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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의 장비로 정상 공격 6000m 암벽에 매달려 쪽잠

중앙선데이 2011.02.27 01:45 207호 14면 지면보기
2009년 7월 파키스탄 스팬틱 골든 피크(7027m)에 도전한 김형일 대장 팀이 산등성이를 오르고 있다.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을 요구하는 알파인 스타일 등반에서는 대원끼리의 팀워크와 신뢰가 등정의 성패를 좌우한다.
산은 누구에게나 정상을 허락한다. 하지만 산에 오르는 방법을 선택하는 건 인간이다. 알프스나 에베레스트 등 고산 등반 초창기에는 극지법(極地法)이 주류였다. 베이스캠프를 설치한 뒤 순차적으로 캠프를 만들어가며 식량을 올리고, 고정 로프를 설치해 등정하는 방법이다. 시간과 물량, 인력이 많이 든다. 엄홍길·박영석 등 국내 산악인 대부분이 이 방법으로 히말라야 고산들을 올랐다.

정영재의 스포츠 오디세이 <4> 가장 정직한 등산, 알파인

 알파인 스타일 등정은 극지법과 매우 다르다. 2∼3명의 대원이 최소한의 장비로 짧은 시간 안에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것이다. 한번 베이스캠프를 출발하면 등정을 마칠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국내에서 알파인 등정을 고집하는 산악인은 20명 남짓이다. 김형일(43·K2코리아) 대장이 그중 선두주자다. 김 대장 팀은 2009년 파키스탄 스탠틱 골든 피크(7027m)에 올랐다. 국내 최초의 7000m급 알파인 스타일 등정이었다. 스포츠 오디세이가 김 대장의 안내를 받아 알파인 등정의 세계로 여러분을 모신다.

알파인의 원칙은 자연 친화, 환경 보호
국제산악연맹(UIAA)이 제시하는 알파인 스타일 등정의 여섯 가지 원칙이 있다. 셰르파 등 도우미를 두지 않는다. 사전 정찰을 하지 않는다. 고정 로프를 설치하지 않는다. 로프는 2동 이내로 제한한다. 산소 기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팀당 인원은 6명을 넘지 않는다.

2009년 골든 피크 정상에 선 김형일 대장.
이 중 하나라도 어기면 알파인이 아니다. 세계 산악계의 대세는 알파인 등반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알파인 등반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산에 오르는 게 능사인가’ 하는 반성에서 출발했다. 수십 명이 팀을 이뤄 올라가 먹고, 싸고, 버린다. 셰르파와 동료 대원들이 죽을 힘을 다해 루트를 개척하고 고정 로프를 설치해 놓으면 이를 잡고 정상에 오른다. 정상을 정복한 뒤에는 설치했던 로프와 온갖 쓰레기들을 남겨두고 내려온다. 이게 산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인가 하는 반성 말이다.

국내 알파인 등반가들은 최근 논란이 된 오은선 대장의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 의혹, 오은선 대장과 여성 최초 14좌 완등 경쟁을 벌이던 고미영 대장의 사고사 등이 ‘등정 만능주의’가 남긴 폐해라고 지적한다.

김 대장은 “경쟁자보다 먼저 14좌 완등을 하기 위해 헬기를 타고 베이스캠프에 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피크 헌터(Peak Hunter)’라고 부른다. 피크 헌터가 박수받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했다.

김 대장은 극지법 등반가들도 동료와 선후배로서 존중하고 인정한다고 했다. 그 자신도 2001년 엄홍길 팀의 일원으로 로체·로체샤르 원정에 함께했다. 하지만 등정에 대한 철학은 양보할 수 없다고 했다.
 
“수단·방법 안 가리는 피크 헌터 시대는 끝”
알파인 등정은 극지법 등정보다 훨씬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한다. 베이스캠프를 출발하면 정상에 오르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기에 배낭 무게를 1g이라도 줄이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배낭에 쓸데 없는 버클들은 다 끊어버린다. 2009년 김 대장 팀이 골든 피크를 공략할 당시 아침은 비스켓 두 조각에 차 한 잔, 점심은 파워젤(영양보충제)과 캔디 몇 개, 저녁은 물을 부어 먹는 드라이라이스 2인분을 세 명이 나눠먹었다. 6일을 예상했는데 5일치 식량만 갖고 갔다. 하루를 굶어도 죽지 않으니까. 수저는 안 가져가고, 양치는 할 생각도 못하고, 눈을 녹인 물을 마신다. 휴지 대신 물을 부어 쓰는 코인 모양 티슈를 가져간다. 그걸로 얼굴 닦고, 밥그릇 닦고, 잘 씻어서 밑도 닦는다.

