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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곤 순천향대 공연영상미디어학부 교수

중앙일보 2011.03.04 00:21 11면 지면보기



제자 위해 대학로에 전용극장 건립 ‘신창읍내 이야기’ 기념공연 올려



오세곤 교수는 제자들이 예술가의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길 희망한다. 그래서 언제라도 ‘예술가의 삶’을 살겠다고 찾아오는 제자들을 위해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 전용극장을 건립했다. [조영회 기자]



최근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 ‘노을 소극장’이라는 공연장이 생겼다.



 개관 기념으로 ‘신창면 읍내리 2011번지 김씨댁 철수 이씨댁 영희’라는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쏜톤 와일더(Thornton Wilder, 1897~1975)의 ‘우리 읍내’를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로 배경을 바꿔 각색한 작품이다.



 노을 소극장은 순천향대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한 졸업생들이 만든 ‘극단 노을’의 전용극장이다. 연극전공 학과가 있는 다른 대학도 소극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대부분 대학이 예산을 들여 설립한 경우다.



 100석 규모의 작고 평범한 소극장이지만 노을 소극장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극단 노을이 창단 이후 6년 동안 쉬지 않고 작품을 만들고 무대에 올린 노력의 결실이다. 극단 창단 과정부터 전용극장 건립에 이르기까지 제자들과 함께 현장(?)을 이끌어 온 오세곤 순천향대 공연영상미디어학부 교수를 만났다.



-‘노을 소극장’은 어떻게 건립됐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공간임대보증금을 지원받았다. 협력단체인 무용협회의 지원도 있었다. 물론 시설비와 월세 등 유지비는 자체 부담이다. 부족한 시설비는 모금을 통해 해결했다. 1계좌에 200만원을 후원하면 평생회원으로 모시는 캠페인을 벌였다. 6년 동안 쉬지 않고 작품을 올린 노력을 좋게 평가해 준 후원자들의 힘이 컸다. 수많은 사람들이 작은 힘을 모아 건립한 극장인 만큼 책무를 다할 각오다.”



-‘극단 노을’을 소개해 달라.



 “순천향대 연극전공 학생들이 주축이 돼 2005년 창단한 극단이다. 그동안 정기 공연만 20회를 넘겼다. 순회공연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이 했다. 교육연극 활동을 가장 활발하게 진행한 극단이라는 자부심도 있다. 이제 대학로에서 확실한 극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근에는 까다로운 심사 절차를 거쳐 서울시 지정 전문예술단체가 됐다. 지금은 소문 듣고 찾아오는 단원들이 많아져 순천향대 출신 극단이라고 말하기 어렵게 됐다.”



-노을을 창단한 이유가 있나.



 “졸업한 제자들이 연극을 하거나 말거나 나 몰라라 했다면, 수업이나 하면서 편한 길을 갔을 거다. 그러나 나는 무대를 지키는 제자 하나 없는 연극과 교수는 실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연극 판에서 10년은 굴러야 예술가 소리를 듣는데, 먹고 살기 힘들어 버티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어떻게 하면 꿈을 포기하지 않고 현장에 남아 있도록 할까 고민하다 노을을 창단했다.”



-단원들의 생계를 책임져 준단 말인가.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나. 극단 노을은 일종의 안전장치다. ‘생계를 위한 삶’과 ‘예술을 위한 삶’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현실을 개선하고자 했다. 생계를 위한 삶을 살다가 언제라도 예술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찾아오면 받아 주는 곳이 필요했다. 6년 동안 쉬지 않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한 이유이기도 하다. 극단 노을은 1년 동안 무대에 올릴 작품을 미리 예고한다. 그러면 삶의 현장에서 일하던 단원들이 하고 싶은 작품을 위해 때마다 잠시 ‘예술을 위한 삶’으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전용극장이 생겨서 형편이 좀 나아지나.



 “어려운 건 마찬가지 일거다. 그러나 보다 많은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저예산 연극을 표방해 왔지만, 앞으로는 1000만원 미만의 초 저예산 연극을 선보일 예정이다. 전용극장을 마련해 놓고 운영비 등에 발목을 잡혀 극단 활력이 떨어지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을 많이 하다 보면 언젠가는 관객의 호응을 얻어 수익도 생길 거라 믿는다. ‘생계를 위한 삶’과 ‘예술을 위한 삶’이 합쳐지는 날이 올 거라 희망한다.”



-연극 강사풀제를 정비한 장본인이라 들었다.



 “2000년 초에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 연극영화과에 교직 설치가 가능해져 제자들이 교생실습을 나가야 하는데 받아주는 고교가 없었다. 그나마 관련 학과가 있는 예술고 4곳은 자기 학교 출신만 받는다며 거절했다. 전국에 교생실습 나가야 할 연극영화전공 학생들이 100여 명에 이르는데 실습 나갈 학교가 없다니 황당했다. 내 집 하수구 뚫기 위해 동네 하수구를 뚫어야 했다. 이곳 저곳 동분서주하다 찾아 낸 해결책이 연극 강사풀제였다. 초·중·고교에 연극인이 파견돼 연극을 가르치는 제도다. 이후 예술강사풀제가 많이 일반화 됐지만 당시에는 엄청난 반발과 맞서 싸워야 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지역 주민들이 쉽게 예술을 접하고 배울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읍·면·동사무소에 사회복지사가 나가 있듯이 지역단위 예술센터에 예술 강사들이 파견 나가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학교에서 아무리 제자들을 열심히 가르쳐도 그들이 나가 활동할 예술계의 환경이 척박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예술계의 환경 개선을 위해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오세곤 교수는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했고 ‘장 주네의 희곡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 부회장, 한국연극교육학회 회장, 한국 대학 연극학과 교수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문화예술교육학회 회장, 한국문화예술경영학회 부회장, 극단 노을 예술감독,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 아산문화재단 이사, 충청남도 문화예술진흥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배우의 화술』등이 있다. 우리읍내(쏜톤 와일더 작), 도둑일기(장 주네 작) 등 다수 작품을 번역하고 연출했다.



글=장찬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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