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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분리

중앙선데이 2011.03.06 00:14 208호 29면 지면보기
2007년 11월 28일 수단 당국은 길런 기번스라는 54세 영국인 여교사를 구속했다. 수도 하르툼의 영국식 교육기관인 유니티고교의 교사였다. ‘종교를 모욕하고 혐오를 부추기며 성희롱과 인종차별, 그리고 성 매매를 하고 종교적 신앙을 경멸한 자’를 다스리는 형법 조항이 그에게 적용됐다. 최고 40대의 채찍형과 장기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죄목이다.

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하지만 실제 혐의는 단순했다. 무함마드라는 학생이 학급에 있던 테디 베어 인형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인 것뿐이었다. 문제는 무함마드라는 이름이 이슬람 예언자와 똑같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한갓 곰 인형에 감히 거룩한 예언자의 이름을 붙였다는 오해를 받고 신성모독 혐의를 뒤집어쓴 것이다.

샤리아(이슬람법)에 따르는 법원은 체포 다음 날인 29일 유죄 판결을 내리고 징역 15일과 국외추방을 선고했다. 다음 날인 30일 하르툼에서는 1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용서는 없다. 사형을 시켜라” “총살대에 세워라”는 구호를 외쳤다.

서구사회는 21세기에 벌어진 이 이해할 수 없는 일 앞에 놀랐지만 방법이 없었다. 영국 상원의 무슬림 의원인 아메드 경과 와르시 남작부인이 현지를 찾아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에게 사정을 했다. 그 직후 기번스는 사면됐다. 그는 “이슬람을 존중한다”는 반성문을 발표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끔찍한 사건도 있었다. 2005년 5월 수단 일간지 알위파그의 무함마드 타하 무함마드 아메드 편집국장이 체포됐다. “500년 전에 나온 이슬람 문서를 살펴보니 예언자 무함마드 부친의 원래 이름은 압달라(유일신인 알라의 종이란 뜻)가 아닌 압델 라트, 즉 라트(이슬람 이전 이교의 우상)의 종이란 내용이 들어 있었다”라는 기사를 실은 것이 문제였다. 신성모독 혐의가 적용됐다. 법원은 이 신문에 거액의 벌금을 물리고 3개월 정간 처분했다. 아메드는 석방됐으나 이듬해 9월 목이 잘린 채로 발견됐다.

신성모독을 법으로 다스리는 나라 중 하나가 파키스탄이다. 인도에서 분리된 직후인 1948년 신성모독법을 제정했다. 유죄 판결이 나면 사형에 처할 수도 있다. 이 나라에서도 “예언자의 부친은 이슬람이 생기기 이전 사람이라 무슬림이 아니었다”는 말을 했다가 고발되는 일이 수단과 똑같이 벌어졌다. 화장실 벽에 예언자의 이름을 적었다가 기소된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 나라의 유일한 기독교도(인구의 4%) 장관으로서 이 법이 전근대적이라며 폐지운동을 벌이던 샤바즈 바티 소수민족 담당장관이 2일 암살당했다. 1월에는 이 법에 반대하던 살만 타시르 펀자브 주지사가 경호원의 총에 맞아 숨졌다.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이 배후로 알려졌다.

이는 종교가 재판과 정부 정책 등 세속의 일에 개입하면 사회가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헌법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는 세력이 있는지 종교 갈등이 갈수록 정치문제화하고 있다. 먼 나라에서 벌어진 일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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