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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농협 투명하지 않았다, 이번이 개혁의 마지막 기회”

중앙선데이 2011.03.06 00:17 208호 27면 지면보기
4일 새벽 2시30분. 김재수(54·사진) 농림수산식품부 1차관은 잠에서 깼다. 흥분과 초조함이 뒤섞인 심정이었다. 전날 저녁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는 “내일 농협법 개정안을 법안 소위와 상임위에서 통과시키겠다”고 합의 내용을 밝혔다. 17년간 말만 무성하던 농협 개혁이 눈앞에 다가오게 된 것이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 아침 일찍부터 의원들 한 명 한 명에게 전화를 돌렸어요.”

농협법 개정안 주역 김재수 농식품부 차관

이날 오전 11시, 상임위 전체 회의가 열린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만난 김 차관의 표정은 밝았다. 농협법 개정안이 의결된 직후였다. 그는 “이제 시작이다. 정말 제대로 된 농업 정책을 펼 발판이 마련된 것”이라며 웃었다. 행정고시 21회인 김 차관은 1981년 농식품부(당시 농수산부)로 발령받은 뒤 30년간 농정 공무원으로 일했다.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농협의 신용사업(금융)과 경제사업(농산물 판매·유통·가공 등)을 쪼개는 것이다. 농협중앙회가 농민 교육과 지도를 맡고, 나머지 업무는 신용지주회사와 경제지주회사에 맡겨 전문성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1 중앙회, 2 지주회사’ 체제다. 농협중앙회가 신용 사업 중심으로 성장하느라 경제사업 등 본연의 역할에 소홀했다는 반성이 출발점이었다.

-그동안 농협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농협이 사실 농민들을 위한 조직이잖아요. 농민들이 지은 농산물을 팔아주고, 유통하고 그런 역할이 최우선이거든요. 그런데 그동안 은행업 하느라 그 역할을 너무 못했어요. 산지에서 농민들 만나는 대신 도시에서 돈 버는 데 몰두한 거죠. 따지고 보면 지난해 배추 파동, 지금의 구제역 사태도 농협이 제 역할을 못해서 생긴 일입니다. 농협이 산지 배추를 적당한 값에 사서 도시에 공급해 주고, 영세 축산업자들한테 미리미리 방역 교육도 시키고 해야 해요.”

-농정 공무원으로서 폐단을 많이 느끼셨나요.
“아주 뼈저리게 느꼈어요. 예를 들어볼까요. 94년 제가 시장과장을 할 때 농안법 파동이 일어났어요. 당시 가락시장에 어마어마한 혼란이 벌어졌지요. 농산물 유통이라곤 가락시장 하나에만 기대고 있을 때니 수도권 전체에 농산물 공급이 마비됐어요. 당시 ‘농협이 유통 기능을 좀 해 줬더라면’ 하고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몰라요.” (※농안법 파동은 94년 5월 중매인의 도매 행위를 금지하는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자 일부 중매인들이 파업을 벌인 사건을 가리킨다. 당시 도매시장으로 들어온 농산물이 소매상인에게 전달되지 않아 산지 농산물 가격은 폭락하고 소비지 가격은 폭등했다.)

-당시 충격이 크셨나 봅니다.
“엄청난 혼란이었지요. 그때 농안법 파동을 함께 겪은 농수산부 장관이 지금 국회 농식품위원장인 최인기 의원입니다. 그분도 농협의 유통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히 느낀 거죠. 이번 개정안 보완 작업에서 농산물 유통·판매 기능을 강화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쓴 것도 누구보다 이런 현실을 잘 알기 때문이에요.”

이번에 통과된 개정안에는 기존 안에 경제활동 활성화를 위한 장치가 다수 추가됐다. 12조원 규모의 농협중앙회 자체자본금 중 30% 이상을 경제사업에 배분한다든지, 중앙회가 수행하고 있는 모든 경제 사업을 5년 안에 경제 지주회사로 이관한다든지 하는 것이 예다. 또 정부는 경제 지주회사가 필요로 하는 자본금을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조항도 추가했다.

