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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당신] 절망을 희망으로 … 어린 생명 살리는 ‘수호 천사’

중앙일보 2011.02.28 03:40 건강한 당신 1면 지면보기



[커버스토리] 황운하 기자가 본 서울대어린이병원의 하루



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중환자실 박준동 교수가 뇌종양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다 급성호흡부전을 일으킨 강모(12)양을 진찰하고 있다. 강양은 약물 공급기계 9개에 생명을 기대고 있다. [변선구 기자]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갓 태어난 아기를 둔 부모에게 이보다 잔인한 선고는 없다. 그러나 이들 뒤에는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배수의 진’을 친 병원이 있다. 바로 어린이병원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에는 국립대병원 2곳과 민간병원 6곳이 어린이병원을 운영 중이다. 이곳은 하루하루 생존일기를 써가는 ‘야전병원’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고충은 따로 있다. 감당하기 힘든 인건비·시설비로 발생하는 적자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은 10년째 매년 1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떠안고 있다. 지난 11일 최악의 상황에서도 고귀한 사명을 다하고 있는 서울대어린이병원(서울시 종로구)의 하루를 담았다.



‘말을 못해요. 심장박동기를 이식한 아이입니다. 혼자 다니는 걸 보시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어린이병원 7병동 7104호. 010-7999-XXXX.’ 오전 8시30분. 서울대어린이병원 1층에 들어서며 마주친 곽원(8·서울 이촌동)군의 링거 거치대에 붙은 문구다. 원이 이름은 아빠가 지었다. 병마와 싸워 ‘이겼다(won)’는 뜻이다. 원이는 태아 때부터 심장의 좌우 심실 크기가 다른 선천성 심장병이 있었다. 처음 진단한 의사는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부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울대어린이병원을 찾았다.



 원이는 출산 예정일보다 2주 빠른 2003년 6월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폐·담낭도 선천적으로 기형이고, 10여 가지 질병이 겹쳐 생명을 위협했다. 담도폐쇄증으로 간경화가 찾아와 생후 7개월 때 6㎏ 체중으로 고모 곽혜란(58)씨의 간을 이식받았다. 2006년에는 네 살까지 생명을 유지해준 인공호흡기를 떼기 위해 인공심장 박동기를 이식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뇌가 손상된 원이는 자폐성 장애1급이다. 8년째 곽군을 돌보는 곽혜란씨는 “원이가 점차 건강해지고 있다. 가족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전체 출산 10분의 1 미숙아 … 입원땐 “야전병원”



오전 10시15분 병원 4층 신생아 중환자실. 재태 기간 37주 미만에 태어난 미숙아, 체중 2500g 미만의 저체중아, 선천적인 장기기형을 안고 태어난 신생아들이 생명의 불씨를 지피는 곳이다.



 체구가 너무 작고 여려 손만 대도 으스러질 것 같은 신생아들이 인큐베이터나 집중치료대에 누워 있다. 하나같이 등·가슴·발목·발가락에 심전도·호흡수·심박수·산소포화도·혈압 같은 바이탈 사인(활력 징후)을 측정하는 전극을 주렁주렁 달았다.



 이곳은 핏덩어리를 살리기 위해 분주할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차분했다. 신생아 중환자실장 김한석 교수는 “조용해야 아기들에게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갓 태어난 미숙아가 입원하는 날이면 야전병원으로 돌변한다. 이달 8일 36주에 태어난 세쌍둥이 중 첫째와 막내 자매가 그랬다. 첫째는 선천성 폐동맥판막협착증으로 저산소증이 왔다. 막내는 1580g의 저체중에 황달까지 있었다. 약물과 영양제를 투여하고 황달을 없애기 위해 빛을 계속 비췄다. 두 자매는 건강이 호전돼 지난 14, 15일 각각 퇴원했다.



 김한석 실장은 “미숙아가 전체출산의 10분의 1에 이르고 동반되는 병의 증상이 심해지고 있다”며 “우리 병원을 찾은 체중이 1000g도 안 되는 초극소 저체중 출생아도 1990년대 초 연 15명에서 지난해 55명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미숙아는 많게는 10여 가지 병을 앓는다. 그러나 점차 많은 중증질환 신생아가 건강을 되찾고 있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의 신생아 중환자실 생존율은 세계 톱이다. 24주에 태어난 미숙아가 72%로, 미국(55%)보다 높고,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일본(77%)과 대등하다. 1000g 미만의 생존율도 2010년 84%를 기록했다.



