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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천안문 사태의 기억

중앙일보 2011.02.28 00:28 종합 34면 지면보기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1989년 봄 세계는 중국 베이징을 주시했다. 대학생 시위대는 ‘민주’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시내 중심 천안문(天安門)광장에는 학생·시민 등 수천 명이 운집해 수개월째 농성을 벌였다. 시위는 6월 4일 새벽 콩 볶는 듯한 총성과 함께 끝났다. ‘6·4 천안문 사태’였다. 중국인들은 망각을 강요받았다. 젊은 학생들은 그날 일을 배우지 않았고, 중년 어른들도 ‘동란(動亂)’이었다며 추억(追憶)을 꺼린다. 그렇게 흐른 22년, 그 기억이 지금 되살아나고 있다. 베이징·상하이 등 주요 도시에서 주말 벌어지고 있는 ‘재스민 혁명’을 통해서 말이다.



 잊혀질 만도 했다. 경제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로 올라섰고, 올림픽 순위는 미국을 제치고 종합 1위다. TV와 극장에서는 ‘대국굴기’ ‘부흥의 길(復興之路)’ 등 중화 민족의 우수성을 찬양하는 다큐멘터리와 영화가 끊이지 않는다. 공산당은 여전히 존경받는 존재다. 대다수 중국인들은 ‘서구식 다당제 민주주의는 중국에 맞지 않는다’는 당의 말을 믿는다. 그럼에도 ‘민주’라는 이름을 내건 ‘재스민 혁명’이 또다시 중국 사회의 말단을 흔들고 있다. 이유가 뭘까?



 ‘부족함을 걱정하지 말고 고르지 못함을 걱정하라(不患寡而不均)’는 공자의 말에 해답이 있다. 빈부격차가 문제라는 얘기다. 천안문 사태 당시만 하더라도 도시민과 농민의 소득격차는 2.1 대(對) 1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3.2 대 1로 벌어졌다. 도시 주민만 ‘성장의 파티’를 즐겼을 뿐 농민들은 그 과실을 나누지 못했다. 농민공(農民工)들은 도시 저소득층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부정부패는 끊이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언론에 등장하는 부정부패에 신물 날 지경이다. 특히 지방정부와 부동산 개발업체, 은행 등이 연계된 ‘아파트 부패 고리’는 집 없는 서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여기에 천안문 사태 때도 그랬듯 인플레가 민생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소비자 물가는 7개월째 목표치 3%를 넘긴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부동산 가격 폭등이다. 지난 수년 동안 주요 도시의 아파트 가격은 매년 평균 30~40%씩 올랐다. 빈곤층의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



 공장 근로자들은 한 달 평균 2000위안(약 35만원) 급여를 받아봐야 기본 생활비를 쓰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불만이다. 그러기에 요즘 젊은 노동자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유행한다. ‘먹는 것은 돼지(猪)보다 적지만 일은 소(牛)보다 많이 해야 하고, 잠은 개(狗)보다 늦게 자지만 닭(鷄)보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 짐승만도 못한 공장 노동자들의 힘겨운 삶을 풍자한 말이다. 이 같은 글이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타고 돌면서 노동자들의 불만 수위는 점점 높아가고 있다.



 천안문 사태를 배우지 않은 20~30대 젊은이들은 이제 이런 질문을 던질지 모른다. “천안문 사태는 왜 일어났으며, 탱크는 왜 시민들을 짓밟았느냐?”고 말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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