-일부 추가된 조항은 파격적인 혜택으로 보입니다.
“맞습니다. 정부 지원을 보장하는 구체적인 조항이 많이 추가됐어요. 정부는 돈을 지원하되 경영 간섭을 해선 안 된다, 정부는 지원 계획서를 만들어 국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런 안전 장치들이 마련됐어요. 정부로선 할 수 있는 것 다 할 테니 농협도 협조해달라는 심정이었습니다. 농협도 이번에 정부를 많이 믿고 개정안 통과 작업을 일임했습니다.”

-앞으로 경제 사업은 어떻게 활성화하게 되나요.
“농협이 역할을 잘해 주면 농민들은 생산에만 집중해도 됩니다. 지금 전체 농산물 중에서 농협이 계약 재배하는 물량이 10% 정도밖에 안 돼요. 5년 안에 이 계약 재배 물량을 50%로 늘리는 게 목표예요. 지금은 개별 농민들이 힘이 없으니까 농산물을 유리한 조건에서 팔 수가 없었죠. 소비자 가격도 많이 안정화될 걸로 봅니다.”

-오늘 상임위 회의장 앞에서 농민단체가 시위를 하기도 했죠. 일각에선 이번 개혁이 농민에게 과연 좋은 영향을 미칠까 우려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과연 신·경 분리가 됐을 때 경제사업이 얼마나 활성화하겠느냐, 돈 안 되는 사업은 내팽개치지 않겠느냐 하는 우려의 시선이 많습니다. 하지만 기존에 경제사업이 위축됐던 건 역량과 전문성이 신용사업에 너무 몰렸기 때문이에요. 앞으론 경제사업만 전문적으로 하게끔 분리한 거고, 사업 성과를 지속적으로 평가할 겁니다.”

농협중앙회의 역대 직선 회장들의 비리 사건은 이 정권 들어 농협 개혁이 급물살을 타는 계기가 됐다. 정대근 전 중앙회장의 뇌물 수수 사건이 터진 2008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은 가락시장을 찾은 자리에서 농협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번 개혁 작업이 간부들의 비리를 근절할 수 있을까요.
“그동안 중앙회 권력이 너무 막강했어요. 금융업, 경제 자회사도 하면서 농민 지원도 하니 경영에 책임성과 투명성이 없었습니다. 이 정도로 복잡한 백화점식 사업에선 어떤 사람이 들여다봐도 제대로 감사나 감독을 할 수가 없어요. 불가능해요. 이제 성격이 유사한 사업만 묶어 돌아가니 투명성
을 확보할 수가 있을 겁니다.”

-신용 지주회사는 230조원 자산의 대형 지주회사가 되는데요.
“신용 부문은 나름의 전문성을 갖고 토종 금융사로서 크게 성장할 거라고 봅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사업이 섞여 있어 전문성을 못 가졌던 건 금융업도 마찬가지였어요. 앞으로는 외부 투자도 더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을 하고, 금융 전문가가 모여 집중적으로 사업을 키우게 될 겁니다.”

농식품부는 이번 임시국회를 앞두고 분주히 움직였다. 2009년 12월 처음 마련된 농협법 개정안은 1년3개월간 국회를 떠돌았다. 김재수 차관은 올 1월부터 구제역 사태에 몰두하는 유정복 장관을 대신해 언론사·국회를 직접 찾아다니며 농협법 개정안을 설명했다

-구제역 사태 와중에도 농식품부가 농협법 개정안 처리에 상당한 힘을 쏟았는데요.
“이번에 무산되면 끝이라고 다들 생각했습니다. 농협 개혁은 17년을 끌어온 논의예요. 이번 정부에서 개혁 마음을 먹었을 때 여세를 몰지 않으면 앞으로 또 언제 기회가 올지 알 수가 없어요. 이제 큰 고개를 넘었으니 그동안 받았던 비판을 흡수해서 제대로 된 조직을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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