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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광주, 카이로, 트리폴리

중앙일보 2011.03.01 00:20 종합 31면 지면보기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10년 전 카이로, 무장군인들이 진을 친 공항을 빠져나올 때부터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거리에 도열한 장갑차들이 인류문명의 발상지에 대한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학술회의 책임자 젬마 찬드리는 인텔리 여성으로 노동운동가였는데, 한국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카이로에서 멀지 않은 공장도시는 충격 그 자체였다. 난민캠프가 따로 없었다. 버려진 개들이 쓰레기를 뒤졌고, 남루한 직공들은 억압에 찌든 표정이었다. 그게 이집트였다.



 귀국 비행기가 서울 상공에 가까워오자 1970년대 우리의 공단이 떠올랐던지 눈가가 젖었다. 찬드리의 e-메일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일강에 매일 밤 별이 뜨듯, 자유를 향한 우리의 행진은 멈추지 않습니다.”



 ‘5월의 광주’-잊히지 않는 그 잔인한 기억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기에 아프리카에서 들려오는 투쟁의 함성을 결코 흘려버릴 수 없다. 동쪽 끝 예멘에서 서쪽 끝 세네갈과 코트디부아르까지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민주화 열풍은 성공할까?



 ‘하야의 금요일’, 30년 철권통치를 휘둘렀던 무바라크를 결국 퇴진시킨 이집트는 독재타도에 일단 성공한 듯하다. 리비아 민중들은 ‘피의 금요일’을 자행한 카다피와 혈전 중이다. 수백, 수천의 사상자를 모래바람에 날리고 서진(西進)하고 있는 민주화 폭풍은 이 지역의 정치지도를 바꿔놓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오랫동안 꿈꿔왔던 자유의 시간대로 언제 진입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광주를 겪었던 우리가 불안한 심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독재종식은 민주주의를 향한 멀고 먼 여정의 시작일 뿐. 타흐리르 광장에 자유의 공기가 흐른다고 해서, 결사항전에 나선 카다피가 거꾸러진다고 해서 곧바로 민주주의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500여 명의 민주투사를 땅에 묻고도 격동의 시간을 10년 넘게 겪었다.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은 1980년대 민주화 열풍을 분석한 『제3의 물결』에서 조금 불길한 예언을 내놓은 적이 있다. 유교권과 이슬람권 국가들은 서구식 민주주의를 꽃피울 개연성이 매우 작다는 진단이다. 유교민주주의, 이슬람민주주의는 ‘형용모순’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의 거친 예언이 틀렸음을 입증한 나라가 한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교적인 나라가 민주화 모범국가로 등극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오래전 연락이 두절된 친구 찬드리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아랍권에 대한 그의 지적은 일리가 있는 듯하다. 이슬람교는 다른 종교보다 더 호전적이고, 아랍국가들은 ‘피의 경계선’으로 둘러쳐져 있다는 헌팅턴의 발언은 기독교 편향적이라 해도, 이슬람과 민주주의의 도킹에는 더 많은 피와 희생이 요구된다는 진단은 수긍할 만하다.



 민주주의는 낙후된 경제를 싫어하고, 다종족 사회를 경계하며, 강한 군대를 무서워한다. 한국의 ‘5월 광주’가 그랬다. 낙후된 경제에 강한 군대가 있었다. 국민소득은 1500달러 남짓했고, 군대와 관료조직 외에 새 질서를 떠맡을 사회조직이 성숙하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정치파벌이 권력을 다퉜다. 이집트가 정확히 이런 상황이다. 국민소득 2000달러, 강한 군대, 초라한 경제, 그리고 파벌. 전통적 교리로 무장한 무슬림형제단과 약간 서구화된 정치세력들이 민주전환의 방식을 놓고 협상 중인데, 이 권력진공 상태를 강경 군부가 독수리처럼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게 지금의 카이로다. 언제 권력을 채 갈지 모른다.



 리비아는 상황이 더 나쁘다. 국민소득이 1만2000달러에 달하지만, 국부가 대부분 카다피 일족과 추종세력에 의해 독점돼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이집트와 다를 바 없다. 카다피가 제거되어도 민주화를 방해할 요인들은 이집트보다 훨씬 복잡하다. 석유시설을 두고 3개 주요 종족 간 일대 격돌이 예상되고, 정규군을 비롯해서 혁명수비대, 범아프리카 여단, 카미스 여단 같은 용병대 간 내전이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격전을 치르고 잠시 해방된 주요 도시에서는 시민자치위원회가 질서를 회복하고 있는데, 수도 트리폴리를 어느 종족과 세력이 장악하는가에 따라 판도가 바뀔 것이 분명하다.



 알라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정교(政敎)일치에 익숙한 유목민의 후예들이 정교분리와 종족타협의 정치를 수용할 때까지 건너야 할 장애물은 하나 둘이 아니다. 아랍권에는 종족과 가문 통치가 대종을 이루고 정권교체의 일반적 방식은 쿠데타였다. 1949년부터 80년까지 55건의 쿠데타가 발생해서 가문을 갈아치웠다. 카이로와 트리폴리에서 일어난 시민 주도의 민주화 폭풍은 그래서 반갑지만, 또 다른 쿠데타를 불러올까 불안하다. 『제3의 물결』의 대표주자였던 ‘5월의 광주’가 결국 승리했듯, 이슬람민주주의가 빛을 볼 날은 언제 올 것인가? 아니, 찬드리의 카이로발(發) 희망 편지를 받을 수나 있을까.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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