 혼자 책 만들고 판매·수금까지 하는 1인 출판사다.



-사장님 노릇 힘들지 않으세요?



“죽겠어요. 그런데 의외로 적성에 맞는 부분이 있어요. 1인 출판을 하지 말라고 말리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어차피 출판사와 계약해서 책을 내더라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해요. 1년 걸려 책 한 권 만들면 400만~500만원 받는 게 전부니까요. 방송국에 글을 써주거나, 학습지 그림을 그리거나 강의를 해야 되거든요. 또 그런 ‘알바’는 늘 기획 의도에 맞게 수정을 해야 하는데, 두근두근하며 작업을 시작했다가도 의사소통 과정에서 진이 다 빠져요. ‘『구름빵』 이후 제대로 된 창작책 낸 게 뭐가 있었느냐’는 마음 아픈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계기가 됐어요. 안면 마비가 올 정도로 힘들게 일해왔는데…. 누구하고도 작업을 못 할 정도로 자신을 잃고 겁이 났어요. 하지만 책 만드는 게 너무 좋았으니까, 혼자 해보자 마음먹은 거죠.”



『구름빵』이 엄청나게 성공했지만 수중에 들어온 건 850만원이 전부다. 신인 작가였던 그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출판사에 지적재산권을 양도하는 계약을 맺었던 것이다. 뮤지컬이건, 구름빵 손가락 인형 세트건 뭐건 작가 의사와는 관계없이 상품화됐다.



-소송감 아닌가요?



“이렇게 잘 팔리는 책이 나쁜 계약의 선례로 남았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죠. 후배들도 ‘『구름빵』도 그랬는데’라는 식으로 당할 수 있어 후회스러워요. 바로잡아야 하지 않나 싶으면서도 아이들이 사랑해주는 책에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기는 건 또 싫더라고요. 처음엔 변호사에게 물어봐도 ‘어쩔 수 없는 계약’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요즘엔 먼저 연락 와서 알아봐 준다는 분도 있어요. 검토 중이에요.”



-볼로냐에서 상 받을 땐 출판사에서 지원해 줬나요?



“아뇨. 자비로 갔어요. 출판계 분들도 제가 겪은 경우가 특이하대요. 저한테도 문제가 있을 거고, 운도 없었겠고.”



-『달샤베트』는 ‘달샤벳’이란 섹시 걸 그룹의 이름으로 쓰였는데요.



“지인이 그룹 이름으로 쓰고 싶다고 하는 걸 누차 거절했거든요. 아이들 책인데…. 그랬더니 글자 하나 바꿔놓곤 제목엔 저작권이 없다는 거예요. 『구름빵』은 ‘어, 어’하고 넘어갔지만, 이번 건은 ‘너 이러면 안 돼’라는 말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해서 절차를 밟고 있어요.”



-이젠 저작권 도사가 되셨겠네요.



“『어제 저녁』에 나오는 인형은 하나하나 다 의장등록을 했어요. 돈도 많이 드는데, 수입을 몽땅 투입해 보호망을 만든 거죠.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때그때 제작 일지를 올려 책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는데, 하도 뺏기다 보니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못 하는 거예요. 널리 보여주고 사랑받기 위해 책을 내는 건데….”



-작품의 주인공이 죄다 동물이에요.



“동물을 내세우면 성별의 기준이 모호해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덜 수 있어요. 누가 보든 자신의 처지에 대입해 보죠. 또 현실에서 허구로 넘어가는 경계선이 중요한데, 동물이 사는 세상으로 해두면 환상적 설정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요. 『달샤베트』에선 늑대가 사는 아파트가 나오는데, 만약 사람이었다면 생활동화 같다가 옥토끼가 찾아오면서 갑자기 판타지가 돼 생뚱맞았을 거예요.”



『달샤베트』에선 달이 녹아 집을 잃은 옥토끼를 위해 반장 할머니가 달샤베트를 만들어 먹고 남은 달물을 화분에 붓는다. 화분에선 달맞이꽃이 피어나 하늘로 올라가 달이 된다. 단순한 동화 같지만 지구온난화 같은 환경 문제, 모여 살지만 단절된 아파트 등의 문제를 고루 건드린다.



