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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제자 복종만 요구하는 시대 지났는데 …

중앙일보 2011.02.26 00:25 종합 29면 지면보기






나태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최근 제자 폭행 논란에 휩싸인 음대 교수에 대해 소속 학교에서 중징계를 요청했다. 이 사건은 교육이라는 대학 본연의 기능과 우리네 전통적 가치관 간의 충돌에서 발생한 비극으로 보인다. 중세 말 유럽에서 비롯된 대학이라는 교육제도는 진리 탐구와 더불어 학생들의 인격적 도야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다. 서양의 제도가 우리나라에 도입될 때 흔히 그러하듯, 대학 제도 역시 한국의 전통적 가치와 맞물리면서 혼란스러운 구석이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나라 대학 교수에게는 학술적 연구 외에도 인격적으로 성숙되지 않은 제자들을 자애롭게 양육할 책무도 있다. 선생은 부모와 다르지 않다는 유교적 가치에 입각하여 학생을 지도하고 취업시키며 대소사를 챙긴다.



 오늘날 대학이 한낱 지식장사꾼으로 전락하였다는 자성과 비판의 소리도 높다. 하지만 교수와 학생의 관계는 여전히 단순한 강사와 교습생 이상의 고결한 관계다. 교수는 주머니를 털어 제자들과 정다운 식사를 나눈다. 학생들 역시 교수님과 상의하여 개인적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팍팍한 형편에도 선생님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성의를 다한 선물을 하기도 한다. 우리네 전통적인 교육관에 비추어보면 어색할 것이 없는 행동이다. 선생과 학생 간의 지식전달이라는 무미건조한 행위가 아니라 아름다운 관계와 인격적 결속, 정신적 유대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외적’ 관계가 지나치면 곧 문제가 된다. 특히 공(公)과 사(私)가 잘 구별되지 않는 우리 고유의 습속 때문이다. 지금도 많은 창업주에게는 회사가 곧 자기 분신이고, 직원이 곧 가족이다. 즉, 공사가 뒤죽박죽인 것이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교수는 자식이나 다름없는 조교에게 연구와는 관계없는 심부름을 시키고, 사생활에 간섭하기도 한다. 미국 대학에서 조교로 처음 일하게 되었을 때, 수행해야 할 업무를 소상하게 기술해 놓은 업무기술서(job description)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것은 이러이러한 일은 장학금의 대가로 반드시 해야 하지만, 그 밖의 일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겠다는 선생과 학생 간의 계약이다. 반면 우리나라 대학 풍토에서는 계약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교는 수퍼맨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대신 선생에게는 내가 끝까지 너를 돌보아 주겠다는 막대한 책임감이 부여된다. 이를 지키지 않는 쪽은 깊은 정신적 유대를 훼손하는 ‘나쁜 사람’이 된다.



 이번 사건에서 당사자는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성악을 가르치다 보면 몸이라는 악기를 보다 잘 사용하기 위해 학생의 배를 치거나 머리를 흔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선생의 공연에 와서 축하드리는 것이 예를 갖추는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을 때리거나, 화환을 내동댕이치는 따위의 행동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공연 표를 강매하지는 않는다 해도, 몇 장이 필요하냐는 교수의 물음에 절대적 약자인 학생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표를 구입했을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스승과 제자 관계의 본질을 망각하고, 학생은 선생에 고개 숙이고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의식이 깊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번 사건은 나에게 교수로서 자신의 행동을 다시금 뒤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나태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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