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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세요, 이태석 신부님

중앙선데이 2011.02.27 02:33 207호 2면 지면보기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마을에서 나병환자들과 함께 살다 선종한 이태석 신부를 그린 영화 ‘울지마 톤즈’가 지난주 대부분의 상영관에서 종영됐다. 4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영화관을 찾았다. 인간의 삶이 얼마나 비참할 수 있으며, 동시에 얼마나 숭고해질 수 있는 건지를 목격했다. “저렇게 사는 삶도 있는데, 저런 인생도 있는데….” 캄캄한 객석에서 관객들의 뺨에 흘러내린 눈물은 그런 참회일 것이다.

김종혁의 세상탐사

하지만 비종교인인 나는 이태석(사진)의 삶과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게 있었다. 정말 하느님이 있다면 어째서 이 신부 같은 사람을 그리도 일찌감치 데려간단 말인가. 힘없고 굶주리고 가엾은 저 톤즈 사람들은 어떻게 살라고. 남을 착취하고, 억압하고, 탐욕하고, 위선에 가득 찬 수많은 나쁜 사람은 놔두면서 왜 하필이면 이 신부에게 불치의 병을 내린단 말인가. 그것은 무슨 정의인가? 어떤 사랑인가? 종교를 주로 이성과 논리 차원에서 바라봤던 나는 그런 항변을 하고 싶었다. 그것은 가슴 시린 삶을 살다 간 동갑내기 신부에 대한 죄스러움과 안타까움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따져보면 그는 결코 죽은 게 아니었다. 비록 물리적 생명은 끝났지만 그의 삶과 죽음을 지켜본 수많은 사람의 눈물 속에서, 가슴속에서 부활하고 있었다. 만일 이 신부의 죽음이 그토록 극적이지 않았다면 과연 이렇게 가슴 아파하고, 부끄러워하고, 그의 삶을 귀감으로 삼으려 했을까. 아닐 것이다. 그러니 독실한 종교인이라면 나의 항변에 이렇게 답할 수도 있겠다. “예수는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인간의 탐욕과 비겁과 어리석음을 돌아보게 했다. 마찬가지다. 하느님은 성자 같은 이 신부를 그토록 빨리 데려감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그런 설명이 가능할 것도 같다. 하지만 솔직히 교리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가 성당에 가고 싶고, 신부님들에게 존경심을 품게 되는 건 교리나 주장 때문이 아니다. 이태석 신부나 김수환 추기경 같은 분들의 삶과 죽음을 보면서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설법도 “그저 입었던 승복 그대로 화장하라”며 입적한 법정 스님보다 감동적이긴 쉽지 않다.

요즘 종교계가 시끄럽다. 지난해 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은 ‘추기경의 궤변’이라는 성명을 냈었다. 사제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논리의 거칠고 조악함에 기가 질렸던 기억 위로 이태석 신부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자꾸 오버랩된다. 췌장암 말기에 삐쩍 마른 얼굴로도 ‘나는 괜찮아’라는 표정으로 웃던 그 모습이. 나는 그분들이 구현하려는 정의(正義)가 하늘의 정의인지, 땅의 정의인지 잘 모른다. 뭐가 됐든 정의구현사제단의 여러 신부님보다는 이 신부님이 그걸 훨씬 잘 구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안타깝게도 법정 스님이 주지로 있던 길상사도 분란에 휩싸여 있다. 스님의 열반 1주기를 앞두고서다. 누가 잘하고 잘못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물욕만이 욕심은 아니다. 자리가 됐든, 명예가 됐든, 자존심이 됐든 그걸 앞세우는 게 법정 스님이 설파하신 무소유와는 거리가 멀 것이다.

며칠 전 개신교의 유명한 목사 한 분이 이슬람 채권법과 관련해 “그게 도입되면 정권 하야 운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면서 “목숨 걸고 싸우겠다”고 표현했다. 강경 노조의 위원장이 하는 말 같다. 이슬람 지역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선교활동을 펴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태석 신부가 선종한 뒤 수단 톤즈 마을 사람들은 ‘사랑해 당신을’이라는 노래를 한국말로 부르며 흐느껴 울었다. 그의 부재는 슬프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자신들을 한없이 사랑한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은 톤즈 마을 사람들의 고단한 삶에 오랜 위로가 될 것이다. 영화의 제목처럼 이 신부도 하늘나라에서 말했을 것이다. ‘울지마 톤즈’라고.

종교는 어때야 하는 걸까. 답은 모른다. 단지 이 신부 같은 분의 삶과 죽음을 통해 느낄 뿐이다. 꼭 가톨릭만의 얘기는 아니다. 이제는 우리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울지 마세요, 이태석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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