말 못하는 아이 상대로 채혈하기 진땀



오전 11시20분 병원 3층 1번 수술방. 소아정형외과 조태준 교수가 수술 준비로 분주하다. 환자는 지난해 닭싸움을 하다 양쪽 슬개골(무릎 앞 한가운데에 있는 종지 모양의 오목한 뼈)이 옆으로 밀려 무릎수술을 받았던 황모군(14).



 슬개골 탈골 후유증으로 X자로 휜 다리를 교정하기 위해 왼쪽 무릎을 수술할 참이다. 왼쪽무릎 안쪽을 7㎜ 절개하고 드릴을 넣어 대퇴골(넓적다리뼈)의 무릎부위 성장판에 구멍을 냈다. 이곳에 나사못을 박아 넣고 꿰매자 수술이 끝났다. 10분도 안 걸렸다.



 “간단해 보이지만 성장판에 정확히 나사못을 박아 넣어야 뼈 성장을 억제해 다리를 교정할 수 있어요. ”(조태준 교수) 수술 당일 퇴원한 황군은 6개월~1년 후 바르게 걸을 수 있다.



 오후 2시쯤 병원 4층 채혈실. 성인 3명이 돌이 막 지난 아이 한 명과 씨름 중이다. 전주현 임상병리사가 몸부림치는 아이의 팔을 잡고 혈관 찾기를 시작한 지 30분. 결국 실패하고 목 혈관에서 채혈하기 위해 1층 소아진단검사실로 안내했다.



 다음은 대장 벽에 난 구멍을 수술받은 6개월 여아. 잘 먹지 못해 팔 굵기가 성인 손가락 두 개 정도다. 주삿바늘을 몇 번 찔렀을까. 아이가 목이 터져라 운 끝에 1㏄ 뽑는 데 성공했다. 전 병리사는 “목에 튜브를 삽입해 말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을 채혈할 때 가장 힘들다. 팔에 바늘을 넣으면 굵은 눈물만 뚝뚝 흘린다”며 애환을 토로했다. 채혈실에선 매일 약 250명의 아이들과 전쟁을 치른다.



뇌종양·간이식 … 어른도 감당 못할 사투 벌여



오후 4시 병원 3층 소아 중환자실. 심장·뇌종양·간이식처럼 어른도 감당하기 힘든 큰 수술을 받은 아이들이 사투를 벌이는 곳이다. 급성감염·항암제 치료 후유증으로 콩팥·폐 같은 장기에 문제가 생겨도 이곳에서 집중치료를 받는다.



 중환자실 한쪽 벽에는 격리실 6곳이 있다. 4번 방에는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강모(12)양이 누워 있다. 뇌종양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다 면역력이 떨어져서 급성호흡기질환이 찾아왔다. 머리맡에는 인공호흡기와 약물을 일정한 양으로 공급하는 인퓨전 펌프가 9개가 돌아가고 있다. 40일째 의식이 없는 강양의 생존확률은 40%다.



 소아 중환자실장 박준동 교수가 격리실 5번 방에 들어서자 깡마른 임모(6)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임군의 체중은 또래 평균인 20㎏보다 한참 모자란 12.2㎏. 윗옷을 벗고 있는 가슴에는 세로 방향으로 난 30㎝의 흉터가 있다. 박 교수는 “심장이 기능을 못할 만큼 늘어나는 확장성 심근병증으로 두 달 전 심장이식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성공적이어서 이틀 전 호흡기를 뗐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신생아 중환자실에선 간호사들의 탄성이 쏟아졌다. “어떡해~” “너무 귀여워”. 지난해 2월 26일, 재태기간 25주에 420g으로 태어나 국내 최저체중아 기록을 갖고 있는 태영(여)이가 부모와 함께 돌떡을 돌리러 왔다.



 성인 손바닥만 한 태영이가 과연 살 수 있을지 모두 반신반의했다. 당시 위가 너무 작아 분유 2㏄도 먹지 못했다. 하루하루 끈질기게 생존일기를 써 간 태영이는 결국 5개월 뒤 건강하게 퇴원했다. 아빠 신동복(38·강원도 원주시)씨는 “돌을 맞을 수 있게 혼신의 힘을 다 해준 의료진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글=황운하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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