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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글로스

중앙선데이 2011.02.27 00:48 207호 29면 지면보기
프랑스 작가 볼테르가 쓴 소설 캉디드(1759)엔 엄청난 낙천가가 나온다. 순진한 청년 캉디드를 교육시키는 팡글로스 박사다. 그의 낙천주의는 도무지 말릴 수 없다. 그는 “모든 것은 최선의 상태에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 역시 현실세계에 온갖 부정과 불합리가 존재한다고 인정한다. 스스로 이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 세상은 결점도 있지만 여전히 가장 좋은 곳이라며 낙천주의를 고집한다. 볼테르는 팡글로스를 통해 당시 유럽에 퍼져 있던 낙천적 세계관을 조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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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팡글로스라는 이름은 서양에선 보통명사로 사용돼 왔다.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Pangloss’는 ‘근거 없는 낙천주의자’로 해석된다. ‘Panglossian(근거 없이 낙천적인)’이라는 형용사도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폴 크루그먼 교수는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주로 낙관적 경제예측을 비판하거나, 금융인들의 도덕적 해이를 가리킬 때 쓴다.

그는 1998년 자신의 한 논문을 통해 정부 보호 아래 안이한 영업을 해 오던 아시아 은행들을 싸잡아 ‘팡글로스’라 불렀다.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져 곧 닥쳐올 위기를 감지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사실 우리 은행들도 당시까지 그랬던 게 사실이다. 정부가 도와주면 되겠지, 예금이 들어오고 경기가 좋아지면 괜찮다, 담보 잡았으니 안전하다…. 이런 낙관적인 전제로 과잉투자와 부실대출로 제 무덤을 팠던 셈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최근 또 다른 관점에서 팡글로스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금융위기가 진정되고, 유럽 재정위기가 고비를 넘자, 이젠 됐다 하는 안도감이 근거 없는 낙관론을 낳아선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성급한 출구전략이나 재정긴축에 대해 ‘Panglossian’이라고 공격해 왔다.
캉디드에 나오는 팡글로스 박사의 낙천주의는 남에게 피해를 주진 않았다. 하지만 크루그먼이 지적하듯 경제나 금융 분야의 팡글로스들은 자칫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 특히 정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팡글로스들이 앉아 있을 때 더더욱 그렇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저축은행 부실화도 팡글로스 금융관료들의 책임이 크지 않나 싶다. 지난 10년간 저축은행 영업규제를 하나둘 풀어주면서 괜찮다, 괜찮다 하던 게 쌓이고 쌓여 한꺼번에 터졌기 때문이다. 왜 진작에 대책을 내놓지 못했느냐는 정치권의 질책도 그래서 나온다.

감독당국도 물론 할 말이야 많을 거다. 실제로 지난해 작심하고 손을 보려고 했다는 것, 잘 알려져 있는 얘기다. 그러나 이게 감독당국 단독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더 높은 곳에서 ‘일단 정지’ 사인이 나왔다고 하니 말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라 한다. 공적자금을 또 쓸 수는 없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앞두고 평지풍파를 일으키면 곤란하다…. 사정이 이러한데 책임을 따지고 들자면 입장이 미묘해지는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때 괜찮다, 괜찮다 하고 넘어갔던 팡글로스 관료들, 지금쯤은 책임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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