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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나 찾는 이 있거든 봄마중 갔다 전해주오

중앙일보 2011.03.04 03:19 Week& 2면 지면보기
지난 주말 남도는 봄비에 젖었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봄의 산물이 그 봄비를 맞고 스멀스멀 살아나고 있었다.



전남 신안에서 경남 거제까지, 겨울을 먼저 이겨낸 남해바다의 섬까지 들어가서 봄을 찾아다녔다. 눈매가 선해지고 마음이 푸근해진 느낌이다.



글=김영주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1 봄비를 가득 머금은 홍매화 한 송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2 전남 여수시 선원동의 한 가정집 담벼락에 핀 동백꽃. 지심도는 봄이 되면 터널을 이룬 동백군락에서
 붉은 꽃이 터져 나온다.
3 거제도 구조라초등학교의 아름드리 매화나무. 지난 설 무렵 진작에 꽃을 피웠다.








# 푸른 시금치 섬, 신안 비금도



비금도는 겨울 시금치로 100억원을 벌어들이는 섬이다. 비금면사무소 강병순(42) 계장은 “시금치로 100억, 천일염으로 100억, 바다에서 100억, 다른 것들로 100억을 한다”고 자랑한다. 인구 4000명에 소득이 400억이니, 가구당 소득이 약 1만 달러에 이른다. 부자 섬, 부러운 섬이다. 개중 시금치는 가장 큰 효자 작목이다. 가을 나락을 걷어낸 논에 심어 이듬해 봄 보리를 심기 전까지 단기간에 수확하기 때문이다. 물론 맛도 으뜸이다.



 “여그 것이 게르만(게르마늄)이 많다네. 똑같은 해풍이 불어도 저 건너 도초보다 비금 것이 게르만이 훨씬 더 많다네. 우리가 묵어봐도 달어. 본래 비 오고 나면 맛이 덜한디, 아직 비가 안 왔어.”



 김윤자(70) 할머니는 접혀질 듯이 허리를 굽히고 시금치를 캐고 있었다. 비금도 시금치는 ‘섬초’라는 고유 브랜드가 있을 만큼 경쟁력이 있다. 소쿠리에 담긴 시금치를 한 움큼 집어보니 봄동처럼 단단하다.



 섬 한가운데에 솟은 그림산(226m)에 오르니 푸른 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썰물이 진 갯벌은 실핏줄 적나라하게 육질을 드러내고, 시금치·대파·보리가 점한 뭍은 사철 잔디를 심어놓은 듯이 푸르다.



● 가는 길  목포 여객선 터미널에서 쾌속선·도선이 각각 4회 운항한다. 쾌속선은 1시간, 차를 실을 수 있는 도선은 2시간 걸린다. 비금면사무소 061-275-5231.



# 홍매 핀 산사, 순천 금둔사



금둔사는 순천 낙안읍성 뒤편 금전산 기슭에 자리 잡은 소박한 절집이다. 산이 바람을 막아주고 가람의 배치가 남향이라 산 아래 낙안(樂安) 마을보다 더 봄볕이 잘 든다. 덕분에 금둔사 홍매는 매년 설날 무렵 첫 개화를 알린다. 이르면 1월에도 꽃망울을 터트린다. 하지만 올봄에는 금둔사 홍매도 일주일 늦게 찾아왔다.



 금둔사 홍매는 봄의 전령사로 이름이 높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봄을 먼저 낚으려는 사진동호회 사람들이 무더기로 찾아든다. 여행 블로거 사이에서는 숫제 순례 코스가 됐다. 여기서 충고 한마디. 촬영에만 빠져 있으면 정작 매화를 놓치기 일쑤다. 지허 스님도 “사람들이 매화는 안 좋아하고 사진만 좋아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금둔사 매화는 향이 유독 진하다. 스님은 “겨우내 언 땅을 뚫고 힘차게 올라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매화나무 사이에 사람 둘이 앉을 만한 반석이 놓여 있다. 해질녘 돌 벤치에 앉아 있으면 머리 위에서 내려오는 진한 매화향을 느낄 수 있다. 현재 금둔사는 지허 스님 혼자 기거하고 있다. 사진 촬영 장소는 스님의 거처 바로 옆. 정숙해야 한다. 사진은 물리고 매화를 탐할지어다!



