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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로 번지면 유가 150~220달러, ‘분노의 날’이 1차 고비

중앙선데이 2011.03.06 00:29 208호 22면 지면보기
국제유가가 춤추고 있다. 리비아 등 중동·북아프리카 민주화 요구 시위라는 장단에 따라 급변동하고 있다. 한국 등 원유 수입국들의 주가도 덩달아 출렁이고 있다.

이슬람 민주화 3차 오일 쇼크 부를까

미국 UC샌디에이고대 제임스 해밀턴 교수(경제학)는 최근 발표한 ‘역대 오일 쇼크 분석’이란 보고서에서 “30년 가까이 잠복한 오일 쇼크 트라우마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1979년 2차 오일 쇼크 이후 정치적 변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다. 1·2차 걸프전 같은 일이 있기는 했다. 어디까지나 일시적으로 원유값이 뛰었다. 그 사이 원유값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변수는 경제 성장에 따른 수요 증가였다. 그 중심에 중국이 똬리를 틀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그레고리 맨큐 교수(경제학) 등은 “더 이상 정치는 유가 결정에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고 말할 정도였다.

맨큐의 선언이 너무 성급했나? 돌연 정치변수가 되살아났다. 익숙한 전쟁이나 종교 갈등·혁명, 쿠데타, 미국의 침입 같은 모습이 아니다. 중동과 어울림이 덜해 보이는 민중봉기 형태를 띠고 있다.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지난해 12월 시작됐다. 넉 달째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사이 튀니지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종신 대통령과 이집트 40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가 축출됐다. 현재는 리비아에서 유혈 내전이 진행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있는 아라비아반도로 확산될 조짐이다. 바레인과 예멘이 다음 차례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이처럼 단기간에 독재자들이 줄줄이 무너진 적이 거의 없었다”고 레이철 브론슨 시카고 국제문제연구소 이사는 말했다. 그는 미국 내 최고 중동 전문가로 꼽힌다.

FT, “원유 공급 정상화까진 멀어”
이슬람 근·현대 역사에서 드문 민주화 시위 앞에 글로벌 시장은 바짝 긴장했다. 3차 오일 쇼크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5일 세 가지 단기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먼저 리비아 무아마르 카다피의 조기 퇴진의 경우다. 리비아 사태로 줄어든 원유 공급량인 하루 120만 배럴이 다시 회복되기까지 적잖은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FT는 “카다피가 빨리 물러나도 원유값이 리비아 사태 직전 가격인 배럴당 90달러대로 진정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카다피 축출이 지연되는 경우다. 리비아가 민주화 시위 중에도 수출하고 있는 하루 60만 배럴도 끊길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국제 원유값이 급등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산유국들이 즉시 생산을 확대할 수 있는 규모가 하루 470만 배럴이어서 리비아 원유 수출이 전면 중단돼도 그 충격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FT는 분석했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최악의 경우다. 전 중동 지역으로 시위의 전염이다. 세계 원유 매장량 57%, 글로벌 원유 생산량 40%를 차지하는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이 격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그 중심에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가 있다.

사우디에서도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 왕정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을까? 브론슨 시카고 국제문제연구소 이사는 최근 워싱턴 포스트(WP)지에 쓴 칼럼에서 “사우디 왕정이 민주화 도미노에 흔들릴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근거는 왕정 반대세력이 크지 않고 사우디 사람들이 왕이 오일머니로 베푸는 복지 혜택에 만족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사우디 국왕이 위기 의식마저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집트 독재자 무바라크가 권좌에 물러난 직후인 지난달 23일 압둘라 압둘 아지즈 사우디 국왕이 급거 귀국했다. 왕궁을 비운 지 석 달 만이었다. 그는 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미국에 머물렀다. 동시에 사우디 정부는 360억 달러(40조3200억원)에 달하는 새로운 복지 혜택을 발표했다. 돈의 힘으로 민주화 요구를 달래려는 것이다.
반론도 만만찮다. 이집트 아메리칸대 찰스 데이비슨 교수(정치학)는 지난주 영국 인디펜던트지와의 인터뷰에서 “북아프리카 독재자들은 특정 리더가 지휘하는 시위가 아니라 트위터 등 인터넷에 의해 조직된 데모에 의해 쫓겨났다”며 “사우디에 반체제 세력이 보잘것 없어도 대규모 민주화 시위는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 사우디 반체제 진영은 이달 11일(현지시간)을 ‘분노의 날’로 지정하고 트위터를 통해 왕정 타도를 외치고 있다. 이날 시위 규모와 강도를 통해 사우디 왕정의 운명을 가늠해볼 수 있을 듯하다. 또 이번 민주화 도미노의 1차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도 만들어 볼 수 있을 전망이다. “민주화 시위가 사우디 등으로 퍼지면 국제유가는 배럴당 150~220달러까지 튀어오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라고 FT는 5일 보도했다.

