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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코리아의 심장이자 두뇌, 조선시대엔 신의 영역

중앙선데이 2011.03.06 00:31 208호 19면 지면보기
북악산 자락에 자리 잡은 청와대 본관 전경.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을 나서면 길 건너 청와대 본관과 바로 마주친다. 1960년 윤보선 대통령 때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이름이 바뀌었다. [중앙포토]
청와대는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심장부이자 두뇌다. 이곳을 거쳐간 역대 대통령들의 드라마 같은 영욕의 세월은 격동의 한국현대사를 대변한다. 해방과 분단, 한국전쟁을 치르고서도 대한민국은 기적 같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스스로 이뤄낸 그 업적에 대한 평가에 인색한 편이다.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더 그렇다.

사색이 머무는 공간 <57> 서울 종로구 청와대

역대 대통령들의 허물을 말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게 청와대 터다. 청와대 터가 좋지 않아서 국운이 사납고 대통령들의 말로가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하와이 망명, 박정희 대통령 내외의 비극적인 죽음,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의 구속,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아들 비리 구속,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이 청와대 터와 상관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경복궁 신무문 앞에서 청와대 건물 구조와 배치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종헌 교수(왼쪽)와 김종록 작가. 신동연 기자
과연 그럴까. 청와대 터가 나빠서 대통령들이 불행했다면 그들이 이끈 대한민국은 어떻게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초고속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할 수 있었던 걸까. 결과론적인 터 흠잡기가 반드시 답해야 할 사항이다. 대통령들은 불행하지만 나라는 잘되는 터라는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북악산은 수려한 산이다. 시내 중심가에서 이처럼 빼어난 산을 볼 수 있다는 건 분명 서울시민들의 축복이다. 맑은 날, 경복궁과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 정상에서 광화문거리를 바라보면 수도 서울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오른쪽으로 이어진 인왕산에 올라서 동쪽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북악산 자락에 자리 잡은 청와대와 경복궁이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 이만한 터가 또 어디에 있다고 흠을 잡고 터를 탓하는 걸까. 한국인들이 지나치리만큼 기대치가 높아서가 아닐까. 한국의 문화 상징 ‘풍수’를 소설화한 작가 입장에서 청와대 터가 나빠 대통령들이 불행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물론 이론서를 기준으로 삼자면 흠이 없는 건 아니다. 북악산 정상이 독불장군처럼 치켜든 머리를 동쪽으로 살짝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산(主山)의 형국은 그 터가 품은 뜻이자 땅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용도에 따라 적합한 터가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머물고 일하는 공간은 환경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국민의식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국민들 또한 그 공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말도 많은 곳 청와대, 하필이면 왜 경복궁 후원 깊숙이 급하게 떨어지는 북악산 바로 밑에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세웠던 걸까.

경복궁의 북문 신무문(神武門) 뒤쪽은 신(神)의 영역이다. 궁궐 자체를 시민들에게 돌려준 지금이야 늘 열려 있지만 왕조시대에는 닫힌 문이었다. 신의 영역은 특별한 행사 때나 드나들 수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태조 4년(1395년) 2월 29일 기사에는 백악(白岳·북악)을 진국백(鎭國伯·국사당)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북악산 정상 백악신사(白岳神祠)에서 제사를 올렸다. 그 아래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는 무예를 수련하는 공간인 연무장(鍊武場)과 과거장(科擧場), 왕이 시범적으로 농사를 짓던 친경지(親耕地)가 있었다.

“1926년 일제는 경복궁 근정전 앞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우고 1939년 경복궁 후원인 북원(北苑)에 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의 관저를 짓지요. 경복궁을 사이에 두고 일제의 업무공간과 주거공간을 설치한 것입니다. 경복궁을 앞뒤에서 억누르는 모양인데, 남의 나라를 강점한 입장이라 절대로 떳떳한 자리가 될 수 없지요. 그 뒤로 미 군정청 하지 장군이 사용하고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집무를 보는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청와대는 일본 정원 느낌에서부터 이승만·윤보선·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에 걸쳐 변천해온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습니다. 각 시기마다 필요에 의해 세워진 다른 형식의 건물들과 각기 다른 가로등, 도로 포장, 조경 등이 혼재돼 있더군요.”

