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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웨이에선 매트 깔고 샷 모래·석유·흙 섞은 ‘브라운’이 그린 역할

중앙선데이 2011.03.06 00:49 208호 14면 지면보기
원더러스 골프장의 브라운(그린)과 워터해저드. 물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면서 골프 코스의 형태를 갖췄다.
사막길을 헤매다 만난 경찰과 트럭운전사, 스포츠카를 탄 멋쟁이 청년은 물론 인근 마을의 세탁소 주인도 골프 코스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 혹은 엉뚱하게 길을 가르쳐줬다. 골프장 위치를 잘 아니 걱정 말라면서 나를 태웠던 파키스탄 출신 택시 기사는 길을 전혀 몰랐다. 그는 골프장 직원과 전화로 여러 번 통화를 하다가 “멍청한 녀석이 길도 제대로 못 가르쳐 준다”고 짜증을 냈다. 배를 곯으며 3시간여 헤매다 보니 멀리서 들리는 이슬람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노래 소리가 장송곡처럼 들리기도 했다.

UAE 사막 골프장 좌충우돌 체험기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순간 코스를 찾았다. 골프 코스는 아랍에미리트(UAE)의 한 부족인 샤르자의 통치자 술탄 빈 무함마드 알카시미의 대저택 근처에 있었다.

3시간 사막 헤매다 겨우 찾은 골프장
UAE는 사막 골프장의 원조다. 1961년 영국의 석유 시추 회사 엔지니어들이 아부다비의 다스 아일랜드라는 곳에 골프장을 처음 만들었다. 물이 부족해 잔디로 된 코스를 만들기는 불가능했다. 그들은 간석지의 딱딱한 흙을 가져와 평평하게 다져 그린으로 썼는데 표면이 매끄럽지 않아 볼 구름이 불규칙했다. 시행착오 끝에 그들은 브라운(brown)을 만들었다. 모래와 석유를 섞은 흙으로 적당히 딱딱하고 적당히 부드러워 공이 잘 구르고, 많이 튀지도 않았다.

페어웨이에서 샷을 할 때 까는 매트.
사막에서도 골프를 치겠다며 코스를 만든 이들이었지만 페어웨이에서 매번 벙커샷을 하는 데는 질려 버렸다. 그래서 매트 위에서 샷을 할 수 있도록 룰을 개정했다. 지름 30㎝ 정도의 동그란 매트를 갖고 다니면서 볼을 그 위에 올려놓고 친다. 러프는 안 되고 페어웨이에서만 매트 사용이 가능하다.

이런 사막의 코스를 샌드(sand) 코스라고 한다. 20년 동안 이 사막 골프는 UAE의 유일한 스포츠였다. 쿠웨이트 같은 인근 국가로도 브라운이 있는 사막 골프장이 퍼져 나갔다. 회원은 대부분 유럽·미국인이다. 하지만 낭만은 오래가지 못했다. 석유로 돈을 벌면서 두바이를 필두로 제대로 된 초록색 골프 코스가 생겼다. 98년 아부다비에 그린 코스가 생기자 샌드 코스 회원 절반 이상이 빠져 나갔다고 한다.

그러나 하드 코어는 남았다. 수십 명의 샌드 플레이어들은 결속을 다지고 아부다비 공항 인근에 뛰어난 레이아웃을 한 샌드 코스 알가잘을 만들었다. 2004년 이 골프장에서 닉 팔도, 콜린 몽고메리 등이 출전해 샌드 월드 골프 챔피언십을 열었다. 우승 상품은 10㎏짜리 황금 바였다.

기자가 머문 도시 두바이엔 샌드 코스가 없다. 나의 옵션은 둘이었다. 아부다비에 있는 알가잘 클럽과 샤르자에 있는 원더러스(방랑자) 클럽이었다. 방랑자라는 이름이 나를 끌었다. 1979년 세워진 클럽이라 전통도 더 있었다. 사막에 깃발만 몇 개 꽂아 놓은 조잡한 코스는 아니다. 파 72에 6370야드로 제대로 된 코스로 보였고 홈페이지엔 영국 링크스 분위기가 난다고 했다.