기존 원유 공급체제 흔들
민주화 시위가 사우디로 전염되든 안 되든 그 흔적은 깊고 클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기존 원유 공급체제가 바뀔 수 있다고 전망했다. UC샌디에이고대 해밀턴 교수는 “원유 수입국들이 산유국의 부패한 왕이나 독재자를 묵인하거나 그들과의 협력 아래 원유를 공급받아왔다”며 “민주화 시위로 원유 공급체제가 세 번째 변화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첫 번째 변화는 1973년에 일어났다.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화하면서 값과 공급량을 독자적으로 결정하기 시작했다. 이는 서방 사람들에게 문화적 충격과 같았다. 이전까진 원유 생산량과 가격은 서방 메이저 석유회사들에 의해 사실상 결정됐다. 다르게 말하자면 서방이 식민지 시절에 짜놓은 원유 공급체제가 사실상 무너진 셈이다.

두 번째 변화는 79년 이란 회교혁명과 함께 일어났다. 세계 5대 산유국인 이란의 원유가 서방이 쥐락펴락하기 힘든 이란 대중과 강경 종교 지도자의 수중에 떨어졌다. 이란의 혁명 열기가 중동·아프리카 전역으로 퍼지면 기존 원유 공급체제가 한번 더 바뀔 수 있었다. 당시 서방은 자신들이 조종 가능한 소수 독재자나 왕 대신 불특정 다수가 원유 공급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예상에 경악했다. 하지만 회교혁명이 이란 국경을 넘지 못해 서방의 패닉은 얼마 후 진정됐다.

두 차례 변화는 모두 오일 쇼크로 이어졌다. 해밀턴 교수는 역대 고유가 시대를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오일 쇼크의 진짜 원인은 기존 원유 공급체제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예상과 함께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번 시위가 기존 원유 공급체제를 뒤흔들어 놓을 조짐이 보이면 주요 거래소의 원유 값은 신경질적으로 튀어오를 가능성이 있다.

이번 민주화 시위가 지금 수준에서 진정되더라도 원유 공급체제에는 적잖은 흔적을 남길 수 있다. 영국 가디언지는 “민주화 시위는 서방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이슬람 대중에 의한 원유 지배가 더 강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국, 무엇을 할 것인가?
그 결과는 한국 등 원유 수입국들이 치러야 할 ‘민주화 비용’일 수 있다. 이는 산유국들의 재정지출 증가에 따른 유가 인상분이다. 민주화 시위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사우디와 리비아 등의 지배 엘리트들은 자국민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복지 지출을 늘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비용을 장기계약으로 도입하는 원유의 값에 전가시키려 할 공산이 크다.

한국은 1·2차 오일 쇼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차 때 평균 성장률이 5.4%포인트 하락했다. 한 차례 겪어 나아질 법도 한데 2차 때는 8.3%포인트 떨어졌다. 두 차례 모두 물가 상승률은 두 자릿수에 달했다. 반면 세계 경제성장률은 1차 때 4.4%포인트 하락했다. 2차 때는 1.4%포인트 낮아졌다.

이번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역사는 두 가지 길을 제시한다. 미국과 유럽은 1차 오일 쇼크 때 경기방어를 선택했다.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물가가 오르는 것은 일단 내버려뒀다. 그 결과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인플레이션)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미국과 유럽이 2차 오일 쇼크 때 보인 대응은 달랐다. 경기방어는 포기했다. 대신 기준금리를 두 자릿수대까지 끌어올리며 인플레이션 사냥에 나섰다. 이른바 ‘인위적 경기침체(더블딥)’가 그 후유증이었다. 하지만 경제가 고에너지 소비구조에서 저에너지 소비구조로 전환됐다.

당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었던 폴 볼커는 최근 회고담에서 “다시 오일 쇼크가 발생하면 인플레를 억제할지 아니면 일자리를 지킬지 쉽게 선택할 수 없을 듯하다”고 털어놓았다. 왜일까? 그는 “이미 실업률이 높아 인플레를 억제하는 쪽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선택의 순간 경제정책 담당자들과 중앙은행가들이 맞닥뜨릴 일이 무엇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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