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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단 외우는 남성들

중앙선데이 2011.02.27 01:37 207호 18면 지면보기
“애국가도, 구구단 외우는 것도 지긋지긋합니다.” 필자는 조루 남성들의 이런 절규를 자주 듣는다. 조루는 성기능장애 중에서 가장 높은 유병률(20~30%)을 차지한다.
사랑의 감정을 만끽해야 할 침대에서 애국가나 구구단을 외우면서 흥분을 피하려는 남성들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런 습관은 문제를 과학과 논리로 대처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버티려는 생각 때문이다.

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한마디로 성기능은 자율신경계 반응과 밀접하다. 억지로 참고 버티거나 컨트롤하려는 것은 장기적으로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성행위 시 딴 생각을 하면 잠시 흥분이 줄고 이로 인해 좀 더 시간이 연장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회피(avoidance)다.

그런데 문제를 회피하면 그 두려움은 더 강화된다. 조루 환자들은 성행위의 흥분감을 견디지 못해 사정조절에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성흥분을 피하기만 해서는 성적 자극이 점점 낯설게 되고 성행위 시 가벼운 자극만 받아도 불안과 긴장감이 커진다. 교감신경이 더 불안정해져서 사정 조절은 더 힘들어진다.

의학적으로 가장 각광받는 조루 치료법은 약물치료와 행동요법의 병합이다. 의학 교과서나 외국 의료진이 인정하는 주치료법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효과가 불분명하고 부작용 위험성으로 인해 국제 학계에서 주치료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시술이 더 유행하고 있다. 더군다나 행동요법의 의미를 의료진조차 명확히 모르다 보니 조루 남성들에게 엉뚱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당연히 효과는 없다.

행동요법에 대해 인터넷을 뒤져보면 그저 ‘성행위 시 사정 직전에 참는 것’이라는 표현이 허다하다. 이게 얼마나 한심한 소리인가. 조루가 있든 없든 좀 더 오래하고 싶을 때 참아보지 않은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어쩌다가 행동요법이 이렇게 알려졌는지 몰라도 행동요법은 단순히 사정 직전에 참는 게 아니다.

오히려 행동요법은 억지로 버티고 자극을 피하는 것보다는 자극에 적응하고 익숙해지려는 노력을 요구한다. 성흥분 반응을 견딜 수 있는 수준에 따라 단계를 정한 다음, 자극에 단계적으로 적응하도록 하는 노출치료가 행동요법이다. 또한 약물치료와 적절히 병합될 때 그 치료 효과는 더욱 상승한다.

화제를 돌려 남자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 되어 보자. 요즘은 성을 알 만한 나이 또래의 청소년 자위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쯤은 상식이 되었다. 이미 시작된 자위를 막을 수 없다면 자위 횟수가 지나치지 않도록 조언하는 정도면 된다. 또 어차피 할 자위라면 느긋하게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낫다. 죄책감에 들킬까 봐 두려워 너무 서둘러 사정에만 몰입하는 자위는 사정중추에 급박한 사정습관을 고착화할 수 있어서 조루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조루가 될 수 있으니 어릴 때부터 사정 직전에 좀 참아보라는 식의 조언으로 오버하는 어설픈 현대식 아버지도 있다. 아이가 사정 조절력을 갖도록 하겠다며 딴 생각을 하며 버텨 보라는 식으로 조언하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 올바른 교육 방식이 아니다. 주변에 아직도 성행위 시간을 벌기 위해 구구단 외며 그 소중한 감각을 마비시키겠다는 남성이 있다면 부디 말리길 바란다. 조루의 올바른 치료란 무서운(?) 자극으로부터 도망가는 게 아니다. 소중한 자극에 적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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