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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추모법회서 벼락같은 ‘할’이 터져나온 이유는

중앙일보 2011.03.01 00:17 종합 22면 지면보기



송광사 보성 스님, 법정 일화 소개
길상사 사태 겨냥해 뼈있는 법문



28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 설법전에서 열린 ‘법정 스님 1주기 추모재’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가운데)과 종회의장 보선 스님이 법정 스님의 존영에 차를 올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8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 설법전에서 ‘법정 스님 1주기 추모재’가 열렸다. 본사인 송광사와 총무원, 법정(法頂·1932~2010) 스님 문도를 비롯해 1000여 명의 신도가 길상사 법당을 가득 메웠다.



 추모 법문을 맡은 송광사 방장 보성(菩成·83) 스님은 법상에 올라 ‘출가 수행자의 본분’에 방점을 찍었다. 전임 주지 덕현(德賢) 스님의 갑작스런 사퇴로 인한 길상사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겨냥한 일침이었다. 보성 스님은 젊은 시절 법정 스님이 스승인 효봉(曉峰·1888~1966·조계종 초대 종정) 스님을 시봉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그때 노장(효봉 스님)께선 쌍계사에서 법정 스님과 단 두 분이 사셨다. 그래도 공양(식사) 때는 반드시 발우를 펴시고, 오후 불식(오후에는 식사를 하지 않음)을 하셨다. 찬(반찬)은 아주 보잘 것 없었다. 그래서 하루는 20리 떨어진 구례 장터에 가서 찬거리를 사고, 아는 집에 가서 고추장도 좀 얻었다. 그걸 가지고 오느라 법정 스님은 그만 공양 시간에 조금 늦고 말았다. 그때 효봉 스님이 ‘법정아, 이리 좀 들어오너라’라고 하더니 ‘오늘은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만 점심을 먹지 말자’고 하셨다.”



 좌중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깨고 보성 스님은 “자, 여러분. 이게 무슨 말입니까?”라고 되물었다. 답이 없자 보성 스님은 “내가 세세생생(世世生生·몇 번이든 다시 환생하는 일) 이 일은 잊지 못할 거다. 내 말이 둔하게 들려도 그래도 이 말은 들릴 거다”라고 좌중을 둘러본 뒤 벼락같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출가자는 그래야 해!” 그게 추모 법문의 마지막 할(喝·가르침을 위해 꾸짖는 소리)이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길상사가 놓쳐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경고이기도 했다.



 “출가자는 그래야 해!”라는 말을 끝으로 보성 스님은 법상에서 내려왔다. 법정 스님의 상좌들과 신도들은 눈을 감고 그 일갈의 여운을 되새겼다. 여운의 알갱이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이었다. 이어서 총무원장 자승(慈乘) 스님은 추모사에서 “무소유의 가르침처럼 (법정) 스님은 언제나 버리고 떠나셨다. 이제 그 주옥같은 말씀을 다시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가슴에 사무친다”고 소회를 밝혔다. 흐르는 눈물을 훔치는 신도들도 곳곳에 보였다.



 법정 스님 문도를 대표한 인사말은 길상사 후임 주지로 내정된 덕운(德耘) 스님이 했다. 맏상좌가 하는 것이 관례지만 덕조(德祖) 스님은 “스승의 유언을 좇아 수행에 전념하겠다”며 대표 인사말을 사양했다고 한다. 법정 스님의 다섯째 상좌인 덕운 스님은 “1주기를 앞두고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죄송하고, 은사 스님께 깊이 참회한다. 앞으로 길상사가 은사 스님의 정신에 입각해 맑고 향기롭게 화합할 수 있도록 수행정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덕현 스님의 이사장직 사퇴로 갈등설이 제기됐던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 측은 2일 긴급이사회를 연 뒤 이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예정이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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