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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무력 위에 이성 있다’ 협상의 거인들이 믿은 진실

중앙일보 2011.02.26 00:07 종합 20면 지면보기



포츠머스 조약, 파리 평화회의 …
역사적 협상 8개 생생하게 복원
설득 포용 헌신의 힘 보여줘



1980년대 세계는 핵전쟁의 공포 속에 살았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1986년 12월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만났다. 두 강대국 정상이 지구의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기 위해 노력한 회담이었고 냉전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사진은 레이건 대통령(가운데)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왼쪽에서 첫째)이 잠시 휴식을 취하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다. 미 연방 공문서보관소에 사진이 보관돼 있다. [말·글 빛냄 제공]













위대한 협상-세계사를

바꾼 8개의 협정

프레드리크 스탠턴 지음

김춘수 옮김, 말·글 빛냄

335쪽, 1만5000원




저명한 협상 전문가 허브 코헨(Herb Cohen) 미국 미시간대 교수는 『협상의 법칙』에서 “세상의 8할은 협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코헨은 협상의 세 변수로 힘, 시간, 정보를 들었다. 누가 협상을 주도하는지(힘), 언제까지 협상이 가능한지(시간), 상대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갖고 있는가에 따라 협상 결과가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세 변수 가운데 ‘힘’의 의미를 좀 더 폭넓게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 나왔다. 미국 보스턴 헤럴드지의 칼럼니스트 프레드리크 스탠턴 (Fredrik Stanton)이 쓴 『위대한 협상』이다.



 『위대한 협상』에서 저자는 물리적 힘보다 이성의 힘을 중시한다. 이성이란 설득의 다른 말이다. 미국 독립전쟁 시기에서부터 냉전이 끝날 때까지 근현대사를 수놓은 ‘역사적 협상’ 8개를 사례로 제시했다. ① 미국과 프랑스 동맹(1778년) ② 루이지애나 매입 (1803년) ③ 비엔나 회의 (1814~1815년) ④ 포츠머스 조약 (1905년) ⑤ 파리 평화회의 (1919년) ⑥ 이집트-이스라엘 휴전협정 (1949년) ⑦ 쿠바 미사일 위기 (1962년) ⑧ 레이캬비크 정상회담 (1986년) 등이다.



 8가지 사례에서 주목해봐야할 것은 당연히 협상의 주역이다. 노련한 외교술과 결단력을 겸비하는 것은 기본이다. 게다가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각오가 남달랐다. 저자가 꼽은 주역은 ① 벤저민 프랭클린 ② 제임스 먼로, 로버트 리빙스턴 ③ 탈레랑 페리고르 ④ 시어도어 루스벨트, 세르게이 비테 ⑤ 조르주 클레망소, 로이드 조지, 비토리오 오를란도, 우드로 윌슨 ⑥ 랠프 번치 ⑦ 존 F 케네디, 흐루시초프 ⑧ 로널드 레이건, 미하일 고르바초프 등이다.



 이 가운데 프랑스 외무장관이던 탈레랑 페리고르(1754~1838)의 활약상은 몇 번이고 읽어 볼 만하다. 외교의 귀재로 통하며 수완이 뛰어났던 탈레랑은 나폴레옹 전쟁의 패배로 유럽에서 찬밥 신세가 된 프랑스를 구해냈다. 탈레랑은 패전국의 수모를 참으면서 승전국(영국·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 간의 이견을 부추기는 일을 마다 않는다. 나폴레옹 전쟁 이전의 영토를 온전히 보존해 프랑스의 이익을 지킨 숨은 주역은 그였다. 패전국으로 물리적 힘은 없었지만 이성으로 각종 협상을 승리로 이끈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중동의 민주화 바람이 거세다. 중동 역사가 궁금한 독자라면 이집트-이스라엘 휴전협정을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제1차 중동전쟁의 결과인 이 협정에서 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사로 등장하는 랠프 번치(1904~1971)를 만날 수 있다. 번치는 전임자 베르나도테가 암살될 정도로 서로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던 이 지역에 1948년 12월 유엔 협상 중재자로 파견됐다. 그는 수양할머니로부터 관용과 포용의 힘을 배웠다고 한다. 그의 중재에 힘입어 이듬해인 1949년 결국 휴전이 이뤄졌다. 중재 과정에 큰 역할을 한 것 가운데 하나가 당구였다는 점은 흥미롭다. 당구를 좋아했던 번치는 양측 대표들과 당구를 하며 냉랭한 분위기를 바꾸어 나갔다. 대표들도 서로에 대한 편견을 씻어낼 수 있었다. 번치는 휴전 협상을 중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5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들 외에 파리 협상에서 프랑스의 지원을 얻어내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벤저민 프랭클린, 인류를 핵전쟁으로 몰아넣을 뻔했던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극적인 합의를 이룬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흐루시초프 소련 서기장 등의 협상력도 저자는 생생하게 복원했다. ‘협상학 개론’과 같은 딱딱함에서 벗어난 것은 이 책의 장점이다.



 ‘협상의 거인’들이 벌인 역사의 드라마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저자는 “과거에 있었던 외교협상의 사례들을 많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견을 해소하기 위해 무력에 의존하려는 욕구들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남북 회담· FTA 등 국가적 과제에서부터 개인의 일상적 협상에 이르기까지 우리 앞에 수두룩하게 놓인 각종 난관들을 헤쳐나가는 과정에 두고두고 되새겨볼 말인 것 같다. 



고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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