낭만적인 라운드를 기원했지만 3시간여 사막을 헤맨 탓에 코스로 들어가자마자 맥이 풀렸다. 그린피는 50디르함(약 1만5000원), 택시비는 열 배였다.

코스에는 아무도 없었다. 골프장 직원은 “일주일에 30라운드 정도 열리는데 평일엔 거의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티잉 그라운드는 시멘트로 만들었다. 모래를 채운 부분에 티를 꽂아야 한다.

양쪽으로 흰색 말뚝이 보였다. OB 말뚝이 아니고 페어웨이와 러프를 구분하는 표시다. 말뚝 안에 들어오면 매트를 놓고 쳐도 되고, 말뚝 밖이면 그냥 쳐야 한다. 티샷은 페어웨이로 갔다. 두 번째 샷을 하려는데 매트가 없었다. 클럽 하우스에 두고 왔다. 헐레벌떡 갖고 온 매트 위에서 친 샷이 당겨지는 바람에 덤불 속을 헤매야 했다.

사막의 덤불보다 괴로운 건 브라운(그린)이었다. 관리하기가 어려워서 그런지 브라운의 크기는 작았다. 잔디보다 딱딱해서 공을 세우기도 어렵다.

홀 아웃 후 브라운에 난 발자국과 공 자국을 없애야 했다. 브라운 평탄작업용 넉가래는 캐디백보다 무거웠다. 너무 누르면 브라운이 망가지기 때문에 정교하게 컨트롤해야 한다. 샌드 골프장에서는 골프화를 신으면 안 된다. 바닥이 평평한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 브라운에 자국이 생겨서다.

두 번째 홀부터 본격 러프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러프에는 제법 단단한 땅도 있지만 발이 푹푹 잠기는 모래 땅이 더 많았다. 벙커샷 같은 러프샷을 하고 나면 모래가 눈을 찔렀다. 4번 홀부터는 모래땅이면 러프에서도 매트를 놓고 쳤다. 룰에 어긋났지만 샌드 코스에서 너무 안 좋은 추억만 남길 것 같아서였다. 게다가 골프장 직원이 “독사와 전갈을 조심하라”고 충고도 했던 터다. 눈에 모래가 들어가 비틀거리다 뱀을 밟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워터해저드 있고, 심지어 벙커도 있다
코스엔 벙커도 있다. 천지가 모래인데 무슨 벙커냐 싶은데 페어웨이에도 그린 근처에도 그럴듯하게 벙커를 만들어놨다. 벙커에선 클럽 헤드를 땅에 댈 수 없고, 벙커가 아닌 곳은 대도 된다는 게 차이다. 워터해저드도 있다. 몇몇 그린 앞에는 가정용 욕조 크기의 작은 연못이 있었다. 파 3인 8번홀 그린 앞 연못은 제법 컸다. 홀의 이름은 early bath(이른 목욕)다. 물이 거의 없는 코스라 이 헤저드는 큰 위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브라운에서의 퍼트와 평탄작업에 익숙해질 만할 9홀에서 라운드를 마쳐야 했다. 모래를 많이 들이켜 삼겹살과 소주가 눈에 어른거렸다. 클럽하우스에는 한국 교회 달력이 붙어 있었다. 한국인 회원이 있었는데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처음 온 사람은 그린 코스에 비해 홀당 1타 이상 더 칠 것 같다. 그러나 브라운에 적응이 되면 개선의 여지는 있다. 직원은 “회원들은 이곳에서 그린 골프장보다 대여섯 타 정도 더 친다”고 말했다.

원더러스 골프장은 몇몇 홀 페어웨이에 잔디를 심고 있다. 그러나 모래가 잔디를 바로 덮어버린다. 장비를 동원해 모래를 퍼내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사막에 일류 골프장들을 만든 두바이는 엄청난 물과 인력을 쏟아부었을 것이다. 골프장은 자연과의 합일이다. 사막에 있어야 할 골프장은 샌드 코스이며 세계 최고의 열성을 가진 한국의 골퍼는 들러볼 만한 곳이다. 참고로 골프장 직원은 전갈과 독사 얘기는 농담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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