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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lobal] 리비아 카다피의 큰 신뢰 받는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

중앙일보 2011.02.26 02:11 주말섹션 12면 지면보기



“피의 강물” 외치면서도 “사태 안정되면 개혁 조치”





“리비아에서도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다. 아랍 국가들도 민주주의의 확립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외부로부터의 변화 압력이 우리를 짓누를 것이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지도자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Saif al-Islam·38·사진)이 2008년 11월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런 그가 국민들의 민주화 시위가 격해지자 21일 관영TV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태가 내전(內戰)으로 치닫고 있다. 피의 강물을 이룰 것이다.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후의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싸울 것이다.”



 민주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던 그가 차가운 표정으로 국민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의 이름은 ‘이슬람의 검(劍)’으로 해석된다. 21일 연설에서도 그의 탁자 위에는 녹색 바탕에 흰 글씨로 ‘이슬람의 검’이라 적힌 명패가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밝고 명랑하며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졌지만, 필요하다면 유목 부족의 특성이기도 한 철저한 ‘피의 보복’도 불사할 것임을 의미하는 듯했다.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 가지 그의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선언한 다음 해인 2004년 11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도자를 바꿀 수는 없다.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어도 지도자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가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총리, 장관, 지방정부 관리를 바꿀 수 있어도 최고지도자는 안 된다. 그는 특별하기 때문이다.”



 개혁을 주창하면서도 사이프 알이슬람은 아버지의 권위에 대해서는 철저한 복종과 존경으로 일관해 왔다. 그것이 카다피가 이번 사태 수습을 차남에게 맡긴 배경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카다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차남이지만 카다피가 진정으로 사랑한 둘째 부인 사피야 파르카슈한테서 얻은 첫 아들이다. 트리폴리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우등생이던 그는 리비아의 최고 명문 알파티흐 대학에서 공학사를 취득했다. 그 때문에 지금도 그는 자신의 이름 앞에 무한디스(엔지니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이후 빈의 국제경영개발컨설팅(IMADEC)대학에서 MBA를 받고, 런던정경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얻었다. 7명의 아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학력이다.



 그는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위기 속 최적의 인물’로 거론되고 있다. 강온 양면을 함께 갖춘 이미지 때문이다. 강성 이미지만 각인된 아버지와는 달리 사태를 추스를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 21일 연설에서도 그는 “사태가 안정되면 대대적인 개혁조치를 단행해 국민의 삶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약속을 잊지 않았다.



 실제 그의 개혁 이미지는 리비아뿐 아니라 해외에도 잘 알려져 있다. 강압적인 아버지를 설득해 민주적 조치 등을 이끌어내는 ‘정권 내 야당’ 이미지를 드러내며 대내외적으로 긍정적인 평판을 쌓아 왔다. 2010년 3월 그는 200여 명의 반정부 이슬람주의자들을 석방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이들의 석방으로 우리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게 됐다”고 그는 강조했다.



 대외적으로도 그의 활동은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 냈다. 2007년 에이즈 바이러스 오염 혈액을 아이들에게 수혈한 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를 받은 불가리아 간호사의 석방 협상에 관여했다. 2008년에는 1988년 미 팬암기 폭파 사건과 관련한 보상 협상을 미국과 타결했다. 이런 그의 역할에 워싱턴 포스트는 2010년 “변화의 주창자 사이프 알이슬람, 향후 리비아를 이끌 것”이라는 찬사 섞인 기사를 싣기도 했다.



 양자까지 포함하면 모두 8명인 카다피의 아들 중 현재 사이프 알이슬람을 추월할 인물은 없어 보인다. 2009년 10월 리비아에서 정부 역할을 하는 ‘인민위원회’의 위원장 격인 조정자(General Coordinator)로 추대된 것이 이를 방증한다. 동시에 비영리법인인 ‘카다피 재단’을 운영하면서 국내외적으로 많은 자선활동을 펼치면서 적지 않은 인기도 얻고 있다. 2009년 2월에는 ‘아랍민주주의연맹’이라는 인권단체도 조직해 위원장직을 맡아 활동하면서 아랍권 내에서도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다. “협상 능력이 탁월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며 카다피처럼 증오받는 인물이 아니다”라고 카네기국제평화재단 미셸 던 연구원은 설명한다.



 그는 한때 국가안보보좌관을 담당한 4남 무타심과의 관계 악화와 지나친 개혁 노선으로 권력의 중심으로 물러나는 듯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스코틀랜드 교도소에서 풀려난 ‘미 팬암기 테러범’ 압둘 바싯 알미그라히를 비행기에 태워 리비아로 돌아오는 영웅적인 역할을 맡으면서 정치 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에 대해 호화 파티를 즐기면서 ‘외국인에게 아부나 하는 인물’이라는 내부의 비판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카다피의 의지대로 해결될 경우 카다피의 권력을 물려받아 향후 리비아를 이끌어 갈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재스민 혁명에서 촉발된 중동의 민주개혁을 위한 시민혁명의 불길이 쉽게 꺼질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 전 중앙일보 카이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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