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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과 20~30대서도 높은 지지…‘텃밭 민심’에 그친 YS·昌 대세론과 달라

중앙선데이 2011.02.27 02:18 207호 6면 지면보기
#1. ‘국회를 빛낸 바른언어상’ 시상식이 열린 16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545호 박근혜 의원실엔 방문객과 축하난이 빼곡하다. 시상식엔 300여 명의 인파와 취재진 50여 명이 몰렸다. 이 중 일부가 의원실을 찾았지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국회에 없었다. 얼마 전까지 그를 수행하던 구상찬 의원에게 물었다.

박근혜 대세론의 허와 실, 지지율 37%에 숨은 뜻

-박 전 대표는 어디 있나.
“외부에서 학자들과 토론 중이다.”

-토론 모임을 자주 하나.
“하루 평균 30~40명을 만나는데 절반은 학자와 전문가다. 나머지 절반은 여러 부류의 ‘돕겠다’는 사람들이고 의원들과 식사도 한다. ‘돕고 싶다’는 사람이 왜 그렇게 많은지…. 자문그룹은 경제 분야만 100명이 훨씬 넘는다.”

#2. 11년 전인 2000년 2월 중순 어느 날. 이 전 총재의 서울 가회동 집 서재엔 새벽부터 방문객이 넘쳤다. 16대 총선을 위한 2·18 공천 발표를 앞두고서다. 이 전 총재는 자택을 비워둔 채 아들과 딸 집으로 돌았다. 며칠째 그를 만나려던 유준상 전 의원이 서재에 빼곡한 법률서적을 가리키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 전 총재의 비서에게 말한다. “총재님께 소설책 좀 사드려라. 법률책만 보니 만날 딱딱하다는 소리를 듣지….” 이 전 총재는 16대 총선에 승리한 뒤 이회창 대세론의 가속 페달을 밟았다. 그의 곁엔 ‘눈 도장’을 찍으려는 인사들로 늘 붐볐다.

10년마다 되풀이 나온 대세론
2012년은 총선(4월)과 대선(12월)이 겹치는 ‘정치 시즌’이다. 정치권은 미래 권력의 향방을 놓고 벌써부터 들썩거린다. 특히 각종 여론조사에서 30% 넘는 지지율을 자랑하는 박근혜 전 대표의 위세는 압도적이다. ‘박근혜 대세론’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권에선 대선 전 몇 차례나 대세론이 나돌았다. 20년 전엔 김영삼(YS) 대세론, 10년 전엔 창(이회창) 대세론이 풍미했다.

박근혜 대세론은 철옹성인가, 아니면 모래성인가.
한나라당 권영진 의원은 2006년 5·31 지방선거 때 오세훈 후보 비서실장이었다. 오 시장의 오랜 측근이다. 하지만 그는 요즘 박근혜 대세론을 편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전은 이미 끝났다. 누구라도 경쟁상대가 안 된다. 계파 의원 수가 문제가 아니다. 당심은 어차피 민심을 따르기 마련”이라고 주장한다.

YS는 대세론 앞세워 민정계 흡수
대선을 앞두고 대세론이 확산되면 사람과 돈이 몰리고 내부에선 권력다툼이 치열했다. 하지만 3개 대세론의 성격은 다르다.

박근혜 대세론과 창 대세론의 근거는 오랜 기간 높게 유지된 여론조사 지지율이다. 20년 전 YS의 지지율은 이보다 약한 편이었다. 당시 민자당 대표(YS) 비서실장인 신경식 전 의원은 “민정계인 이종찬 의원과의 가상 맞대결 여론조사에서 뒤진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YS 차남인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반(反)DJ(김대중) 대안부재론이 대세론으로 발전하는 데는 민정계인 김윤환 의원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당시 YS는 200석의 민자당에서 민정계 주류가 아니라 55명을 이끄는 소수파(민주계) 보스였다. 대구·경북(TK) 민심도 얻어야 했다. 여당 내 비주류 주자의 대세론이란 점에서 박근혜 대세론은 YS 대세론을 닮았다. 대선 전에 총선을 치렀다는 점도 유사하다.

박 전 대표가 총선 이후 YS처럼 세를 불려나갈지는 주목거리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현재까지 집권당 비주류다. 당내에서 친이(친이명박) 의원은 110명, 친박(친박근혜) 의원은 55명 전후다. 친이계 일부는 사석에서 “우리가 최소한 안 되게 할 수는 있다”고 말한다. 일각에선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지사가 대선 후보경선 때 단일화 방식으로 뭉쳐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YS는 10년 전 ‘현재 권력’이었던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끊임없이 지원을 요청하고 민정계와 연대를 시도했다. 신경식 전 의원은 “민자당 대표였던 YS가 당시 일주일 이상 노 대통령을 만나지 않은 적은 없었다”며 “어떤 명목의 만남이든 만들어 냈다”고 기억했다. YS의 한 측근 의원은 “지구당마다 당시 돈으로 6억~7억원의 선거 대책비를 보내줬다”고 말했다.

