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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첩장 발행 상한제

중앙선데이 2011.03.06 00:07 208호 30면 지면보기
첫째 딸이 결혼할 때 아내와 나는 고심 끝에 청첩장을 돌리지 않기로 했다. 사돈댁에 보낼 선물로 달랑 베개 두 개를 준비했다. 다른 예물은 전혀 없었다. 사돈 내외가 편히 자고 개운한(?) 하루를 시작하라는 뜻으로 베개를 선물한 것이다. 사돈 내외는 베개에 수놓은 전통 민화 호랑이와 학을 보고 흡족한 모습이었다.

지난 설 무렵 우리 대학 총장은 교수들에게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고 이태석 신부의 아프리카 이야기가 담긴 책을 선물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평생학습을 이어가는 학생들에게 낮은 자세로 친절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라는 상징성을 담은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뜻으로 이해하고 감동했다.

선물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커뮤니케이션 통로다. 감사·애정·축하·격려의 감정이 선물이란 매개체를 통해 전달되기 때문이다. 선물의 상징성이 분명하지 않아 의사전달 기능이 완벽하게 수행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그래서 선물을 해석하는 데 있어 주는 사람의 메시지 입력과 받는 사람의 출력 사이에는 간혹 에러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베개를 받은 사돈이 ‘우리보고 잠이나 자라’는 뜻으로 선물의 의미를 받아들였다거나, 한 권의 책에 대하여 ‘이걸 선물이라고 했나’라고 여긴다면 메시지 입력과 출력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발생할 것이다. 그래서 선물의 상징성에 대한 오해 때문에 선물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몸값이 비싼 어느 교수를 사사하는 학생의 부모가 교수에게 선물을 했다. 선물을 받은 교수가 학부모에게 ‘당신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고 했단다. 선물 내용이 맘에 들지 않았거나 아니면 소액의 선물이었을 것이라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이건 선물을 받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 그 교수는 이런저런 비위로 파면까지 당했다.

선물은 단순히 물품 그 자체만이 아니라 선물을 주는 사람이 그 물품을 선택하기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 등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모든 행동을 포함한다. 선물을 고르는 것부터 전달하고 평가받는 모든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가장 합리적이랄 수 있는 품목인 ‘돈’이 선물로서 외면되거나 경시되는 점도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돈을 선물한다는 것은 무엇을 선물로 구입할지 고민하는 에너지와 노력을 모두 생략하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선물로 전달하는 공개적인 장소가 있다. 결혼식장이다. 결혼 하객들은 축의금 명목으로 현금을 주고받는다. 현금은 매우 실용적이고도 유용한 선물 품목이다. 준 만큼 무형의 대가를 기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답례를 위하여 치부책(置簿冊)을 이용하기도 하는데, 손님들이 전해준 돈의 액수를 기록해뒀다가 훗날 보답을 하는 경우에 참고한다. 주고받는 액수의 불일치가 종종 발생하기는 하지만.

권력 거리(권력 불평등)의 지수가 높거나 유교의 영향이 짙은 문화권에서는 선물로 현금의 이용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는 체면 유지를 위해 비싼 의례를 치러야 하는 생활관습에서 나온 현상으로 보인다. 퍼냄과 아가일의 저서 돈의 심리학에서는 돈이 교환의 도구, 거래의 단위, 축적 가치, 연기된 지불의 척도로 기능할 수 있다고 했다. 신성한 결혼식장에서 돈이 축적 가치의 기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고액의 결혼부조금은 유예된 뇌물(delayed bribe)이 될 가능성이 크다. 본격적인 결혼 시즌이 시작되고 있다. 특급호텔에서 열리는 결혼식 청첩장을 받으면 부담도 커진다. 물가 폭등이 서민 등을 휘게 만들 때 호텔 식사비보다 더 많은 축의금을 꼭 내야 할지 골머리가 아파진다. 이젠 정말 ‘청첩장 발행 상한제’를 도입할 때가 아닌가 싶다.



강성남 1992년 서울대 행정학 박사 학위를 딴 뒤 대학·국회·시민단체에서 활동해 왔다. 저서로 『부정 부패의 사회학』 『행정변동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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