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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이문열 연재소설 ‘리투아니아 여인’ 5-5

중앙일보 2011.02.26 02:12 주말섹션 10면 지면보기
나이를 먹어가다 보면 시간과 비례하는 기억력의 강도가 묘하게 뒤집히는 경우를 자주 경험하게 된다. 이를테면, 오래된 기억이 오히려 선명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일들은 까맣게 잊혀 실마리조차 찾을 길이 없게 되는 게 그렇다. 유년 어느 한낮의 구슬놀이에서 내가 딴 구슬의 개수까지 기억나는가 하면, 십 년도 안 되는 일이 마치 일어나지 않았던 일처럼 기억에 전혀 남아있지 않은 수도 있다. 그런데 그해 런던에서의 달포는 내 나이에서 가장 기억하기 애매한 십이삼 년 전의 일인데도 이상하리만치 기억에 생생하다.


‘그녀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었다’

 그해 우리가 런던으로 건너간 것은 유난히 짧았던 뉴욕의 봄도 가고, 벌써 여름 기운이 도는 6월 초순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내 밑에서 회계와 홍보뿐만 아니라 기획까지도 두루뭉수리로 맡아 왔고, 방금도 개점 휴업 중이나 다름없는 우리 극단을 맡아 관리하고 있는 단원을 런던으로 불러 우리 세 사람으로 짜인 어정쩡한 여행단에 끼워 넣었다. 그도 우리와 함께 수업함으로써 앞으로 공연하게 될 뮤지컬 작품의 기획관리 능력을 키우는 한편, 혜련의 국제적인 경험이나 모국어와 다름없는 영어만으로는 다 감당하지 못하는 우리 여행 뒷바라지를 맡기기 위함이었다.



 





일러스트: 백두리 baekduri@naver.com







별명이 감초인 그 단원은 내 몇 마디 설명과 지시만으로 아예 극단 사무실까지 닫고 런던으로 달려왔다. 나도 장기 체류를 작정하고 싸갔던 짐과 그사이에 늘어난 몇 가지 잡동사니를 배편으로 한국에 부친 뒤 커다란 여행가방 하나만 끌고 공항으로 갔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과정으로 짐을 줄였을 배영기와 혜련이 먼저 와 있었는데, 특히 혜련의 가방 하나가 너무 무거워 중량 초과가 되는 바람에 공항 대합실에서 가방을 풀어 다시 조정해야 했던 일이 기억난다.



 말이 길거리 대학이고 새 학기라는 것이지, 그때 우리가 런던을 거점으로 유럽의 무대를 돌아보기로 한 것은 길어야 두 달이었다. 하지만 비행기 좌석을 이코노미로 하고 호텔을 런던 근교의 허름한 3성급으로 낮춰도, 우리 네 사람에게 들어갈 여행 경비는 어려운 시절이라면 소품 한 편을 무대에 올리기에도 넉넉한 액수였다. 그런데도 그 여행의 경비를 도맡아야 할 내게 그리 부담이 되지 않았던 것은 우리 극단 나름의 여유 덕분이었다.



 그때 우리 극단은 비상장 법인(法人)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건물을 집어넣은 내가 50퍼센트의 지분을 가진 데다, 근년 몇 년의 배당을 모두 재투자하여 자본금을 불린 바람에 사실상은 내 소유나 다름없었다. 거기다가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 마지막 몇 년의 공연도 흥행으로는 적잖이 재미를 보아 이익금으로 적립되어 있어, 그 정도 경비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중에 한때는 지방극단의 단역 배우였으나, 그때는 영국으로 이주하여 식당업으로 형세가 좋아진 부산 시절의 단원 하나가 나타나 우리를 거들어주자 호텔은 같은 별 세 개라도 피카딜리 부근의 깨끗하고 교통 편리한 곳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수속이 끝나고 마침내 비행기에 올라보니 특별히 애쓴 것 같지 않은데도 혜련과 내가 옆자리로 되어 있었다. 배영기도 우리와 한 줄이기는 했지만 서너 자리 옆이라 서로 얘기를 나눌 형편은 못 되었다. 그렇게 되자 혜련이 모든 절차를 런던에서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게 해두었다는 것을 알게 된 때부터 궁금하던 일이 문득 떠올라 나는 비행기가 뜨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물었다.



 “런던에서 바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예. 그렇게 해놓았어요.”



 “요즘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누구누구야?”



 “엄마, 아빠요. 지금쯤은 부산 집에 있을 거예요. 그리고 여동생이 미국회사 홍콩 지사에 있어 자주 한국 들락거리는가 봐요.”



 혜련이 왜 묻느냐는 듯 유난히 홍채가 많이 드러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너희 식구들이 다시 한국으로 모이는 주기가 된 모양이지? 네가 돌아간다는 것도 그 주기에 맞춘 것인가?”



 나는 그렇게 눙쳐놓고 정작 궁금해하던 것을 그 위에 슬쩍 얹었다.



 “지미는 어쩌고? 한국으로 따라오겠다던?”



 “지미요? 제임스 걔가 왜 한국까지 따라와요?”



 혜련이 정말로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 반문에 오히려 말문이 막혀 더듬거린 것은 나였다.