●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승주IC에서 나와 선암사 방향으로 간 뒤 죽학리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15분 더 들어가야 한다. 061-755-3809.



# 동백보다 아기동백, 여수 오동도









4 동백나무 가지 끝에 앉은 직박구리. 동백림에는 어김없이 직박구리가 산다.
 5 신안 비금도는 겨울부터 봄까지 시금치가 나는, 늘 푸른 섬이다. 한 아낙이 시금치를 캐고 있다.




비 오는 날의 오동도는 로맨틱하다. 특히 이른 아침에 좋다. 비에 젖은 아름드리 동백나무 둥치는 장승처럼 선명해지고, 물기를 머금은 동백 잎은 송편처럼 살져 보인다. 그리고 군락을 이루는 동백림은 터널을 이룬다. 오동도에 사람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동백터널 때문이다. 아직 꽃은 이르지만 터널 안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아늑하다.



 꽃은 이제 막 피우기 시작했다. 여수시에서 조성한 동백 숲길 가장 안쪽, 몇 그루 노거수가 어렵사리 붉은 선혈을 토했다. 이곳에 이르니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에 단맛이 실려 있다. 날이 조금만 따뜻했다면 벌 소리와 함께 단내가 진동했을 것이다. 아쉽지만 뚝뚝 떨어지는 동백꽃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여수시는 몇 년 전부터 길가에 산다화(山茶花)를 잔뜩 심어놨다. ‘아기동백’이라고 부르는 동백과 유사한 꽃이다. 색은 동백보다 연한 진분홍, 꽃잎은 수줍게 다문 동백에 비해 화사한 편이다. 산다화는 동백보다 한두 달 일찍 핀다. 진정한 겨울 꽃인 셈이다. 학동 쌍봉사거리 철길 아래에 가면 산다화가 군락을 이루고 피어있다. 지금 사진 찍기에 좋다.



●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순천IC에서 17번 국도를 타고 1시간쯤 들어가면 여수 시내다. 여수항만 앞 주차장(30분 500원)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방파제를 건너야 한다. 여수시청 문화관광과 061-690-2036.









6 거제 지심도 동백숲 길에 떨어진 동백꽃.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진다’는 그 동백꽃이다.




# 섬 전체가 동백 숲, 거제 지심도



거제도 남쪽 장승포를 떠난 배가 지심도 선착장에 닿는다. 뱃머리에서 쏟아져 나온 여행객이 우르르 동백 군락에 들어간다. 이내 그들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한낮인데도 어두컴컴할 정도로 동백나무가 우거져 있어서다. 동백 말고도 후박나무·생달나무·종가시나무 등 난대 식물이 녹색터널을 이룬다.



 멀리서 보면 섬 전체가 하나의 숲이다. 대나무 일렁이는 길가에 벤치가 놓여있다. 섬 둘레는 약 3㎞, 남북 끄트머리를 ‘막끝’과 ‘새끝’이라 부른다. 천천히 걸어도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지심도도 이번 겨울 혹한은 피해가진 못했다. 그나마 터트린 꽃은 끝이 누렇게 타버렸다. 덕분에 올해 지심도 동백은 오래갈 것 같다. 4월이 되면 토실토실한 동백꽃이 통째로 길바닥에 몸을 누인다. 그때가 되면 사람은 꽃잎을 피해서 걸음을 옮겨야 한다. 섬에 10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대부분 민박을 운영한다. 거제도 앞에서 불어오는 거친 파도 내다보며 하룻밤 묵어가는 것도 좋다.



 거제도 일운면 구조라초등학교 터에 가도 아름드리 매화를 볼 수 있다. 수령 60년 이상의 노거수가 한겨울에도 꽃을 틔운다. 올해는 2월 10일께 첫 꽃망울을 터트렸다.



● 가는 길 거제 남쪽 장승포여객터미널에서 매일 5회(8:00, 10:30, 12:30, 14:30, 16:30) 배가 출발한다. 오후 4시 30분 배를 타면 돌아오는 배편이 없어 섬에서 숙박을 해야 한다. 여객선터미널 055-681-6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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