YS의 치고 나간 스타일과 달리 박 전 대표는 정중동(靜中動)이다. 말을 아끼고 현재권력과 거리를 유지하며 이미지 관리에 치중한다. 그러면서도 세종시 수정안 등 정치 현안에선 파괴력을 보인다. 사람들이 몰려들지만 2인자도 없고 계보도 뚜렷하지 않다. 친박계 최경환 의원은 “박 전 대표가 특정인에게 의존하기보다 각자 뛰는 것을 선호하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의 스타일은 거대 야당을 이끌던 이 전 총재와도 다르다. 이 전 총재는 여당 내 소수파인 박 전 대표나 YS와 달리 당 장악력이 확실했다.

이 전 총재의 최측근이었던 한 전직 의원은 “이 전 총재와 민정계 의원들이 박근혜·최병렬·이부영 당시 의원을 ‘화근 덩어리’라는 이유로 당에서 밀어낼 생각이었다”고 전했다. 이 전 총재는 정치적 연대에도 소극적이었다. 그의 보좌역이었던 조해진 의원은 “2002년 대선 당시 이 전 총재에게 김종필·정몽준 등과의 정치적 연대 기회가 많았지만 스스로 이를 외면했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는 2001년 정당 개혁을 요구하던 박 전 대표와 만났다. 박 전 대표에게 무슨 얘기를 들었느냐고 물었더니 “특별한 말 없이 자신의 판사 때 얘기만 자꾸 해서 왜 만나자고 했는지 모르겠더라”고 대답했다. 이듬해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당시 그에게 “권력을 잡으려면 세력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조직과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며 당에 남을 것을 권유했다. 박 전 대표는 “명분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후 신뢰와 원칙을 자신의 브랜드로 가꿔왔다.

박 전 대표의 이런 스타일은 얼마나 먹히고 있을까. 그의 지지율은 이 전 총재, YS와 달리 단단하다. 모든 지역과 모든 세대, 모든 계층에서 고른 지지를 받는다. 윤희웅 KSOI 조사분석실장은 “박 전 대표는 자신만의 고유한 지지층을 확보한 유일한 정치인”이라며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지지율이 20%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고 전했다. 민기획 박성민 대표는 “복지 등 중도정책을 택한 덕택”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율은 20~30대, 호남에서 각각 30%를 넘었다. 호남 지역에서 모든 민주당 잠재 후보군을 능가했다. 심지어 민노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국민참여당의 간판인 유시민 전 의원보다 지지율이 앞섰다.

이와 달리 YS와 이 전 총재의 지지층은 ▶보수 ▶영남 ▶50~60대란 한나라당의 전통 텃밭과 겹쳐 있다. 이 전 총재는 정치적 위기 때마다 대구를 찾아 “나의 정치적 고향에서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그런 그는 2002년 대선에서 20~30대 유권자 지지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1대3의 비율로 패했다. 이에 비해 YS는 92년 유권자들의 보수 지형이 강해 성공할 수 있었다. 당시 조사에선 10명 중 7명이 “나는 보수”라고 답했다.

과거 대세론 주인공들과 갈등 추슬러야
박 전 대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2위 그룹과 20%포인트 넘는 격차를 3년째 유지해 왔다. 어떤 대권 주자와의 가상 맞대결에서도 천하무적이다. 그래서 여론조사 방식 자체에 문제점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대 강원택 교수는 “야당 후보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 에서 박근혜 대세론은 막연하고 가변적인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적극적 지지라기보다 단순 호감도에 가까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531만 표나 이긴 이명박 대통령도 호남에서 10% 벽을 깨지 못했다. 박 전 대표의 높은 호남 지지율엔 거품이 있다”고 말했다.
대세론이 대선 승리를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YS 대세론은 성공했지만 창 대세론은 실패로 끝났다.

아이러니하게도 3개 대세론의 주인공 사이엔 미묘한 갈등 기류가 흐른다. YS-이회창, 박근혜-이회창 사이의 악연에 YS의 독설이 오버랩된다. 지난 13일 YS는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의 퇴진과 관련해 성명을 냈다. “50년 전 사랑하는 조국에 군사쿠데타란 죄악의 씨를 뿌린 원흉이 바로 박정희 육군 소장”이라는 비난이었다. 박 전 대표가 이런 감정의 앙금들을 어떻게 추스를지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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