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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손정의 트위터 한 방

중앙일보 2011.02.28 20:19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현기
도쿄특파원




일본의 지하철 안에서는 전파가 터지지 않는다.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e-메일도 안 된다. 사방에서 벨소리가 울려대는 한국 지하철과는 딴판이다. 특파원 부임 초기에는 그 차이를 해명하느라 애도 많이 먹었다. 그러면서도 늘 궁금하던 게 있었다. 전화통화야 다른 승객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요즘 같은 정보화시대에 e-메일까지 안 되게 하는 건 도대체 왜일까. “선진국인데…, 뭔가 깊은 생각이 있는 거겠지”라고 지레 짐작했다.



 최근 깜짝 놀랄 소식을 접했다. 통신회사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사장이 도쿄 지하철에 안테나를 설치키로 했다는 뉴스다. 그 결정 과정이 흥미롭다.



 “트위터에 글을 올렸습니다. ‘지하철 안에서도 메일을 할 수 있게 하자. 안테나 공사비는 우리가 대겠다’고요. 그걸 본 이노세 나오키 도쿄도 부지사가 ‘바로 만나 얘기하자’고 답글을 보내왔고, 약속시간이 확정된 게 불과 4시간 후. 그리고 6일 후에 정식으로 계약 끝냈습니다. 깜짝 놀랄 일이죠.” (손 사장)



 더 깜짝 놀랄 내용은 관련 기사 뒷부분이었다. “기존 철도회사들은 통신사들로부터 이 같은 요청을 받고도 업무 중요도에서 떨어진다며 4년째 결정을 미루고 있다.” 머리가 띵했다. 전파가 안 터진 게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귀찮으니까 4년간 손 놓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3월은 일본의 회계연도 말이다. 결산 추정치들을 보면 일부 기업을 빼고는 올해 실적도 시원치 않아 보인다. 일본 국내총생산은 지난해 중국에 추월당했고, 1992년 세계 1위였던 국가경쟁력도 지난해 27위까지 떨어졌다. 뭐가 일본경제 추락의 주범인가. 정치나 환율 탓을 한다. 하지만 근본적 문제점은 기업 경영자다. 세상은 무섭게 바뀌는데 일본 경영자들의 달력은 버블 시대 20년 전 그대로다.



 일본의 유명한 평론가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는 “일본은 공기(분위기)의 나라”라고 했다. 화합을 중시하는 사회란 뜻이다. “모험을 택하면 상무, 화합을 택하면 사장”이란 말이 아직도 팽배하니 파격이 있을 리 없다. 지난해까지 소니와 후지쓰에서 최고위급 임원으로 재직한 안경수 노루페인트 회장은 “일본 기업에는 탁월한 기술력이 있지만 그걸 종합력으로 승화시키는 리더의 자질이 떨어지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런 일본 기업에도 변화의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갖은 파격으로 일본 재계의 ‘왕따’였던 손정의 사장이 최근 일본 주요 기업 사장들이 투표로 뽑은 ‘사장 중의 사장’에 선정됐다. 놀라운 변화다. 리더 상(像)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전 직원의 해외 순환근무를 내건 유니클로의 야나이 회장, ‘일본기업 포기’를 선언한 라쿠텐의 미키타니 사장 등 젊고 도전적인 경영자들이 일본 재계의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뒷짐 4년을 트위터 4시간으로 해결한 새로운 변화가 일본 기업, 나아가 일본 사회 전반을 바꿀 신(新)동력이 될 것인가. 거기에 일본의 미래가 달려 있다.



김현기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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