 “너희들 사귄다고 하지 않았어? 그때 보니 벌써 한 집에 살고 있던 것 같던데? 그거 결혼을 전제로 한 것 아니었어?”



 나도 이미 그렇지는 않았다는 걸 느끼면서도 뻗대듯 그렇게 물어보았다. 혜련이 터무니없는 일을 당할 때 흔히 그러는 과장적인 말투로 받았다.



 “아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미국 와서 처음 너를 만났던 밤 네 입으로 그러지 않았어? 지미가 남자친구라고. 사귄다고. 그리고 지미 그 친구도 그날 밤 너와 헤어지면서 먼저 집에 가서 기다리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하, 그거요?”



 그녀가 그렇게 받아놓고 한참이나 쿡쿡 웃더니 남의 일처럼 말했다.



 “그래요. 지미하고 한동안 사귄 것은 사실이에요. 같이 자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건 내가 한국에서 그리워하던 아메리카를 걔가 효과적으로 연출해내고 있을 처음 얼마간일 뿐이에요. 결혼을 전제로 한 동거 같은 건 더욱 없었고요.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는 말은, 그때 같은 일을 하던 사람들 대여섯이 집 하나를 빌려 함께 썼는데, 그중에 지미도 있어 한 집을 썼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저는 주근깨 많은 서부 아가씨와 방을 함께 썼어요.”



 그런데 그 말을 듣는 내 기분이 묘했다. 아무렇지 않게 지미와 함께 잔 것까지 말할 때는 난데없는 허망감과 함께 가슴속에 알지 못할 열기가 후끈 지나가더니, 지미가 이제는 그녀에게 무의미한 존재로 돌아갔음을 확언해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안도를 넘어서는 은근한 기쁨까지 느꼈다.



 이래서 내가 그렇게 묻고 싶었던 거였구나… 그러나 나는 그런 속마음이 들키는 게 싫어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



 “그렇게 열 올릴 건 없고. 그럼 걱정 하나 덜었네.”



 “걱정? 무슨 걱정요?”



 “한국 가서 한참 판 벌이다가 지미 찾아 미국 돌아가겠다고 할까 봐서.”



 “그런 걱정이라믄 마, 붙들어 매이소. 한국 가스나가 한국 살아야제, 지가 가믄 어디 가겠습니꺼?” 무슨 생각에서인지 혜련도 그렇게 사투리로 받아쳐 내 말에 장단을 맞추었다.



 런던에 도착해서 처음 한동안은 지루하다 싶을 만큼 브로드웨이 때의 반복이었다. 우리가 미국에서 본 것 말고 새로 나온 작품은 찾아볼 수 없었고, 원산지의 진품을 본다는 뜻으로 이미 뉴욕에서 본 것을 웨스트엔드로 가서 새로 봐도 브로드웨이에서 본 것과 특별한 차이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가자 배영기가 불쑥 제안했다.



 “우리가 뮤지컬 기획한다고 해서 꼭 웨스트엔드만 어정거릴 건 없잖아요? 오히려 연극의 본고향에 왔으니 그동안 소문만 들었던 피카딜리 부근의 정통 명품 연극들이나 제대로 훑어보고 가는 것이 낫지 않겠어요? 그리고 다음에는 대륙으로 건너가 뮤지컬 형님 뻘인 오페라라도 좀 돌아보고...... 유로터널로 건너가 유레일 패스 끊어 돌아다니면 여기보다 경비 더 나올 것 같지도 않은데요.”



 “그래요. 저도 좀 답답했어요. 어쩌면 그쪽이 더 효율적일지도 몰라요.”



 혜련이 그렇게 거들고 나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다만 아직 뮤지컬 본 것이 많지 않은 감초 녀석만은 차라리 지난 학기 복습이 낫다고 우겼으나, 머릿수로 보나 군번으로 보나 먹혀들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작된 게 정통 연극 무대 순례였다. 우리는 ‘읽는 희곡’으로만 알려진 버나드 쇼 극본의 연극에서 곡예와 무대연출로 보여주기만 할 뿐인 신인작가의 환상극까지, 그리고 고색창연한 ‘조앤 오브 아크(잔다르크)’로부터 이제는 한물간 상황극인 ‘아일랜드’까지, 또 우리의 신파 냄새까지 나는 ‘블러드 너트(핏줄)’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왕년의 실험극까지, 한 보름 지칠 줄 모르고 피카딜리 근처의 극장가 뒷골목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나쁘게 기억되는 경험은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 연극을 한꺼번에 몰아 본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하루 두 편을 볼 때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한편으로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리의 기획 여행은 차츰 관광단의 그것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긴 낮 시간이 일반 관광으로 돌려지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 여행단의 실무를 맡아 여러 가지로 준비하고 챙겨야 할 것이 많은 감초와 그러는 가운데서도 자신의 각본을 마무리 짓는 데 골몰해 있는 배영기는 낮 시간도 그리 여유가 없었다. 그 바람에 나는 혜련과 함께 런던 구석구석과 인근 관광지를 돌아보게 되었는데, 그게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그녀의 또 다른 일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문열 소설가

일러스트: 백두리 baekdur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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