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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기념 독립유공자 재조명 시리즈 ① 유관순 열사

중앙일보 2011.03.01 00:11 1면 지면보기



그날의 함성 의미 다시 한 번 새겨 봅니다



각 단체가 개별적으로 벌인 민족독립운동은 한계가 있었다. 대연합을 절실하게 생각한 각 종교와 단체 대표 33명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통고서에 서명했다. 독립선언서 작성은 천도교에서 맡았다. 사진은 독립기념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민족대표독립선언서 자료. [사진=독립기념관 제공]



충남 천안은 충절의 고장이다. 유관순 열사부터 석오 이동녕, 유석 조병옥 선생, 충무공 김시민 장군 등을 배출한 고장이다. 아산에도 활발히 활동한 독립운동가와 치열한 독립운동의 현장이 있다. 중앙일보 천안아산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와 함께 3·1절을 맞아 지역의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해 보는 독립유공자 시리즈를 기획했다.



김정규 기자



천안에는 외세에 대한 항쟁과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독립기념관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이동녕 선생 등을 배출한 곳이다. 임진왜란 진주대첩의 영웅 김시민 장군도 이곳 출신이다. 천안에는 올해까지 100여 명의 독립유공자(보훈처 자료 기준)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아우내장터 만세운동 등 이 지역의 독립운동은 4월 1일 3000여 군중이 참여한 호서지방 최대의 독립만세운동으로 평가 받고 있다.  



천안은 충절, 보훈 인프라를 바탕으로 충정호국벨트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호국 체험장, 천빛사(천안을 빛낸 사람들) 공원, 횃불 도보길 조성, 병천 순대거리 테마화, 김시민 장군 생가, 홍대용 생가 복원, 이색 탈거리 등이다.



 아산에서도 독립운동이 있었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아산군지, 구전 등을 통해서만 확인돼 왔던 것을 2002년 3·1운동 관련 논문을 쓴 김진호씨에 의해 확인됐다. 당시 일제 총독부에 의해 수감되거나 벌형을 받았던 명단이 나왔다. 아산지역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인물과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이 논문은 아산지역의 독립운동이 3월11일 처음 발생한 뒤 4월4일에 마쳤으며, 아산시에서만 193명이 처벌을 받은 기록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아산지역의 3·1운동은 2차례에 걸쳐 집중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됐다고 한다. 1차는 3월11일부터 온양을 중심으로 전개됐고, 2차가 4월1일을 전후해 15일간에 걸쳐 계속되다, 일제의 무력적 탄압과 병력으로 인해 중단됐다고 설명했다.



 논문에 따르면 4월1일 둔포면 운용리 마을 주민들이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하고 당시 일본인 소유 공관 20여 개소를 파괴했다.



2일에는 신창의 읍내리 주민 200여 명이 학성산에 횃불만세를 부르고 이덕균과 박태화의 주도로 만세군중들은 면사무소와 헌병 주재소 및 보통학교로 이동하면서 문과 유리창을 부쉈다.



4일에는 선장면 200여 명의 주민들이 군덕리 시장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오후 3시쯤 정수길 김천봉 등의 주도로 곤봉을 휘두르며 헌병 주재소를 진입해 투석 등으로 주재소와 창문을 파괴했다. 횃불만세운동은 탕정, 염치, 배방, 송악, 온양, 둔포, 신창, 영인, 인주, 선장의 면내에 전개됐다.



3월31일에는 탕정, 염치, 배방, 송악의 4개 면내 50여 개소에서 횃불만세운동이 있었다.



 2004년 한 신문이 독립유공자 유족실태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0명 중 6명이 무직에 고졸이하 저소득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립유공자는 물론 후손들에게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을 입증한 것이다.



 미국은 어느 마을에 가더라도 한국전쟁, 월남전 등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이름을 동판에 새겨 놓는다고 한다.



이외에도 각 나라들이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리기 위한 사업이 활발하다. 국가는 물론 지역과 후손 모두가 선열을 위한 마음을 계속 기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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