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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이노패스트] ⑥ 디지텍시스템스

중앙일보 2011.02.28 00:11 경제 11면 지면보기



“버튼 달린 모든 기기는 ‘터치’로 바뀝니다”



디지텍시스템스 직원이 정전식 터치스크린 패널 시제품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태블릿PC용 정전식 터치패널과 투명전극필름, 강화유리 등을 잇따라 개발하는 성과를 올렸다. [사진=최승식 기자]





‘이노패스트’는 혁신(Innovation)을 바탕으로 고성장(Fast-Growing)하고 있는 기업을 가리킵니다. ‘한국의 대표 기업’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미래의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중견·중소기업들입니다. 제2의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로 진화할 수 있는 기업입니다. 중앙일보는 2009년에 이어 올해 10개 이노패스트 기업의 창업·성장 이야기를 소개하고, 이들에 대한 딜로이트의 전문적인 컨설팅을 곁들임으로써 기업가 정신이 기업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조명합니다.













“앞으로 버튼이 달린 모든 기기는 터치 패널로 바뀔 것입니다.”



 터치스크린 패널(TSP) 생산업체인 디지텍시스템스는 스마트폰 세상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다. 스마트폰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불과 2년 새 매출이 세 배 이상으로 뛰었다. 하지만 이 회사 이환용(사진) 사장이 보는 시장은 훨씬 크고 넓다.



 터치스크린 패널이란 키보드나 마우스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화면을 손으로 직접 눌러 입력하는 장치다. 손가락에서 발생하는 정전기를 감지해 입력신호로 바꿔주는 정전식과 화면을 누르는 압력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감압식이 있다. 터치스크린은 전시용 스크린, 무인단말기(ATM), 판매시점관리(POS) 단말기 등을 통해 오래전부터 선보였다. 그러다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 태블릿PC에 채용되면서 비약적 성장을 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터치스크린 패널을 공급하는 업체는 디지텍시스템스를 비롯해 멜파스·에스맥·이엘케이·시노펙스 등 몇 군데뿐이다. 디지텍시스템스의 자랑은 다른 업체들과 달리 제품군 구성(포트폴리오)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핵심 부품을 자체 개발해 성장성과 안정성을 두루 갖춘 중소기업이란 점이다.











 회사의 뿌리는 1997년 이 사장이 다국적 기업인 3M에 근무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공중용 단말기나 ATM 시장을 겨냥해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놓은 3M은 시장이 예상만큼 커지지 않자 이내 사업을 접었다.



 하지만 이 사장은 3M의 수많은 제품군 가운데 유독 이 사업에 대한 관심을 지울 수 없었다. 관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결국 몸담았던 회사를 나와 2000년 디지텍시스템스를 창업했다. “혹시 잘 안 되더라도 국내에 터치스크린 시대를 열기 위해 노력한 족적은 남겨야겠다”는 게 이 사장이 창업을 결심 할 때의 생각이었다.



 당시만 해도 모든 게 장밋빛이었다. 데스크톱 컴퓨터만 한 크기에 고정된 기계로 인식되던 터치스크린이 PDA에 장착되면서 휴대용 기기 시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호도 잠시였다. 모든 휴대용 단말기를 대체할 것 같던 PDA의 인기가 사그라졌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다. 동시에 유동성 위기가 엄습했다. 이 사장은 “함께 일하던 연구원들에게 밥 사줄 돈이 없어 점심시간이 두려워질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사업을 접고 싶은 마음이 턱밑까지 차오를 무렵 꽉 막혔던 시장이 뚫렸다. 내비게이션 시장이 열린 것이다. 문 닫을 생각까지 했던 회사는 일약 시장의 샛별로 떠올랐다.



 2007년엔 코스닥에 화려하게 입성했다. 앞길엔 거침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 사장은 “당시가 제2의 위기가 싹트던 때”라고 말했다. “밖으로는 화려했지만 안으로는 상장통을 앓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상장에 성공하자 대기업에 회사를 넘기고 몇백억원을 챙겨 편히 살라는 유혹이 적지 않았다. 이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만 그런 게 아니다. 목돈을 마련할 기회가 생기자 주식을 팔고 다른 회사로 뜨는 직원도 생겼다. 잘나가는 중소기업은 상장하는 시기에 이런 진통을 한 번쯤 겪게 마련이긴 하다.











 성장통도 있었다. 회사가 성장할수록 인치(人治)가 아닌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사장은 미래를 고민할 수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특성상 사장 한 명에게 목을 매는 상황이 쉽사리 개선되지 못했다. 회사 관리는 물론이고 연구개발과 생산, 마케팅까지 이 사장이 개입해야 하니 미래에 대비할 시간이 없었다.



