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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이집트 혁명을 이끈 신문

중앙일보 2011.02.26 00:23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상언
파리 특파원




이집트 혁명은 ‘M(모바일)혁명’이라고도 불린다. 젊은이들이 휴대전화나 노트북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독재의 실상을 고발하고, 시위를 조직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에서 SNS로 주고받을 새 정보를 얻었을까. 시중에서 듣는 ‘카더라’ 통신이나 해외의 위성방송이 한몫했지만 ‘알마스리 알윰’이라는 이집트 일간지의 기여도 컸다. 활자매체가 이집트 혁명의 한 부분을 차지한 것이다.



 ‘이집트 오늘’이라는 뜻의 알마스리 알윰(Al Masry Al Youm)은 18일간의 시민혁명 기간과 그 이후에 카이로 거리의 신문 판매대에서 오전에 매진되는 신문이 됐다. 아랍권 최대의 이집트 관영신문 알아흐람(Al Ahram)은 최소한 가판대에서는 찬밥 신세가 된 지 오래다.



 알윰은 종합 일간지를 발행하고 영문뉴스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의 국장급 간부인 사이프 나스라위는 “시민혁명을 계기로 우리가 알아흐람을 누르고 판매부수 1위의 신문사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위가 시작된 지난달 25일에는 30만 부가 판매됐으나 현재는 하루 평균 60만 부가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판매부수 공식 통계가 없어 이 주장의 진위를 확인하기 어려우나 알아흐람 측도 이 같은 추세가 있음에 동의했다. 알아흐람의 국제부 수석기자인 아흐메드 사브리는 “역전까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수준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윰의 인기 비결은 독립적인 사실 보도에 있었다. 이 신문은 지난해 두 차례 경찰의 고문치사 사건을 특종 보도했다. 선거 부정이나 청년 실업 문제를 지적하는 데도 앞장섰다. 이 신문이 폭로한 고문의 실상은 이집트 청년들의 공분을 샀다. 1987년 중앙일보의 ‘박종철 고문 치사’ 특종 보도가 민주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것과 유사하다. 이 신문은 정유사 등을 보유한 이집트 기업 피코(PICO) 에너지 그룹의 최고경영자(CEO) 살라 디아브가 다른 기업인들과 함께 2004년에 만들었다.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기업자본의 신문이 탄생한 것이었다. 신문은 자유주의(liberalism)를 주창하며 “사실(fact)에 충실한 보도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중앙미디어네트워크(JMnet)와 콘텐트 교류 계약을 맺는 등 이집트 언론사로서는 드물게 해외 언론과의 제휴도 활발히 벌여왔다.



 디아브는 이집트 유명 언론인의 손자다. 그의 할아버지는 1931년 영국의 식민지배를 비판하는 신문을 만들었다. 이 신문은 7년 만에 강제 폐간됐다. 디아브는 창간 당시 “왜 신문사를 만드느냐”는 질문에 “내게는 할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답했다. 알윰은 무바라크 정권하에서 두 차례 발행중단 조치를 당했다. 국방부 등 주요 부처에서는 기자들의 출입이 차단됐다. 피코 에너지 그룹에 은행 대출 중단 등의 압력이 가해지기도 했다.



 나일라 함디 카이로 아메리칸대 언론학과 교수는 “무바라크 정권의 최대 실수는 알마스리 알윰을 폐간시키지 않은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혁명에 이 신문이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평가했다. 신문의 힘은 이집트 혁명에서도 증명됐다.



이상언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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