-작품들이 알고 보면 교훈적인데요.



“진심으로 환경이 걱정돼요. 한 아이가 천 번 만 번 반복해 볼 만큼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을 만들고 싶어요. 어릴 때 읽은 건 평생 각인되니 정성 들여 완벽을 기할 수밖에 없고요. 안 그러면 종이 낭비에 환경 파괴죠.”



-먹는 것과 관련된 설정이 많네요.



“먹는 걸 좋아해요. 요리를 못해 거기에 대한 환상도 있고요. 복잡한 일상을 행복하고 단순하게 만들어주는 게 ‘결국 먹자고 하는 일인데’잖아요. 매지컬(마술적)한 느낌이에요. 흰자를 거품 내면 머랭이 되는데, 누가 이런 걸 알아냈을까도 싶고….”



-홍비(8)랑 범준(3), 두 아이의 엄마 역할에도 충실하신지.



“원래 계획은 막내가 어린이집에서 오는 시간에 맞춰 오후 2시 퇴근하는 게 목표였어요. 그런데 실제론 5~6시에나 가게 되네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도 자꾸 입 다물고 책 생각, 딴 생각에 빠져요. 자녀에게 올인하는 엄마들 보면 되게 존경스럽고, 그 집 아이들이 부럽고, 나도 그 집 자식이었으면 싶고 그래요. 그래도 두 아이 모두 제 책을 좋아해요. 홍비는 자기가 기죽을 것 같으면 대중목욕탕에 가서도 ‘우리 엄마 작가예요’라고 하죠.”



글=이경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시콜콜] 백희나의 작업실



언니와 함께 만든 소품 가득, 방안은 미니어처 백화점












백희나 작가의 작업실은 미니어처 세트장이다. 그림책 속에서 완벽하게 구현되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빚고 또 빚어낸 작품들로 가득하다.



우산을 들고 훨훨 날아오르는 『구름빵』의 고양이 남매에겐 책에선 잘 보이지 않던 낚싯줄이 달려 있다. 사각의 나무 프레임이 고양이 남매를 지탱시키고 있다. 종이상자를 쌓아 만든 『달샤베트』의 아파트엔 집집마다 불이 들어오도록 하는 전기 장치가 연결돼 있다. 안방 한쪽 벽면엔 인형놀이 도구들이 선반 가득 쌓여 있다. 작업용 소품이다. 천 종류는 동대문시장에서 사고, 소꿉장난 같은 살림살이 소품은 돌하우스(Doll House) 인터넷 쇼핑몰 등을 뒤져 구한다. 구입할 수 없는 소품은 손수 만들어 쓴다.



소품으로 등장하는 음식(『구름빵』의 ‘구름빵’, 『어제저녁』의 ‘초콜릿 3단 머드케이크’ 등)은 요리 잘하는 작은언니의 작품이란다.



“지점토로 케이크를 만들었더니 언니가 ‘이거 먹다가 목이 콱 막히겠다. 누가 봐도 침이 나오게 해야지!’라는 거예요. 다음날로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 놓고 언니랑 같이 작업했죠.”



그녀는 지독스러운 완벽주의자다. 사물의 배치, 조명의 종류와 정도, 배경 색깔 등을 하나하나 바꿔가며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1000컷이 넘는 실험을 거듭한다. ‘인형놀이의 종결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공정이다. 그런데도 출판사를 차리고 낸 첫 책 『달샤베트』는 단돈 1만원, 본문을 병풍식으로 펼쳐보게 제본해 제작비가 여느 책의 2배였다는 『어제저녁』은 1만2000원으로 정가를 매겼다.



“제가 조금 더 바쁘면 인건비는 아끼니까요. 그렇게라도 쉽게 사서 봐줬으면 해서요.”



이경희 기자



백희나=1971년생. 이화여대 교육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칼아츠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만든 책으로 『구름빵』(한솔수북, 2004) 『팥죽할멈과 호랑이』(시공주니어, 2006) 『북풍을 찾아간 소년』(시공주니어, 2007) 『분홍줄』(시공주니어, 2007) 『달샤베트』(스토리보울, 2010) 『어제저녁』(스토리보울, 201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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