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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는 저평가, 조금 리모델링하면 멋지게 될 건물”

중앙선데이 2011.02.27 01:50 207호 13면 지면보기
지난 25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인터뷰를 한 정몽규 총재는 “프로축구 선수들이 미디어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대한민국 축구팬은 종잡을 수가 없다. 월드컵이 열리면 온 나라를 들었다 놓을 정도로 열광한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청용(볼턴) 등이 출전하는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는 새벽까지 졸린 눈을 비비며 시청한다. 그렇지만 월드컵에 나갔던 바로 그 태극전사들이 각 팀으로 흩어져 뛰고 있는 국내 프로축구 K-리그는 “재미없다”며 외면한다. 그 바람에 K-리그는 최근 2∼3년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야구에 완전히 밀려버렸다. TV에서 K-리그 중계는 가뭄에 콩 나듯 한다.

프로축구연맹 새 총재,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이대로 가다간 국내 프로축구가 고사한다’는 위기의식 속에 한국프로축구연맹을 이끌었던 곽정환 회장이 지난해 말 퇴진했다. 그리고 프로축구연맹 새 총재로 추대된 이가 정몽규(49) 현대산업개발 회장이다.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의 구단주이기도 한 정 총재는 0-1로 뒤져 패색이 짙은 후반 추가시간에 ‘동점골을 넣어라’는 특명을 받고 투입된 교체 선수다. 정 총재는 일주일에 절반 이상을 프로축구연맹에 출근해 현안을 직접 챙긴다. 3월 5일 K-리그 개막을 앞두고 있어 그의 마음은 더욱 바쁘다. 정 총재는 “K-리그는 저평가된 주식과 같다. 건축으로 따지면 완전 철거하고 다시 지어야 할 게 아니라 조금만 리모델링을 하면 멋지게 되살아날 수 있는 건물이다. K-리그의 부활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25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정 총재를 만났다.
 
“K-리그는 흑백영화, 잉글랜드는 3D”
-프로축구 비상대책위원회의 총재 추대를 여러 차례 고사했다고 하던데. 그 정도로 부담스러운 자리였는지.
“내 능력이 모자라서 맡을 수 있을까, 맡으면 잘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았다. 성격상 특별히 나서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다. 편하게만 지내려면 안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러 분들이 찾아오셔서 부탁을 하는 바람에 ‘한번 해 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도 특별히 부탁을 했다고 들었는데.
“정 명예회장에게서 특별히 얘기를 들은 건 없다. 하지만 그분이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에서 떨어진 건 한국 축구에 굉장히 큰 손실이다. 어쨌든 내가 맡아서 K-리그를 발전시키는 게 한국 축구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복수의 축구인들에 따르면 지난달 정 명예회장이 FIFA 부회장 선거에서 낙선한 뒤 자신이 일궜던 국제축구계에서의 입지와 유산을 사촌동생인 정 총재가 이어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K-리그는 해결해야 할 난제가 산적해 있다. 그 중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보는지.
“경기 내용과 팬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정규리그에서 성적이 안 나겠다 싶은 팀들은 리그를 아예 포기하고 다른 대회에만 신경 쓴다. 어느 팀의 팬이든 최선을 다해서 이기거나, 지더라도 아깝게 지는 걸 원한다. 포기하는 경기를 보고 싶은 게 아니다. 과도하게 승부에 집착하는 것도 문제다. 심판 판정 하나하나에 지도자와 선수들이 과민하게 반응하고, 팬들이 이걸 보고 인상 찌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해 성적보다 장기적인 구단의 철학과 팬을 만드는 것이다.”

-국내 축구팬들이 A매치와 해외축구에는 열광을 하면서 K-리그는 외면하는 이유는.
“조직력이나 경기 스피드에서 K-리그가 A매치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프리미어리그보다 개인 역량은 떨어지지만 그 차이도 크지 않다고 본다. 문제는 중계 기술이다. 6~8대 카메라로 중계하는 K-리그가 흑백영화라면 25~26대의 카메라가 동원되는 프리미어리그는 3D(3차원) 입체영화다. 맨유 경기도 카메라 몇 대 가지고 멀리서 잡으면 느리고 재미없다고 할 것이다.”
 
“잠실주경기장 쓰는 서울팀 생겨야”
-경기가 재미있어야 사람이 간다, 사람이 가야 경기가 재밌어진다, 어떤 게 맞을까.
“처음 야구장 가는 사람이 야구 룰을 알아서, 야구가 재밌어서 가는 건 아니다. 물론 경기도 보지만 거기 가면 치어리더가 짧은 치마 입고 응원 유도하고, 흥분한 관중이 상대팀 야유하고 이런 게 재밌는 거다. 사람구경 갔다가 진짜 야구의 재미에 빠지는 거랄까. K-리그도 사람이 모이고 ‘축구장 갔더니 정말 재미있더라’는 소문이 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지지 않겠나.”

-축구도 그렇게 되려면 리그에 스토리를 입히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더비 매치(도시 라이벌 간 경기)가 필요한데, 서울도 빨리 한 팀이 더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사실 부산 아이파크가 서울에 입성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이 축구장으로 쓰기에 여러 가지 핸디캡이 있지만 문제될 건 없다고 본다. FC 서울 구단에서도 서울 팀이 하나 더 생기는 걸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제2 서울 팀이 생기는 데 걸림돌은 없다.”

-프로야구나 농구·배구 등 다른 종목에서 배워야 할 점은.
“축구가 미디어를 활용하는 면에서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축구 선수들이 다른 종목 선수보다 더 잘 생기고 남자답고, 재능과 끼 있는 친구도 많다. 그런 점에서 미디어 노출이나 예능 프로 참가 등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 누가 누군지 알아야 응원도 할 것 아닌가. 언론에서 전화하면 선수에게 ‘인터뷰하지 마라. 집중력 떨어진다’고 하는 지도자들은 내가 설득할 거다.”

-K-리그가 방송 중계권 협상에서도 프로야구에 현저히 밀리고 있는데.
“축구가 워낙 오랫동안 우리 국민과 함께해 왔기 때문에 마치 물이나 공기를 대하는 것처럼 ‘이걸 뭐 돈 주고 해야 되나’ 하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 프로축구는 내재가치에 비해 굉장히 낮게 평가돼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좀 어렵지만 올해를 슬기롭게 이겨내면 내년·내후년에는 가치가 훨씬 커져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종합편성방송을 시작하는 중앙일보(jTBC)가 K-리그 중계권을 미리 사 놓으라고 추천하고 싶다(웃음).”

정 총재는 ‘포니 정’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고(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아들이다. 농구 명문 용산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영국 유학 당시 축구의 매력에 푹 빠졌던 그는 울산 현대, 전북 현대 프로축구단 구단주를 역임했다.

철인3종경기와 산악자전거 등 다이내믹한 스포츠를 즐기지만 의외로 조용하고 신중하다. 인터뷰에서도 시원하고 화끈한 답변을 기대했지만 그는 단어 하나를 고르는 데도 답답할 정도로 뜸을 들였다. 하지만 ‘축구는 산업이고, 축구산업이 발전하려면 팬을 최우선으로 모셔야 한다’는 원칙은 몇 차례나 강조했다. 그에게 ‘현대산업개발 CEO가 축구산업개발 CEO로 변신했다’는 표현을 써도 좋겠냐고 물었다. 그는 “너무 (우리) 회사 측면이 강조되는 것 아니냐”며 허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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