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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볼트·너트 납품단가만 깎으려 하면 …

중앙일보 2011.02.28 00:17 경제 8면 지면보기






김덕한
한국화스너 대표이사




최근 복사기가 고장 나 직접 뜯어본 적이 있다. 모두 258개의 나사가 들어 있었다. 나사는 대개 하나에 10원이 채 안 되니 258개라야 2000원 안팎이었을 것이다. 대당 100만~200만원 하는 복사기 가격의 0.1~0.2%다.



 새삼 나사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원자재 가격 상승 때문이다. 원자재 값이 오른다는 말은 나사 제조업체에 시련이 닥쳐오고 있다는 말과 같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니 납품단가를 개당 1~2원이라도 올려야 할 텐데, 이게 쉽지 않다. 대기업 구매 담당자들은 악착같이 가격 인상을 막는다. 납품단가를 낮추는 것이 인사고과나 성과급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볼트·너트 같은 나사류 구매 흥정을 하는 과정에서 제품에 깃든 기술력은 철저히 무시된다. 하지만 나사류 부품 한 개의 성능 차이가 엄청난 생산원가 차이를 불러올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값싼 수입품 나사가 부러져 생산라인을 정지시키는 것은 흔한 광경이다. 정밀도에 문제가 있으면 조인 나사가 풀리기도 한다. 도금 두께가 불량하면 녹이 슬기도 한다. 인공위성 나로호의 발사 실패 원인도 불량 나사 때문이라고 들었다. 언젠가 나사류 부품의 하나인 5원짜리 와셔에 녹이 슬어 수천만원짜리 장비가 반품된 것도 본 일이 있다. 놀이기구 사고도 나사 불량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중요한 부품이지만 나사를 살 때 그 기술적 가치를 고려해 주는 실무자를 본 일이 없다. 나사류 사업에 20년을 종사하면서 체험한 것이다.



 이런 실정에서 국내 나사류 업체들의 살 길은 하나뿐이다. 기술력이나 품질은 제쳐 놓고 무조건 싸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가 안 되면 저가 수입품을 들여다 자사 상표를 붙여 팔고, 그것도 안 되면 수입품 판매상으로 간판을 바꿔야 한다. 이미 국내에 유통되는 볼트·너트의 70% 이상은 저가 수입품이다.



 사실 국산 볼트·너트는 품질 면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불량으로 인해 생길 생산원가의 증감을 따져 보고, 제품의 가치대로 가격을 쳐주면 더더욱 우리 제품의 경쟁력은 살아난다. 그게 전자·기계업체들이 생산원가를 절감하는 길이며, 산업의 밑뿌리 중 하나인 나사류 산업도 지키는 길이다.



김덕한 한국화스너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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