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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의 민주화 물결’ 이미 시작, 역류 가능성에 촉각

중앙선데이 2011.02.27 02:25 207호 3면 지면보기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최근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을 휩쓸고 있는 민주화 도미노는 ‘즐거운 놀라움(pleasant surprise)’을 안겨줬다.

이슬람 휩쓰는 민주화 도미노의 향방은

민주주의·인권운동 비정부기구(NGO)인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이 지역 17개 이슬람 국가 중 자유로운 민주 국가는 최근까지 한 나라도 없었다. 이 지역의 민주화 가능성에 대해선 전통적으로 비관론이 팽배했다. 지난해 12월 4일자 이코노미스트지는 이 지역에서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서지 못하는 이유를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다. 결론은 “결정적인 이유는 알 수 없다”였다.

그동안 아시아·라틴아메리카·동유럽 등 다른 지역에 불었던 민주화 열풍은 이 지역만 비켜갔다. 그 이유로는 서구중심적인 시각이지만 ‘이슬람 문화가 민주주의와는 맞지 않다’는 견해도 제기됐다. 정보기관과 군부의 국민 통제가 고도로 발달했으며 민주적이어야 할 선거가 권위주의 강화에 이용되고 있다는 점도 지목됐다.

1989년 11월 한 시민이 베를린장벽을 허물고 있다
튀니지의 시민 시위가 이웃 나라로 확산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세계는 낙관적이지 않았다. ‘뉴리퍼블릭(New Republic)’이라는 잡지는 1월 18일 스탠퍼드대 국제학연구소 연구원인 조셉 조피의 기사를 실었다. 제목은 ‘튀니지가 아랍 세계 민주화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아닌 이유’였다. 그러나 기사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집트 시위 군중은 ‘튀니지가 해결책이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흔들고 있었다.

이제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민주화 열풍을 ‘제4의 민주화 물결’이나 ‘민주화 도미노’라고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게 됐다. 민주화를 ‘물결(wave)’ 개념으로 분석한 학자는 ‘문명충돌론’으로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1927~2008) 교수다. 그는 제3의 물결:20세기 말 민주화(1991)에서 다양한 민주화의 원인을 제시했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경제적인 원인이었다. 1974년에서 89년 사이 1인당 국민소득이 1000~3000 달러에 도달한 나라들은 70~80년대에 3분의 2가 민주화를 달성했다.

제3의 민주화 물결은 70년대 중반 남부 유럽에서 시작해 90년대까지 아프리카·중남미·동부유럽을 휩쓸었다. 국제정치적인 측면에서는 냉전이 중요한 변수였다. 상당수 국가가 공산화 위협과 국가안보를 내세우며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했다. 소련·동구권의 붕괴와 냉전의 종식은 민주화의 확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권위주의 세력이 온건파와 강경파로 분열하고 시민 사회가 부활했으며 정파들은 협상을 통해 민주 협약을 맺었다.

중동·북아프리카의 민주화 돌풍은 제3의 물결의 연장으로도 볼 수 있으나 제4의 민주화 물결의 개막으로 판단할 수 있는 고유한 특징들도 발견되고 있다. 혁명 이론에 따르면 일시적인 경제 후퇴가 민주 혁명을 촉발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튀니지·이집트·리비아에서 경제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혁명이론이 맞지 않는다.

야당 세력과 시민사회의 조직화가 미흡한 것도 특징이다. 대신 그 갭을 스마트폰 등 첨단 정보통신 기기가 채웠다. 운동세력이 온라인-오프라인을 연계해 시위를 벌이는 것은 세계화 반대 시위와 한국 사례 등에서 발생했다. 이미 민주화된 나라들에서 사용된 수단이 이 지역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데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역은 비교적 동질적인 언어·역사·문화를 배경으로 한다. 특히 이 지역에서 지배적인 이슬람 문화가 앞으로 어떻게 작용할지 주목된다. 헌팅턴 교수는 제2 바티칸 공의회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태도 변화가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는 이슬람주의(Islamism) 세력이 대체적으로 배제됐다. ‘이란식 정권은 싫다’ ‘이슬람주의는 싫다’는 공감대 속에 터키가 모델로 떠올랐다. 터키는 지난 90여 년간 이슬람과 정치의 관계가 분리된 가운데 상당한 수준의 민주 정치와 시장 경제를 발전시켰다.

미국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는 24일 ‘이집트로부터 민주화의 제4 민주화 물결은 시작되는가’라는 글에서 이집트 사태에선 이념이 중요하지 않으며 시민들이 부패 청산, 장기 독재 종결, 기본권 향상, 삶의 질 향상 등 실용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제4의 민주화 물결에서 미국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다. 세계 민주주의의 리더 역할을 자임해온 미국 입장에서 이슬람권은 난감한 대상이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이라크 침공의 목표가 석유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확산이라고 주장했다. 궁색한 변명이었다. 미국은 비민주 정권이라도 친미 정권이면 묵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공식·비공적으로 이 지역 민주화를 추진한 것도 사실이다. 일단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서면 미국이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

제4의 민주화 물결은 앞으로가 문제다. 민주화 이론에 따르면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은 민주화를 위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민주 선거의 결과로 어떤 세력이 집권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민주화 협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민주화 물결은 역류하기도 한다. 민주화된 나라들이 다시 권위주의화하거나 민주주의 발전이 답보상태에 이르는 경우도 많다. 뉴스위크 국제판 편집국장인 파리드 자카리아는 97년 국제관계 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실린 논문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들이 권력을 남용하고 민권을 억압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프리덤하우스의 분류에 따르면 민주화를 달성했던 소련·동구권 국가 28개국 중에서 현재 14개국은 자유 국가이지만 나머지는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국가이거나 독재국가다.

헌팅턴 교수는 “민주화 물결과 역(逆)물결의 존재는 민주화가 2보 전진 1보 후퇴 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한편 중산층이 침묵으로 새로운 권위주의의 공범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제4의 물결이 북한에 도달할 가능성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북아프리카·중동의 민주화 열풍은 북한에도 민주화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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