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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의 서핑 차이나] 혁명, 진화 그리고 인볼루션

중앙일보 2011.02.28 09:35
































중국의 '모리화 2차 집회'가 무산됐다.(사진 위, 출처=트위터)

살수차와 맹견을 동원한 공안들이 시위대 대신 예정된 집회 장소를 철통같이 지켜냈다.







가히 혁명의 시대다. 튀니지에서 피기 시작한 재스민이 이집트를 거쳐 리비아를 노리고 있다. 재스민은 중국어로 모리화(茉莉花)다. 중국에서 모리화는 공교롭게도 한국의 아리랑과 같이 대표적인 민요 제목이다. 중국 공산당이 특별히 민감해 하는 이유다. 시위대가 모리화를 합창하는 사태가 발생하면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과연 만리장성 너머 중국에서 모리화가 울려 퍼지고 꽃필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 17일 미국에 서버를 둔 보쉰망(boxun.com)에 중국인들의 ‘봉기’를 촉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누가 무슨 의도로 게재했는지는 알 수 없다. 베이징·상하이에 주재하는 서방 기자들과 중국 공안당국은 이를 사전에 인지했다. 20일 보쉰망에 적시된 베이징 왕푸징과 상하이 허핑극장 앞에 수많은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중국 경찰 역시 자리를 지켰다. 주중 미국대사 존 헌츠먼도 그 중 한 명이었다(사진). 몇몇 중국인들이 예정된 장소로 모리화와 같은 흰색 꽃을 들고 왔다. 물론 바로 경찰에 의해 연행됐다. 일주일 뒤 보쉰망에 글이 다시 올랐다. 1차 ‘봉기’는 성공적이었으며 매주 일요일 오후 2시 동일한 장소에 모이자는 제안이었다. 집결 장소가 추가됐다. 또, 구호도 행동도 필요없으며 한데 모여 미소만 짓자는 지침이 덧붙었다.



그렇다면 ‘모리화 미소 집회’가 중국에 혁명을 가져올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전망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지난 23일자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는 베이징 주재 특파원의 글이 실렸다. 그는 중국의 ‘진짜 위험(real risk)’은 ‘불안(unrest)’이 아니라 ‘경직된 안정(rigid stability)’이라고 지적했다. 촘촘한 사회 모니터링 시스템, 지도자들의 문제 인식과 개선 의지, 막강한 공안조직, 대안세력의 부재 등 현재 중국에서 재스민이 피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중국이라는 거대한 역사체의 바퀴는 어떤 방향으로 굴러갈까?



혁명을 뜻하는 영단어는 레볼루션(revolution)이다. 어근은 ‘돌다, 회전하다, 말다, 구르다’는 뜻의 ‘volve’다. 역사의 바퀴가 돌아가던 방향을 바꿔 ‘거꾸로(re)’ 돌아가는 것이 혁명(re+volve)이다. 혁명의 대안은 진화(evolution)다. 역사의 바퀴가 바깥(e=out)으로 도는 것이다. 역사가 발전적으로 선순환한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혁명과 진화가 아니다. 안(in)으로 꼬여들어가는 ‘인볼루션(involution)’이다. 역사의 바퀴가 안으로 꼬여들어가 퇴행하는 것이다. 인볼루션의 적절한 번역어는 마땅치 않다. 굳이 찾자면 내권화(內捲化), 퇴행(退行), 착종(錯綜) 정도가 될 것이다.



‘인볼루션’이란 용어는 학술서에서 나온 말이다. ‘두터운 묘사(thick description)’로 유명한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가 인도네시아 사회를 참여 관찰한 뒤 내놓은 저서 『Agricultural Involution』이 유래다. 이어 인도계 중국 역사학자 프래신짓트 두아라(Prasenjit Duara)가 페어뱅크상을 수상한 저서 『Culture, Power, and the State: Rural Society in North China, 1900-1942[문화, 권력, 그리고 국가: 북부 중국의 농촌사회, 1900-1942]』에서 근대 중국 사회의 특징을 ‘인볼루션’이란 단어로 묘사했다. 당시 중국의 역사가 꼬여들어갔다는 이야기다. 중국의 인볼루션 상황을 중국 공산당은 바퀴의 방향을 바꾸는 혁명으로 타개했다.



혁명정당이던 중국공산당이 다시 인볼루션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콜롬비아대 교수 뤼샤오보(吕曉波)는 저서 『Cadres and Corruption: The Organizational Involution of the Chinese Communist Party』에서 중국 공산당이 부패로 인해 구조적인 인볼루션의 늪으로 접어들었다고 지적한다.



중국은 다시 역사의 세 갈래 교차로 앞에 섰다. 각각 인볼루션(퇴행), 레볼루션(혁명), 에볼루션(진화)이다. 필자는 가능성이 높은 순서로 에볼루션→인볼루션→레볼루션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볼루션의 조짐을 인지한 공산당이 에볼루션으로 레볼루션을 미연에 방지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다수 중국인들의 삶의 수준은 과거에 비해 나아질 것이다. 일종의 개량주의 방식이다. 역사라는 바퀴는 그 축이 거대하다. 회전 방향을 바꾸는 것은 녹녹치 않다. 민주화 혁명만이 정답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인볼루션 상태의 심화와 에볼루션의 지체다. 이는 곧 레볼루션의 초대장이다. 반동(反動)의 시대를 막는 것이 현대 중국의 시대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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