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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C+보다 F학점이 나은 이유

중앙일보 2011.02.26 00:22 종합 23면 지면보기






조우석
문화평론가




미국 언론계에서 서평 기자로 유명한 이가 마이클 더다(63)이다. 1978년 이후 워싱턴포스트에서 서평을 써왔고, 그걸로 퓰리처상까지 받았다. 그런 그는 책과의 만남을 주제로 한 자전기록 『오픈 북』(을유문화사)을 썼다. 폭넓은 인문 교양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책인데, 잠시 경청해볼 게 거기에 나오는 대학시절 학점 이야기다. 스펙 쌓기 일환으로 고학점에 목매는 우리 현실을 점검해볼 수도 있다. 특히 새 학기 맞는 대학생들과 함께 음미해보고 싶다.



 그는 명문 오벌린대에 입학했다. 1학년 때 불문학 강의를 듣는데 담당교수는 숙제 많이 내주기로 악명높은 비니오 로시였다. 그는 매주 리포트 제출을 요구했다. 보들레르 등의 시작품에 대한 분석이었다. 어느 날 그가 뜬금없이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어떤 학점이 가장 나쁜지 알아?” 한 학생이 “F학점”이라고 대답했다. “학생을 오만하게 만드는 A학점이야말로 정말 나쁜 학점”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고개를 젓던 교수의 말이 역설적이다. “실은 C플러스가 가장 나빠. 그 학생이 너무 평범하다는 증거가 아닐까?”(324쪽)



 교수가 요구했던 건 학생들의 기계적 처리 능력보다는 창의력일 것이다. 창의력이란 자기 개성에 충실한 학생 개개인의 자신감, 때로는 창조적 오독(誤讀)에서 나온다며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준 발언이다. 그렇다면 지난 해 늦가을 겸사겸사 만났던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들려준 이색 학점론(論)도 함께 음미해볼 만하다. 여러 대학에서 강의해 본 경험이 풍부한 그에 따르면 학교마다 학생들의 수강 태도가 좀 다르다.



 “서울대·연세대 학생들은 의자에 앉을 때부터 삐뚜름합니다. ‘어디 강의 한 번 들어나 볼까?’ 하는 식이죠. 이화여대생들은 그게 없어요. 정말 착실해요. 왠지 아세요? 남녀공학에서처럼 C,D학점을 도맡아 깔아주는 얼렁뚱땅 남학생들이 없으니까 여학생끼리 피나게 경쟁하는 것이죠.” 처음엔 그렇고 그런 학교자랑처럼 들렸다. 웬걸, 그는 이내 고학점에 매달리느라고 모험을 하지 않는 요즘 학생들을 혹독하게 질타하기 시작했다.



 “저는 학생에게 말합니다. 학점 기계로 만족한다면 훗날 하청업자가 될지는 모르나 사회적 리더로 성공하긴 힘들다. 너만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좀 더 넓고, 삐딱해져라. 방법은 하나다. 타 분야 책까지 무섭게 읽어라.“



 실제로 그는 기업 강연 때 관계자들에게 올A 학점 졸업생을 뽑는 걸 경계하라고 주문한다. 그들은 창의력 없는 안전운행파다. 외려 다양한 강좌를 섭렵하며 ‘스스로 배가 고파’ 책과 씨름해본 학생에게서 미래의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가 나온다.



 더다 기자의 회고담, 최 교수의 지적은 요즘 같은 무한경쟁 시절에 조금은 과한 주문일지 모른다. 대학과 사회를 이처럼 빡빡하게 만들어놓은 게 누군데, 여기에 더해 엉뚱한 주문까지 하는 어른들이 무책임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학이, 그리고 창의적 사회란 게 과연 무엇이던가. 그런 큰 그림과 원칙을 염두에 둔다면 응당 들려주고 고민해봐야 할 사안이다. 대학문을 들어서는 새내기, 다시 새 학기 맞는 젊은 대학생, 당신들의 분전을 기대한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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