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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선으로 볼 촬영해 문제 발견 … 정중앙에 코어 심어 시장 석권

중앙선데이 2011.02.27 01:47 207호 14면 지면보기
1930년대 타이틀리스트 볼 광고지.
메이저 대회에서 9승을 올린 20세기 명골퍼 벤 호건(미국)은 경기에 나가기 전 볼을 소금물에 띄워 손가락으로 돌려보곤 했다. 불량 공을 골라내기 위해서였다. 무게중심이 가운데 있지 않은 공은 물속에서 매끄럽게 회전하지 못하고 오뚝이처럼 한쪽으로만 기운다.

성호준의 골프 진품명품 <2> 골프볼 진화 이끈 타이틀리스트

20세기 초반의 볼은 지름 2.5㎝ 정도의 고무 코어에 얇은 고무줄을 칭칭 감고 커버를 씌운 헤스켈 볼이었다. 제작 방식이 조악해 코어가 가운데 있지 않은 것이 많았다. 코어는 골프 볼의 엔진 역할을 한다. 엔진이 한쪽으로 치우친 볼은 일정한 궤도를 벗어나 아무렇게나 날아다녔다. 완벽주의자인 데다 용품에 매우 예민했던 호건은 소금물의 부력을 이용해 잘라보지 않고도 제대로 된 볼을 고를 수 있었다. 역시 부력을 이용해 순금 왕관과 불순물이 섞인 왕관을 구분해 낸 아르키메데스의 지혜와 비견된다. 그러나 호건은 이 아이디어로 돈을 벌지는 못했다.

“유레카(발견했다)!”를 외친 사람은 MIT를 졸업한 필립 영이었다. 그는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가 경영하던 고무 재생 공장은 세계 최대 규모였는데 고무의 가격이 파운드(약 453그램)당 3달러에서 3센트로 99% 하락했기 때문이었다. 1929년 어느 날 골프를 치던 영은 똑바로 가지 않는 볼에 화가 났다. 그는 자신의 스윙이 문제가 아니라 골프 공이 불량이라고 확신하고 X선으로 볼을 촬영했다. 그의 추측대로 코어가 가운데 있는 볼은 거의 없었다.

그는 제대로 된 골프 볼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듬해 영은 고무줄을 고무 코어에 일정하게 감아 코어를 가운데에 둘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 특허를 냈다. 1935년 출시된 제품에 ‘타이틀리스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영은 이후 스윙머신을 만들어 코어가 가운데 있는 볼의 우월성을 증명했다. 타이틀리스트는 ‘업계 최초! 일관된 품질의 신뢰받는 골프 볼’이라는 광고 캠페인으로 전 세계 볼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타이틀리스트의 프로 V1은 한때 웃돈을 줘야 살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논란도 있었다. 골프 볼의 접합 부분에는 지구의 적도처럼 원이 생긴다. 이곳에는 딤플이 없었다. 2001년 잭 니클라우스는 “프로 V1의 접합 부분을 목표 방향 쪽으로 놓고 티샷을 하면 15야드 정도 거리가 더 나간다”고 말했다. 멀리 나가는 건 좋지만 일관성이 없는 공이라는 주장이었다. 스튜어트 싱크 등 다른 회사의 볼을 쓰는 골퍼들이 이에 동조했다. 타이틀리스트 측은 당시 “그렇게 볼을 놓으면 더 멀리 날아간다고 믿는 ‘플라시보 효과’에 불과하다”고 부인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최고 골퍼 니클라우스의 발언은 파문을 일으켰다. 타이틀리스트를 쓰는 선수들은 접합 부분의 선이 타깃을 향하도록 놓고 샷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퍼트를 할 때는 대부분의 선수가 접합선을 타깃 쪽으로 놓고 스트로크했다. 겨냥하기도 좋았지만 그래야 양쪽의 밸런스가 맞고, 똑바로 굴러간다고 생각해서다.

현재 개량된 프로 V1은 접합 부분에도 딤플이 있고, 접합선도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프로 골퍼가 접합 부분을 타깃 쪽으로 겨냥하고 퍼트를 한다. 타이틀리스트가 접합 부분에 화살표를 그려 넣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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