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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128일의 기억] 중공군과의 대회전 (277) 전쟁터를 떠도는 내 영혼

중앙일보 2011.02.28 00:29 종합 10면 지면보기

노병의 소망이다, 이젠 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체결됐다. 유엔군 대표 윌리엄 해리슨 중장(왼쪽 테이블)과 남일 북한인민군 대표(오른쪽 테이블)가 서명하고 있다. 이들의 서명 뒤 유엔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 중국 펑더화이, 북한 김일성이 후방에서 각각 연서했다. [중앙포토]

전선이 밀린다,

또 무너졌구나

내 가슴을 깊게 뚫는

한 발의 총탄 …

90이 넘은 지금도

60년 전의 악몽 속에서

잠을 설칠 때가 있다

적 앞에 나설 수 있는

힘을 닦은 자만이

처절한 싸움의 승자가 된다

전쟁을 막는 법은 무엇인가

전쟁의 의지가

평화를 지킨다





1952년에 촬영된 한국군의 모습이다. 치열한 전투 중 부상을 당한 병사가 후방에 후송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앳된 병사의 멍한 눈빛이 애처롭다. 사진전문지 라이프지에 실린 사진이다.

저기 전선이 밀린다. 적들이 새카맣게 다가온다. 새하얀 빛이 번쩍거리고, 귀를 찢을 듯한 폭발음이 들린다. “아, 또 무너졌구나….” 신음이 새어 나왔다. 마구 밀리기 시작했다.

 물밀 듯이 치고 내려오는 적은 북한군 같기도 했고, 중공군 같기도 했다. 흩어져 뒤를 보인 아군은 대오(隊伍)를 가다듬을 틈도 없다. 거센 물길에 뚫린 둑과 다를 게 없었다. 적의 거침없는 공세는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릴 태세다.

 사령부까지 적이 내려왔다. 뭔가 대응을 해야 하는데 손과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적을 막아라”고 나는 힘껏 고함을 치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 적이다, 적이 바로 앞에 왔다. 포탄의 파편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귀를 스쳤다. “슉-” 한 발의 총탄이 가슴을 깊게 뚫었다.

 “어-억” 거리며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깬다. 내가 또 악몽(惡夢)을 꾼 것이다. 내 나이 이제 90을 넘었지만 나는 이런 꿈을 꾸다가 놀라서 깨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 잠을 깬 나는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한다. 전쟁은 무엇인가.

 나는 늘 전쟁을 잊지 못했다. 60년 전 이 땅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험악한 싸움터를 결코 잊지 못했다. 어둠 속을 서성이는 유령(幽靈)처럼 내 영혼은 늘 전장(戰場)의 주변을 맴돌았다.

 내가 군복을 벗고 대만 대사를 지낸 뒤 다시 프랑스 대사로 재직할 때 자주 갔던 곳도 역시 옛 전쟁터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막을 내린 격전장 노르망디는 9번, 나폴레옹의 쓰라린 패전 경험이 담긴 워털루는 6번, 영·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독일군과 격렬하게 싸움을 벌였던 라인강 싸움터는 더 자주 들렀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이상하게 여겼다. 유명 관광지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피비린내가 젖어 있는 격렬했던 전쟁터를 기웃거리는 내가 정상이라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나도 나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왜 나는 그곳을 서성거려야만 했는지, 왜 사람 사이에 벌어졌던 싸움터의 길고 어두운 그늘들을 헤집고 다니는지 스스로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단 하나 분명했던 것은 전쟁터를 배회하면서 나는 어떻게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가를 유심히 살폈다는 점이다. 저 앞에 버티고 선 적, 내 담을 넘어서는 적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가에 관한 해답을 찾고 있었다. 우리의 피해는 최소화하면서 적에게는 막대한 타격을 입히는 방법 말이다.

 그 답은 결코 어렵지 않다. 늘 준비하고 살피며, 스스로 일탈과 방만함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기울이는 자는 싸움터의 승리자다. 적 앞에 나설 수 있는 힘을 닦고 챙긴 사람만이 처절한 싸움터의 최후 승리자다. 나는 전쟁터를 서성이면서 자명한 이치라고 해야 할 그런 답을 얻었다.



6·25전쟁 초기 국군 1사단장 시절의 백선엽

 하늘과 땅, 일기(日氣)의 조화가 빚는 여러 가지 조건이 싸움터의 운(運)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전쟁을 이야기할 때 그런 운이 승리와 패배를 가른다고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운은 스스로 노력하고 준비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모든 것을 갖춘 이에게 찾아온 운은 승리를 얻는 결정적인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으나, 그러지 못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운이라는 것은 그저 쉽게 지나치는 바람일 뿐이다.

 그 많은 전쟁터를 돌아다니며 나는 늘 그 점을 마음에 새겼다. 영문(營門)을 떠나 초록색 군복을 벗은 몸이었지만 내 마음과 영혼은 늘 전쟁터를 떠돌면서 그를 살피고 또 살폈다. 내가 그랬던 이유는 아무래도 60년 전 직접 겪은 6·25 전쟁의 상처가 깊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전장에서 총탄과 포화(砲火)가 빚어내는 온갖 참혹함을 직접 겪었다.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야욕으로 전쟁은 벌어졌고,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생령(生靈)들이 스러져갔다. 나는 항상 그를 잊지 못했고, 결국 기억의 바닷속에 켜켜이 쌓인 그런 상처가 내 발길을 전쟁터로 이끌었을 것이다.

 어느 한 쪽이 높고, 어느 한 쪽은 낮은 힘의 불균형이 빚어질 때 전쟁은 터진다. 인류의 길고 긴 생존의 험로(險路)에서 쌓이고 또 쌓였던 싸움의 유전자는 그때 맹렬하게 번진다. 그 전쟁을 막는 방법은 스스로 강해지는 것이다. 내 힘이 적을 압도할 때 전쟁은 쉽게 벌어지지 않는다. 내가 강했을 때 적은 주춤거릴 수밖에 없다.

 내 힘으로 적이 전쟁의 망념(妄念)을 지니지 못하도록 막는 게 우선이다.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스스로 강하면 적을 막을 수 있다. 스스로 준비하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전쟁의 참화를 비켜갈 수 있다.

 이제 나의 길고 길었던 전쟁의 회고를 마친다. 나는 그동안 중앙일보 지면을 빌려 내가 직접 겪고 이끌었던 60년 전 한반도의 전쟁을 소개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메시지가 대한민국의 지속적인 번영에 단단한 초석(礎石)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전쟁의 비참함 속에서도 결국 거센 포화의 뜨거운 불길 너머로 자신을 던지며 조국을 수호한 수많은 국군 장병, 만리타국에서 자유의 가치를 지키려 목숨을 버린 미군 등 유엔 16개 참전국의 장병들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노병(老兵)의 회고를 주의 깊게 읽으며 많은 성원(聲援)을 보내준 독자, 이 회고를 지면에 실어준 중앙일보 임직원 여러분에게도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덧없이 흘러 사라지는 세월 속에서도 우리가 쉽게 잊을 수 없는 것이 전쟁일 것이다. 전쟁을 기억하고, 그 안에 담긴 교훈을 늘 마음속으로 새겨야 할 것이다.

 보잘것없는 노병이 이끌어온 이 이야기가 많은 결실을 맺으면 좋겠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위해 스러져간 그 많은 영령(英靈)이 환하게 웃으면 좋겠다. 나 또한 전쟁의 음울한 기억, 밤에 찾아오는 그 전쟁의 악몽에서 이제는 놓여나고 싶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노병의 간절한 소망이다.

백선엽 장군
정리=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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