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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드라마 품에 안긴 오스카 … 복고풍이 SNS돌풍 잠재웠다

중앙일보 2011.03.01 00:13 종합 22면 지면보기
아카데미는 전통을 사랑했다. 28일(한국시간) 열린 제8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가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각본상 등 ‘알짜’ 4개 부문 트로피를 가져가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킹스 스피치’는 말더듬이 증세를 극복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 뛰어난 리더십을 보여주는 영국왕 조지 6세 이야기다. 역경을 이겨내는 ‘인간승리’의 감동을 갖춘 전형적인 휴먼드라마다. 실존인물·장애극복·사극 등 아카데미상이 선호하는 요소를 두루 갖췄다. 미국내 비평가협회상을 독식했고 골든글로브상 4관왕에 올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돌풍’을 실감케 했던 ‘소셜 네트워크’는 각색상·편집상·작곡상 등 3개 부문 수상에 그쳤다. 특히 수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던 ‘소셜 네트워크’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수상에 실패했다.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 ‘킹스 … ’ 작품상 등 4관왕









◆보수 성향으로 회귀한 아카데미=영화팬들 입장에선 ‘재미없다’는 반응이 나올 만하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아카데미 특집 블로그에서 “‘킹스 스피치’는 아카데미상을 노려온 역대 작품들 중 가장 전통적이다. 아카데미가 고루한 취향으로 회귀한 데 대해 평론가들이 입방아를 찧을 것”이라고 평했다. 확실히 이번 시상식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아카데미상에 불었던 변화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최근 10년간 아카데미상은 ‘이변’의 연속이었다. 2002년 댄젤 워싱턴과 핼리 베리가 74년 역사상 최초로 남녀주연상을 나란히 받으면서 ‘흑인 돌풍’이 거세게 불었다. 올해는 뉴욕타임스가 ‘백인 편향’을 지적할 정도로 작품상 후보작 10편의 주·조연에서 흑인 배우를 찾기 힘들었다. 정치적·사회비판적 메시지가 강한 영화들도 그동안 줄줄이 상을 받았다. 2006년 미국 사회의 인종갈등을 파헤친 ‘크래시’가 작품상을, 남자 동성애자들의 ‘금지된 사랑’을 담은 ‘브로크백 마운틴’이 감독상을 받은 게 대표적이다. 예술성 높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수해온 ‘작가’들도 트로피를 가져갔다. 2008년 코언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9년 대니 보일의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수상한 게 좋은 예다.



 이에 비해 올해 아카데미의 선택은 ‘모범답안’이다. ‘킹스 스피치’는 정통 휴먼드라마다. 현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인 조지 6세(콜린 퍼스)가 주인공이다. 그는 대중공포증이 있어 연설만 하면 말을 더듬는다. 남편을 위해 갖은 방법을 찾던 아내 엘리자베스 왕비(헬레나 본햄 카터)가 괴짜 언어치료사(제프리 러시)를 소개한다. 왕과 언어치료사는 한마음 한뜻이 돼 장애를 이겨낸다. 영화는 “우리는 동맹국과 더불어 모든 문명국가에 위협이 되는 한 사상과 싸울 겁니다. 이 사상은 ‘힘이 곧 정의’라는 야만적인 발상입니다”라며 히틀러에게 선전포고하는 영국왕의 명(名) 라디오 연설로 끝난다. 자기극복과 리더십, 우정과 가족애 등 휴머니즘 요소가 풍성하다. ‘킹스 스피치’의 제작비는 1500만 달러(169억원)에 불과하지만, 전세계적으로 1억달러(1128억원)가 넘는 흥행 수입을 거둬들였다. 다음달 17일 국내에서도 개봉된다.



◆할리우드 휩쓴 ‘영국 돌풍’=올해 시상식의 또다른 특징은 ‘영국 돌풍’이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도 개인 시사회를 통해 보고 극찬했다는 영국영화 ‘킹스 스피치’는 아카데미 시상식 2주 전에 열린 영국아카데미(BAFTA) 7관왕에 올라 파란을 일으켰다. 감독상 수상자 톰 후퍼(39), ‘킹스 스피치’의 콜린 퍼스(남우주연상), ‘파이터’의 크리스천 베일(남우조연상) 모두 영국 출신이다. ‘소셜 네트워크’의 데이비드 핀처, ‘더 브레이브’의 코언형제, ‘블랙 스완’의 대런 아로노프스키 등 쟁쟁한 선배를 물리친 후퍼는 옥스포드대를 나와 인기드라마 ‘이스트엔더스’를 비롯해 ‘엘리자베스 1세’‘존 애덤스’등 TV드라마를 주로 연출해온 신예다. 탁월한 조련술을 보여준 ‘킹스 스피치’로 감독조합상을 받았고, 오스카마저 거머쥐어 할리우드로부터 러브콜이 쇄도할 것으로 보인다.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영국 출신이 나란히 석권한 건 1965년 ‘마이 페어 레이디’의 렉스 해리슨과 ‘토프카피’의 피터 유스티노프가 받은 이후 처음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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