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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얼음 3.6 km 밑 1500만 년 전 호수서 호열성 박테리아 발견...유로파 연구의 모델

중앙선데이 2011.03.06 00:34 208호 20면 지면보기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햇빛을 에너지원으로 해서 살아가는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다’. 녹색식물이 빛 에너지를 이용해 이산화탄소와 물로부터 탄수화물을 합성하는 과정이 그 첫 단계다. 다른 생물은 식물이 광합성으로 저장한 햇빛 에너지를 이런 저런 형태로 재이용하면서 살아간다. 생명의 존재에는 광합성, 따라서 햇빛이 필수라는 고정관념이다.

이 고정관념은 1977년 발견된 심해 생태계 때문에 무너져 버렸다. 당시 심해 잠수정 앨빈(ALVIN)에 탑승한 과학자들은 동태평양 해저의 갈라파고스 단층 주변에서 발견된 연기 열수공(black smoker)을 조사했다. 연기 열수공이란 해저화산에서 뜨거운 물이 뿜어져 나오는 곳으로, 열수 속의 금속 성분이 침전물을 형성해 검은 굴뚝처럼 보인다. 과학자들은 열수공 주변에서 게·가재·홍합·서관충 등 다양한 생물이 번성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심 2㎞가 넘어서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는 암흑세계가 완전히 독자적인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연구 결과 박테리아가 열수에 포함된 메탄·황화수소 등을 산화시켜서 거기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생물은 박테리아의 대사산물을 기반으로 먹이사슬을 이룬다. 광합성 대신 화학합성이 가능하며 이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생물이 있다는 사실은 생물학, 특히 우주생물학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외계에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후보지가 결정적으로 넓어진 것이다. 예컨대 수십㎞ 두께의 얼음으로 덮여 있는 유로파의 바다가 그렇다. 특히 유로파에는 이웃 위성 이오의 화산에서 분출된 황화수소 등의 물질이 풍부하게 날려오는 것으로 추정된다.

86년 발견된 루마니아의 모바일 동굴은 입구가 완전히 막힌 채 적어도 500만 년 이상 외부와 단절돼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곳은 동굴 생태계 중 생물종이 가장 풍부한 곳이다. 거미·노래기·달팽이·거머리·장구애비 등 47종이 번성하고 있었다. 생물학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개체수가 대단히 많을 뿐 아니라 동작이 유별나게 빨랐다는 점이다. 이는 동굴성 생물들의 일반적 특징과는 반대되는 현상이다. 지표에서 유입되는 유기물과 박테리아에만 의존하는 탓에 개체수도 적고 움직임도 굼떠야 정상이다.

연구 결과 이곳은 순수하게 화학합성만으로 유지되는 유일한 동굴 생태계인 것으로 드러났다. 동굴 안쪽의 온천 연못에 떠 있던 박테리아와 고세균 군락이 먹이 사슬의 1차 생산자였다. 박테리아가 지하수에 포함된 암모니아와 황화수소를 산화시킬 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하고 있었다. 박테리아는 고세균이 만들어내는 메탄도 이용하고 있었다. 햇빛이 없고 산소는 10%도 채 안 되고 암모니아와 메탄 같은 유독가스의 농도가 매우 높은 곳에서도 번성한다면 지구 밖의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남극에 있는 러시아의 보스토크 기지는 83년 영하 89도로 세계 최저 기온을 기록한 곳이다. 하지만 기지 아래 3.6㎞ 두께 얼음 밑엔 거대한 민물호수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96년 인공위성 탐사결과에 따르면 표면적이 1만㎢, 깊이는 최대 800m에 이른다. 이 호수는 적어도 1500만 년 전 빙하에 덮인 뒤 지금까지 동일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이 얼지 않는 이유는 두꺼운 얼음층이 지구 내부에서 나오는 열(지열)을 잡아두는 단열재 역할을 하는 덕분으로 추정된다. 98년 러시아 과학자들은 빙하를 3.6㎞가량 뚫고 들어갔으나 호수 표면을 약 130m 남겨두고 작업을 중단했다. 독특한 생명체가 진화했을 처녀지를 외부 미생물로 오염시킬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호수는 유로파의 생명체 탐사에 좋은 모델이 된다. 유로파의 얼음 층 아래에도 거대한 바다가 있는 데다 똑같은 오염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작업은 오염 대책을 갖춘 뒤 2004년, 그리고 2010년 재개됐다. 대책은 청정 장비로 호수 바로 위까지 구멍을 뚫은 뒤 호숫물을 구멍 속으로 빨아올려 얼린 뒤 이 얼음을 채취하는 것이다. 오는 12월에는 이것이 실현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연구팀은 보고 있다. 2012~2013년엔 수중 로봇을 투하해 물과 호수 바닥의 침전물 표본을 구할 계획을 러시아는 세워놓고 있다. 호수 물이 일부 섞여서 얼음이 된 호수 가까운 곳의 표본을 분석한 결과 뜨거운 곳을 좋아하는 호열성 박테리아가 발견돼 미스터리를 더하고 있다. 호수의 극한 환경 속에서 어떤 특수한 진화가 일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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