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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한류 … 종주국 일본도 뚫었다

중앙일보 2011.02.28 00:33 종합 8면 지면보기



‘서바이벌’ 시리즈 50만 부 팔려 … “엄마는 K-팝, 아이들은 K-만화 팬”



일본 대형 출판체인인 분쿄도 서점의 지바현 우라야스시 지점. 우리나라 학습만화 ‘서바이벌 시리즈’와 ‘내일은 실험왕’ 시리즈가 매대 전면에 활짝 펼쳐져 있다. [지바(일본)=이경희 기자]



지난 24일 일본 지바현 우라야스시의 분쿄도(文敎堂) 서점. 어린이만화가 진열된 서가 중 입구 맨 앞쪽 매대를 한국산 학습만화가 점령하고 있었다. ‘전 세계 2000만 부가 판매된 과학만화’라는 홍보판이 붙어 있었다. 시니치로 에자와 지점장은 “권당 1200엔(약 1만6500원)으로 다른 어린이 만화책보다 훨씬 비싸지만 잘 팔려 지난주부터 전 시리즈를 펼쳐 놓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학습만화가 동아시아 만화의 종주국 격인 일본 시장을 뚫었다. 교육출판 전문기업 미래엔(옛 대한교과서)의 어린이·청소년 출판 브랜드 아이세움이 펴낸 ‘서바이벌 시리즈’가 일본 시장에서 누적 판매부수 50만 부를 기록했다. 2008년 일본 시장에 진출한 이래 2년여 만의 성과다.



 한국의 학습만화는 중국·대만·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 이미 큰 성과를 기록해 왔다. ‘서바이벌 시리즈’는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사막에서 살아남기』 『인체에서 살아남기』 등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과학으로 풀어낸 학습만화로 국내에서만 1000만 부가 판매됐다. 해외에서는 중국 300만 부, 대만 200만 부, 태국에서 150만 부가 팔린 인기 시리즈다. 이 회사의 ‘보물찾기 시리즈’와 ‘내일은 실험왕 시리즈’는 대만 아동도서 시장에서 2010년 점유율 15%를 기록했다. 아이세움 학습만화 시리즈의 해외 저작권료 누적 수입은 지난해 말 기준 36억3300만원에 달한다.









아이세움 박현미 팀장



 예림당의 ‘Why(와이)? 시리즈’는 2009년 말 기준으로 중국 40만 부 등 해외에 약 150만 부가 팔렸다. 국내 판매를 합하면 총 3500만 부에 달하는 히트작이다. ‘Why? 시리즈’는 대만·태국·중국·러시아·프랑스·인도네시아, 아랍어권 23개국 등에 수출되고 있다. 온라임게임에서 파생된 학습만화 테일즈런너 ‘킹왕짱 영어·수학·과학’(거북이북스) 시리즈도 총판매 117만 부 중 해외 판매가 27만 부에 달한다. 다산북스 ‘Who 시리즈’도 대만·태국·말레이시아 등 6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인체에서 살아남기』일본판 표지.



 하지만 만화의 본고장인 일본 시장에서 성공한 것은 ‘서바이벌 시리즈’가 처음이다. 박인하(만화평론가)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는 “이현세의 『활』부터 강풀의 『순정만화』까지 한국 만화가 일본 시장에 진출을 시도한 역사는 오래됐지만 성공을 거둔 예는 없었다. 『혐한류』 만화에 대항해 그린 김성모의 『혐일류』가 얼마간 화제가 된 정도다. ‘서바이벌 시리즈’는 한국 만화가 일본에서 성공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아이세움 박현미 팀장은 “일본은 책의 정가가 비싼 만큼 저작권료 수입도 높아 매우 중요한 시장”이라며 “서바이벌 시리즈의 성공 이후 다른 학습만화 시리즈도 일본 수출 계약이 원활히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도 1960년대부터 꾸준히 학습만화를 생산했다. 그러나 대부분 흑백이고 소재는 역사·인물 위주다. 내용 또한 철저히 학습 전달에만 초점을 맞춘다. 반면 한국의 학습만화는 올 컬러로 화려한 데다 스토리에 학습 내용을 녹여 엔터테인먼트적 측면이 강하다. 선행학습이 보편화된 국내 시장의 특성상 학습의 난이도가 매우 높은 것도 특징이다. 이러한 학습만화는 한 해 국내 매출 2000억원대로 한국 만화시장 전체 의 30%에 육박한다. 박인하 교수는 “만화에 대해 부정적인 한국의 특성상 학습만화만 기형적으로 성장한 측면은 있지만 기획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는 등 산업적 측면에선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서바이벌 시리즈’의 일본 출판을 맡은 아사히신문 출판국 나카무라 마사시 편집부장은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물이 히트한 적은 있지만 학습만화가 50만 부를 기록한 건 처음”이라며 “일본 가정에서 엄마는 K-팝 팬, 아이들은 K-만화 팬인데 아빠만 개밥에 도토리”라고 말했다.



도쿄=이경희 기자



“서바이벌, 베스트셀러 된 건 콘텐트의 힘”



출판 맡은 아사히신문 나카무라 부장












아이세움이 펴낸 학습만화 ‘서바이벌 시리즈’의 일본 출판을 맡은 아사히신문 출판국 나카무라 마사시(사진) 편집부장을 24일 만났다. 그는 “아사히신문이 낸 첫 아동서인 ‘서바이벌 시리즈’가 베스트셀러가 된 건 콘텐트 자체의 힘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50만 부가 큰 성과인가.



 “그렇다. ‘서바이벌 시리즈’는 수준 높은 학습 내용을 흥미롭게 전달한다. 일본 서점가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넓은 전시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것 자체가 놀랄 만한 일이다. 입소문이 나서 도서관에서도 대출 대기 수요가 엄청나다. 어떤 학교에선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책상 밑에 놓고 읽어서 아예 ‘서바이벌 시리즈’를 학교에 갖고 오는 걸 금지하기도 했다. 한국 편집팀이 기획단계부터 세계시장을 노렸다는 건 정말 부럽다. 높이 평가한다.”



-한국에선 ‘만화지만 학습이니 할 수 없이 사준다’는 생각이 퍼져 있는데.



 “일본은 워낙 만화가 생활화된 나라라서 만화가 공부에 지장을 준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 그래서 ‘서바이벌 시리즈’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듯하다.”



-일본판의 특징은 뭔가.



 “판형만 일본 아이들에게 익숙한 걸로 바꿨다. 내용은 거의 건드리지 않되 지명만 일본 것으로 바꿨다. 아이들은 한국 책이라는 걸 특별히 인식하지 않는 듯하다.”



-만화든 뭐든 한국 책이 일본 출판가에서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나.



 “글쎄…. 당장 떠오르는 건 없다.”



-다른 한국 작품도 찾고 있나.



 “그래서 아이세움 ‘내일은 실험왕’ 시리즈를 계약했다. 다음 달이면 3권이 나온다. ‘내일은 실험왕’의 경우 일본 다른 출판사들도 관심을 보였다.”



-일본이 만화 종주국이라 한국 만화를 받아들이는 데 대한 거부감이 있지 않았나.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출판 제의를 받은 적은 있다. 그러나 결국은 작품으로 판단한다. 일본 코믹 잡지에서 한국 만화가를 기용해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경우는 꽤 있다. 일본 출판사들도 이제 한국 만화에 뜨거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도쿄=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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