 이게 곧바로 위기로 이어졌다. 2009년 정전식 터치패널을 쓰는 아이폰이 도입되자 졸지에 시장의 낙오자가 됐다. 당시 납품처인 삼성전자의 전략에 맞춰 감압식 터치패널을 고집했던 디지텍시스템스로서는 낭패였다. 애널리스트들의 혹평이 잇따랐다. 주가가 폭락했다. 이 사장은 “정보기술(IT) 시장의 변화가 빛의 속도로 진행되는 만큼 아무리 지금 잘나간다고 해도 한순간만 놓치면 시장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뒤처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위기의 순간을 헤쳐나올 수 있었던 것은 게임기용 대형 터치스크린 패널 덕분이었다. 카지노의 슬롯머신 등에 쓰이는 터치스크린 시장은 이 사장이 근무했던 3M이 독점하고 있었다. 디지텍시스템스는 초기부터 여기에 공을 들여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수요처가 안정적이고 이익률이 높은 게임기용 터치스크린은 회사의 캐시카우 역할을 했다. 덕분에 정전식 제품 개발에 힘을 쏟을 여력이 있었다. 마침내 지난해 10월 정전식 터치패널을 채택한 삼성의 태블릿PC인 갤럭시탭에 이 회사의 제품이 들어갔다. 스마트폰용 정전식 패널도 납품이 성사됐다. 시장에선 갤럭시탭의 성장 덕분에 올해 이 회사의 태블릿PC용 패널이 250만 개가량 판매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맥투자증권 이준희 애널리스트는 “디지텍시스템스가 지난해 정전식 터치스크린 패널 전문기업으로 극적인 변신을 했다”고 평가했다.



 디지텍시스템스는 정전식 터치스크린 패널에 들어가는 부품 가운데 원가 비중이 가장 큰 강화유리와 투명전극(ITO) 필름 개발에 성공했다. 특히 강화유리가 눈길을 끈다. 휴대전화용 강화유리는 유리 원판을 사서 열·화학 처리 등의 가공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원재료인 유리 원판은 고급형인 코닝사의 고릴라와 저가형인 아사히글라스의 소다라임 제품이 주류다. 아이폰이나 갤럭시 같은 고가품은 모두 고릴라를 쓴다. 하지만 디지텍시스템스는 가격이 5분의 1밖에 안 되는 소다라임으로 코닝 제품과 거의 비슷한 성능의 강화유리를 만드는 기술을 확보했다. 이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 나오는 올해부터는 원가 부담이 확 줄어들 전망이다. 이 사장은 “아직은 자체 제품에 쓸 물량 대기도 버겁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분야를 키우면 새로운 수익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그는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질 것”이라며 “중소기업으로서는 소재와 부품을 얼마나 자신의 것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최후의 승자가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별 취재팀=김준현 차장, 최현철·하현옥·한애란·권호·김경진·권희진 기자



‘사람 중심’에서 ‘시스템 중심’으로 전환하라



딜로이트의 지면 기업컨설팅










양석훈 이사 딜로이트컨설팅 HC그룹 리더



디지텍시스템스는 창립 10여 년 만에 매출 1000억원대의 중견기업으로 도약한 신흥강자다. 이는 터치스크린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한 시기에 미래 시장에 대한 비전을 바탕으로 사업화에 나선 창업자의 선견지명과 설립 이후 줄곧 한 분야에 매달려온 ‘선택과 집중’ 전략의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간 수차례의 유동성 위기와 핵심인력 이탈 등 ‘성장통’을 겪으면서 위기에 대한 저항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기른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또 한번의 도약과 지속성장을 앞두고 있는 이제부터가 본 경기임을 명심하고 기본으로 돌아가 준비태세를 점검할 것을 주문하고자 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지속적인 현금창출 메커니즘을 마련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자부품 제조업은 신제품 출시 후 빠르면 6개월, 늦어도 3년 이내에 후발주자들의 카피 제품 출시와 저가 공세에 직면하게 된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현금을 가지고 오는 기업에만 제품을 납품할 만큼 기세등등했던 한 전자부품업체는 그 후 5년여 만에 부실 기업으로 전락했다.



 잘나갈 때 미래의 먹을거리를 고민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연관사업으로 확장 가능한 기술력 확보에 힘쓰면서 3년 후, 5년 후의 성장동력에 대해 고심해야 한다. 미래 시장과 새로운 기술에 대한 체계적이고 치밀한 준비만이 생존을 보장한다.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우수인재 확보도 필수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이의 제품화, 마케팅을 담당하는 핵심인력을 안정적으로 충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인적자원 관리 측면에서 보자면 이 회사처럼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기업은 기존 인력 이탈 방지보다는 새로운 시장을 이끌어갈 수 있는 신규 인재 확보에 주안점을 둘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 회사에 요구되는 것은 ‘사람 중심에서 시스템 중심으로의 전환’이다. 대개 임직원 수가 300여 명이 되기 전까지는 CEO 중심의 통제가 가능하고, 500여 명이 되기 전까지는 주요 임원이나 팀장에 따라 조직 및 업무를 재편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건 명심해야 할 것은 시스템에 의한 관리다.



 당장 조직이 300여 명 규모만 돼도 평가의 공정성, 무임 승차자 등의 이슈가 불거진다. 500여 명 이상으로 커지면 업무 중복 및 누락, 관리 원칙의 부재와 같은 비효율이 늘고 ‘줄서기 문화’로 인한 조직역량의 분산을 경험하게 된다. 답은 조직의 성장 속도와 규모에 맞는 편한 옷들을 미리 준비하고, 서서히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처음 입은 갑옷은 보기에만 좋을 뿐 싸우기도 전에 병사를 지치게 하는 법이다.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고픔을 잊기 위해 뛴다면 더욱 강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이 회사 CEO 의 지론이다. 이처럼 강력한 신념에 체계적인 기본기가 더해진다면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이 불가능한 과제는 아니다.



양석훈 이사 딜로이트컨설팅 HC그룹 리더



● 지속적인 현금창출 메커니즘 마련이 가장 시급하다



● 연관 기술 확보 힘쓰면서 3~5년 후 성장동력을 고심하라



● 기존인력 잡기보다는 새 시장을 이끌 신규 인재 확보 주안점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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