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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두 시간 동안 잠꼬대 같은 말, 정말 이상한 사람”

중앙선데이 2011.02.27 02:22 207호 4면 지면보기
유혈 참극이 벌어진 리비아에서 일하던 한국 근로자와 교민 235명, 외국인 3명을 태운 대한항공 특별 전세기 KE 9928편이 26일 밤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했다. 리비아에서 탈출한 교민과 근로자들이 도착 후 입국장으로 향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연합뉴스
“말이 되든 안 되든 두 시간이나 장황하게 늘어놓는데 처음 30분 동안은 ‘잠꼬대 하나’라고 생각했다.”

기행과 광기 일삼는 무아마르 카다피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2004년 상원의원 시절 리비아 시르테시(市)에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장장 두 시간에 걸쳐 연설하는 걸 지켜봤던 기억을 이렇게 회상했다. 수전 데이비스(캘리포니아) 민주당 의원은 “나도 말을 들으며 노트에 메모를 했는데 무려 24쪽이나 됐다”고 했다.
이런 내용은 카다피 등 중동 지역 지도자를 전문 취재해 온 케네스 티머만 기자가 뉴스 맥스에 23일자로 기고한 내용이다. 연설을 했다 하면 두 시간은 기본, 뉴욕에서도 천막을 치겠다고 부리는 고집. 보통 사람의 눈엔 기행을 일삼는 괴짜 카다피를 티머만은 “극적 전개에 일가견이 있고 급작스럽게 방향을 전환하는 데 능한, 한마디로 예측 불허 지도자”라고 평했다.

카다피를 2005년 인터뷰한 CNN의 간판 앵커 조너선 만은 21일 CNN 홈페이지에 올린 칼럼에서 “카다피는 내가 인터뷰한 국가지도자 중에서 제일 괴상한 사람”이라며 “카다피는 무기력증에 빠진 것 같았고 눈은 초점이 없어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벌레가 한 마리도 없는데 자꾸 파리채를 휘둘러댔고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며 “그가 어떻게 40년 가까이 나라를 통치해왔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만은 트리폴리의 한 텐트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카다피는 군복 차림의 남자가 손으로 앉을 자리를 정성껏 쓸어낸 뒤 앉았고 텐트 밖에는 염소 한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었다고 소개했다.

카다피의 돌출 발언과 기행은 셀 수도 없을 정도다. 2009년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 참석해선 “스위스 같은 마피아 국가는 해체해서 독일·프랑스·이탈리아에 나눠줘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CNN 앵커 만에겐 인터뷰 도중 리비아 민주주의 문제가 나오자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문제 삼다니. 당신을 모욕죄로 고소하겠다”고 성질을 냈다.

그의 이런 괴짜 행동 뒤엔 어떤 심리가 숨어 있을까.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카다피는 스스로를 왕이자 절대자로 생각한다”며 “그는 세상의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소통할 필요를 못 느낀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느끼는 대화의 목적은 공감인데, 카다피에겐 그런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다른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마음껏 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반대 세력의 시위대에게 두 시간 넘게 광기 어린 소리와 행동으로 TV연설을 한 것에 대해서도 “‘절대자’인 그의 입장에서 보면 반기를 든 국민이 그에겐 비정상이고 이해불가의 존재”라고 설명했다.

그런 그가 196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42년째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티머만 기자는 “카다피는 매우 숙련된 선수처럼 국가를 운영한다”며 “아주 교묘하고 교활하게 나라를 이끌어 왔다”고 했다. 부족 간의 갈등을 조장해 국가 운영에 이용했다는 것이다. 티머만은 뉴스 맥스 기고에서 카다피의 개인 통역으로부터 전해들은 2004년 카다피의 갑작스러운 핵무기 포기 선언 배경도 소개했다. “CNN을 보고 있던 카다피의 얼굴이 돌연 하얗게 질려 무슨 내용인지 화면을 봤다. 미국에 붙잡힌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화면에 나오고 있더라. 라텍스 장갑을 손에 낀 미국 위생병이 후세인의 입 안을 살피고 머리 속에 이가 있는지를 들춰보는 것을 보던 카다피가 갑자기 ‘나는 제2의 후세인이 되기 싫다. 핵무기를 포기하겠다’고 소리쳤다. 그렇게 결정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카다피의 철권통치는 ‘이상무’였다. 지난해 6월 주리비아 대사관의 국정원 직원이 북한 관련 무기 수출입 현황과 함께 카다피 후계 구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자 리비아 당국은 국정원 직원을 추방해 버렸고, 리비아 거주 한인 2명을 체포했다. 한국 주재 리비아 대사관 격이던 리비아 경제협력대표부도 휴가를 핑계로 철수했다. 한·리비아 단교 얘기까지 나왔다. 당시 이 외교마찰을 풀기 위해 뛰었던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결국 카다피와의 면담에 모든 게 걸려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리비아 측이 그간 한국이 교과서와 언론에서 카다피의 기행을 다룬 내용을 두고 마음이 상해 있더라”며 “‘한국은 리비아에서 돈을 많이 벌어갔는데도 왜 카다피를 교과서나 언론이 그렇게 비하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결국 한·리비아 관계는 이상득 의원이 우여곡절 끝에 10월 카다피를 만나면서 해결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카다피를 만나기 전 이 의원은 얼굴 표정까지 점검하고 통역과 문장 하나 하나 다 짚어가며 예행연습을 철저히 했다”고 전했다. 괴팍한 카다피에게 트집을 잡히지 않으려면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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