두 명 또는 세 명이 조를 이뤄 정상을 공략한다. 한 사람이 먼저 빙벽이나 바위 벽을 올라가면서 하켄(등반용 특수 못)을 박고, 여기에 자일을 연결시킨다. 뒷사람은 앞사람이 설치한 장비들을 걷으면서 올라간다. 수백m 빙벽에 매미처럼 매달려 있기도 하고, 두께 7㎜의 자일로 서로의 몸을 연결해 천길 낭떠러지를 건너간다.

가장 힘든 건 비바크(biwak·텐트 없이 밤을 나는 것)다. 깎아지른 6000m 설산에서 엉덩이만 살짝 걸치고 다리는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잠을 청해야 한다. 침낭을 뒤집어쓰지만 칼날처럼 파고드는 추위와 강풍은 견디기 힘들다. 10분 자다 깨고, 20분 자다 깨고 하면서 하염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지켜봐야 한다. 물론 설산을 물들이며 밝아오는 여명을 바라보는 건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세상의 평판에 신경 쓰면 독을 마시는 것”
김 대장은 1990년 등산에 입문했지만 ‘중환자’는 아니었다. 98년 국내 거벽 등반의 간판스타였던 친동생 형진씨를 인도 탈레이사가르 북벽에서 잃었다. 다행히 시신은 수습해 인도에서 화장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유해를 다시 정리했다. 뼛가루를 찹쌀에 묻혀 주먹밥을 만들어 산짐승들에게 보시했다. 형진씨가 루트를 개척했던 바위산 근처였다. 이후 김 대장은 동생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더 열심히 산을 탔다고 했다.

김 대장은 등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자연 앞에 정말 미미한 존재다. 이 사실을 망각하면 죽는다. 등반 계획을 세운 뒤에는 죽지 않으려고 어머어마한 노력을 한다. 그 산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고, 가혹한 체력 훈련을 한다. 그러고도 위험하다 싶으면 등반을 고집하면 안 된다. 그 산을 포기하거나 알파인 스타일을 포기해야 한다.”

실제로 김 대장은 지난해 가셔브롬 5봉(7113m) 정상을 463m 남긴 6650m까지 올랐지만 정복을 포기하고 돌아섰다. 대원 한 명의 컨디션이 워낙 나빴기 때문이다. “원정대는 정상에 올랐느냐 아니냐에 따라 세간의 평가와 언론의 관심이 천양지차다. 하지만 이런 것에 1%도 마음을 줘서는 안 된다. 그건 바로 독을 마시는 것이다.”

용기와 만용의 차이는 이런 것이다. 얼마나 잘 준비해 성공 확률을 높이느냐, 그리고 얼마나 욕심을 버리느냐다. 3월 21일 자누 동벽 원정을 떠나는 김 대장은 하루 8시간씩 운동을 한다. 유산소운동-서킷 트레이닝-실내 암벽 훈련이다. 주말에는 산에 오르며 실전 감각을 단련한다.
 
“부모님 생각하면 죄송하지만 업보”
형진씨가 사고를 당한 다음 해 김 대장의 여동생도 암으로 세상을 떴다. 김 대장의 어머니는 하나 남은 자식이 원정을 떠나면 돌아올 때까지 촛불을 켜 놓고 절대 꺼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김 대장과 대화를 이어갔다.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어머니 속이 얼마나 탈까요. 그거 불효라고 생각 안 합니까.”
“…. 그렇게 생각합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업보인 것 같아요. 부모님 생각하면 죄송한데, 결국에 또 산으로 향합니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어떤 여자가 저를 부모님께 신랑감이라고 소개하겠습니까.”
사람 좋은 김 대장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만약 결혼을 해서 예쁜 딸을 낳았는데 ‘나도 아빠처럼 히말라야 갈래’ 하면 어떨까요.”
“하하하하하, 하하하.”
한참을 웃은 김 대장의 눈가에 얼핏 물기가 보였다. 그가 대답했다. “저 하나로 끝나면 좋겠는데…. 너무 힘드니까요.”
김 대장과 인터뷰가 끝났다. 이건 꼭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왜 산에 오르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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