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5년 묵힌 된장은 화장품”

중앙일보 2011.03.06 18:58 경제 9면 지면보기



세계 3대 인명 사전에 오른 박준성 아모레퍼시픽 연구원



박준성 연구원이 경기도 용인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내 연구실에서 된장이 든 항아리를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5년 이상 묵힌 된장에는 ODI(O-Dihydroxyisoflavone)란 성분이 있다. 콩이나 일반 된장에는 없는 이 성분은 세포 재생을 돕는다. 정상세포 성장이 활발해지기 때문에 암 환자가 먹으면 암세포와의 싸움에 큰 도움이 되는 성분이다. 이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낸 사람이 있다.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한방과학팀 박준성(36) 연구원이다.



그는 ODI 성분을 만드는 미생물도 찾아냈다. 이 미생물을 통해 ODI 성분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는 이 성과를 인정받아 세계 3대 인명사전에 등재됐다. 미국의 마르퀴즈 후즈 후(Marquis Who’s Who)·미국인명정보기관(ABI)·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IBC)에서 만든 2011년 인명사전에 그의 이름과 관련 업적이 소개된 것이다.



 연구의 발단은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TV를 켰는데, 암 환자들이 5년 이상 묵힌 된장을 약처럼 먹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도대체 저 된장은 콩이나 일반 된장과 뭐가 다른 걸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그게 2004년 7월이었다. 성분을 분석하려면 묵힌 된장을 구하는 게 우선이었다. 주변에서 묵힌 된장을 먹는 암 환자를 수소문하고 인터넷도 뒤졌다. 어디에서 구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으면 바로 짐을 쌌다. 강원도·전라도 일대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이미 된장을 사가기로 한 암 환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전국을 돌아다닌 지 6개월, 겨우 한 주먹만큼의 된장을 구할 수 있었다.



 거기서부터가 시작이었다. 묵힌 된장에서 ODI 성분을 찾아내고 정확한 분자구조를 아는 데에만 2년 가까이 걸렸다. “멀리서 보면 어떤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실루엣 정도는 분간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눈·코·입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데엔 시간이 걸리죠. 분자구조를 밝혀내는 것도 비슷해요.” ODI 성분을 만드는 미생물을 찾아내는 데에도 역시 비슷한 시간이 걸렸다. 박 연구원은 “미생물이 뭔지는 영업 비밀이라 말할 수 없다”면서도 “그걸 찾아냈을 때 얼마나 짜릿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특정 성분이 어떤 식품에 포함돼 있다는 걸 밝혀내는 것보다 그 성분의 생성 과정을 밝혀내는 게 학계에선 더 가치 있는 일로 평가받는다. 그래야 대량 생산 및 상용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 같은 노력이 결실을 보았다. 연구를 시작한 지 6년여 만에 ODI 성분이 함유돼 피부 재생에 효과가 큰 ‘효시아’란 화장품이 출시된 것이다.



 대학원에서 생물공학을 전공한 박 연구원이 화장품 회사에 입사한 데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엔 반만 년 역사 속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민간요법들이 있잖아요. 사실 그게 다 과학이에요. 다만 우리가 그 원리를 모를 뿐이죠. 그걸 밝혀내고 싶어요. 그럼 화장품으로도, 약으로도 만들 수 있죠.” 그는 “바이오테크놀로지(BT)가 거창한 게 아니다. 묵힌 된장 그 속에 있는 게 바로 BT”라고 말했다.



 세계 3대 인명사전에 모두 이름을 올린 건 화장품 업계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그는 지방대학인 전남대 출신이다. 해외대학 유학파도 아니다.



그는 “후배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지방대 출신이라고 불이익을 받으면 어쩌나 걱정하지 말고 지금 처한 곳에서 최선을 다해야 해요. 그게 제가 세계 3대 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게 된 비결입니다.”  



정선언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