동행 취재했던 김종헌(49) 배재대 건축학부 교수는 청와대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편린을 보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지난해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청와대 환경 정비 사업에 참여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의 집무 공간이 주변과 조화롭지 못하고 효율성도 떨어져 보여서 안타까웠다고 한다. 처음부터 마스터플랜에 의해 지어진 게 아니고 시차를 두고 필요에 따라 기능을 덧붙이다 보니 비롯된 현상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옴나위없는 국사에 전념하느라 업무환경 개선 같은 데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을 나서면 길 건너 청와대 본관과 바로 마주친다. 대통령의 집무공간을 고스란히 볼 수가 있다. 당혹스럽다. 일반 살림집에서도 출입구와 안채가 일직선에 놓이면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대문이나 내담 같은 조형물을 설치해 사생활을 보호하고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았다. 대통령의 집무실이 그대로 노출되는 건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청와대를 찾아온 귀빈들을 접대하는 영빈관 역시 도로면에 바로 붙어 있어 편안한 장소가 아니다. 북악산과 인왕산의 풍광을 가리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청와대의 정원이라 할 수 있는 녹지원 역시 비서동인 위민관과 마주하고 있어서 대통령이 조용히 사색하고 국정을 고민하기에 적합한 장소인지 의문이다. 녹지원의 중심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한옥 상춘재도 높이 솟아있는 기단부로 인해 정원과 분리된 느낌을 준다. 자연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한옥의 미덕임을 생각할 때 아쉬움이 남는다. 기단을 낮추고 담장과 조경 등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건물들과 공간들이 기능에 따라 일정한 축을 형성해야 하는데 청와대는 그렇지 못합니다. 도로면에 평행하게 일렬로 늘어선 배치 형식은 안정감이 부족하지요. 위압적인 청와대 본관에 사용된 단청 역시 붉은색은 빼고 청색 위주인데 이 때문에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아 있는 느낌입니다. 제대로 단청해서 진취적이며 밝고 희망찬 기운이 뿜어 나오게 해야 합니다.”

김 교수의 지적은 건축가들은 물론 청와대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하다. 대통령 집무실이 비서실인 위민관과 500m나 떨어져 있다. 그래서 수석비서관들이 위민관에서 대통령 집무실까지 가려면 자동차를 이용한다. 그 사이 2개의 초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패찰 색깔이 다른 일반 행정관들이나 비서관들은 좀처럼 대통령 집무실에 접근할 수조차 없다.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 오벌 오피스(Oval Office)가 참모들의 방과 겹겹이 붙어 있거나 층만 달리하고 있는 것과 너무 대조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무실이 참모들의 접근조차 막는 폐쇄형 구조라는 문제점을 간파하고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 대통령 집무실을 두려 했다. 하지만 경호 문제로 포기했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본관 가까이에 비서동 하나를 신축하고 대통령 집무실을 마련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위민관으로 내려와 비서실장이나 수석비서관들의 보고를 받는다고 한다. 처음부터 집무실이 효율적으로 꾸며졌다면 이런 불편은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공간을 꾸미고 그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국가 최고통수권자의 공간을 통해서 그 사회의 권력구조와 국가결사체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다. 경복궁과 북악산 사이에 전통건축 형식으로 들어선 청와대는 지세와 순응하지 못하고 역사 공간을 압도한다. 풍수학적 배치는 차지하고라도 건축학적 조형미조차 고려하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경복궁 후원인 북원을 훼손하며 들어선 일제 총독관저를 별 생각 없이 계승한 탓이다.

“청와대에선 죽어 나간 사람은 있어도 태어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내가 1985년에 딸을 낳았을 때 아버지가 너무 좋아했다. 청와대 생긴 이후 처음 태어난 생명이라고. 아버지가 손녀딸 업어주느라 출근이 늦어진 적도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큰아들 재국씨가 지난해 9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일화다. 생기 넘치는 공간은 역시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의 저자 이일훈(57) 건축가의 일관된 주장처럼 집보다 정신이 문제다. 독선과 아집을 버리고 온 국민과 함께 진정으로 울고 웃었다면 국부로 존경받는 대통령이 왜 없었겠는가. 국민들이 고난의 연대에서 입은 상처를 대통령 탓으로 돌린 측면이 있다. 그만큼 대통령에게 기대하고 의존하는 마음이 컸던 것인지도 모른다.

정권이 바뀌거나 대통령의 신변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청와대를 옮겨야 한다는 여론이 일곤 한다. 용산공원, 창덕궁, 성남 청남대 등이 거론된다. 이제 선진 대한민국 대통령에 걸맞은 집무 환경을 배려해야 할 때다. 청와대 자리는 본래 경복궁 북원이었다. 따라서 경복궁 복원 공사는 청와대가 이전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북원의 장소성이 회복된다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장소성의 회복은 정신의 회복이기도 하다.

청기와로 덮은 집이라는 의미의 청와대(靑瓦臺)는 1960년 윤보선 대통령 때 경무대를 고쳐 부른 이름이다. 언뜻 미국의 백악관(White House)이 연상된다. 이름은 터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름을 바꾸기 전에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지향점부터 정했어야 옳았다. 추구해야 할 가치가 정해지면 이를 구현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구체화될 수 있다. 경복궁의 근정전(勤政殿)과 창덕궁의 인정전(仁政殿), 덕수궁의 중화전(中和殿)은 건물이 세워진 당시의 세계관과 지향점이 들어 있다. 표피적이고 즉물적인 이름 청와대에 어떤 가치관과 지향점이 들어 있는가. 장소 이전 못지않게 뚜렷한 국가관과 정치철학이 담긴 새 이름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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